'코로나 학번' 학생이 숙명여대 노동자에게 보내는 연대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④ 숙대 학생들 인터뷰

더 이상은 지켜만 볼 수 없겠다는 마음

최근에 연세대학교 학생이 노동자들의 집회가 학생들의 수업권을 방해한다며 고소했다는 사건으로 언론이 떠들썩했다. 지난 7월 6일에는 고려대학교에서 노동자들이 학교의 본관에서 철야농성에 돌입하기 시작해 23일 만에 투쟁승리를 이루어냈다.

 갑자기 대학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왜 이런 투쟁의 바람이 부는 걸까 하겠지만, 사실 서울지역의 열 개가 넘는 대학 및 빌딩의 청소·경비·주차·시설관리 노동자들은 매년 이렇게 기본적인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을 진행해왔다.

10년이 넘은 이들의 투쟁이 항상 그래왔듯이, 올해 노동자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440원의 임금인상과 휴게실 개선 및 샤워실 설치, 인력충원이라는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들 중에 숙명여자대학교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놀랍게도 3월부터 시작된 학교 노동자들의 투쟁에 아직도 진짜 사장인 숙명여대는 답변이 없다.

더 놀라운 것은, 묵묵부답인 학교와는 정반대로, 숙명여대 학생들이 모여 직접 투쟁에 참여하겠다며 태스크포스(TF)를 만든 일이다. 학생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학교를 찾았을 때, 노동자들의 집회 현장 속에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네 명의 학생들은 집회에 참여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학생들이었다. 투쟁이라는 말도 낯선 학생들이 TF팀을 만든 것은 '더 이상은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숙명여대 학내노동자 학생연대 TF팀 학생들이 숙명여대 노동자들의 중식집회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학내 노동자와 연대하는 학생들의 고민

졸업을 앞둔 학생인 현영은 1,2학년 때에도 청소노동자들이 청소 도중 휴식을 취할 마땅한 공간이 없어 화장실에서 휴식을 취하던 모습,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며 시위를 진행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졸업을 앞두게 되었는데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현수막을 보자마자 들더라고요. 동시에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 나도 목소리를 내야겠다. 그동안 외면해왔기 때문에 생긴 결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에 코로나로 인해서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던 2학년 하은은 올해가 되어서야 학교를 본격적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기대를 잔뜩 안고 갔던 학교에서는 노동자들이 집회를 진행하는 꽹과리 소리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알음알음 알아본 결과, 이 집회가 올해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노동자분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학생인 우리가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고민이 담긴 글을 올렸다.

답답한 심정으로 올린 그 글이 TF팀의 시작이 되었다. 하은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학생들이 그 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투쟁 힘내시라는 의미로 음료수라도 드리자'면서 만든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어느새 200명의 학생이 모였고, 이후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지금의 TF팀을 결성하게 되었다.

네 명의 학생들은 모두 직접 노동운동에 참여해본 경험은 없는 학생들이었다. '더 이상은 지켜만 볼 수 없다'는 마음 하나가 학생들을 모아내는 힘을 만들어냈다. 지난 5월 14일에 TF팀이 결성된 이후, 학생들은 대자보를 써 붙이고 투쟁을 지지하는 현수막을 학교 곳곳에 내걸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하는 학생들의 연서명을 받아 이를 직접 총장실에 전달하였다. 학생들의 여론을 모으고 학교를 압박하기 위한 온갖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아직도 학교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아 이들의 마음은 타들어만 간다.

▲숙명여대 학생들이 학내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대자보를 작성하여 학내 게시판에 부착하였다. ⓒ숙명여대 학내노동자 학생연대 TF팀

학생들에게 활동 경험이 없다는 점은 투쟁에 참여하는 데에 스스로에게 큰 고민과 걱정으로 다가왔다. 나경은 학기 초에 한 달 가까이 노동자들이 투쟁해왔음에도 학교가 해결하지 않는 것을 지켜보며 충동적으로 TF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험이 없어 연대 활동을 진행하는 과정에는 계속해서 어려움이 따랐다. 참고할 만한 선배나 경험자 없이 활동하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걸까'라는 고민을 계속 하게 만들었다. 나경은 자신의 행동에 확신이 서지 않으니 오히려 이 연대활동이 노동자분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것일까 봐 불안하고 고민이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현영은 노학연대가 단순히 취업 준비나 학점을 받기 위한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계와 직결된 문제라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다고 하였다.

"이 고민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런 소리를 들었어요. 학내 노동자의 시위에 동조하면 오히려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 아니냐."

현영은 처음 이 말을 듣고 덜컥 겁이 났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활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고민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TF팀을 하고 있는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하게 된 지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돼요. 급여를 받고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노동자인데도, 시위에 참여하는 저조차 학내노동자와 학생을 철저하게 분리하는 시선 속에 갇혀있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코 남의 일이 아닌데 말이죠. 단순히 제가 도움을 주겠다는 태도로만 활동에 임하려 했던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어요."

조은은 학교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신의 노동과 연관 지어 설명했다.

"예전 코로나 시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업장 사정으로 인해 제 월급이 많이 줄어들었을 때가 있었어요. 월세를 내고 나니 생활비가 10만원도 되지 않아서 막막한 감정에 울었던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월급이 삶 자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그때의 경험을 통해서 노동자분들의 투쟁에 더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학생들은 결코 스스로를 노동자들과 분리한 관점으로 투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들이 투쟁에 참여하는 과정에는 많은 고민과 노동의 경험이 불러오는 공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숙명여대 학생들이 학내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는 의미를 담은 현수막을 제작하여 학교에 걸어놓았다. ⓒ숙명여대 학내노동자 학생연대 TF팀

노학연대에 부는 새로운 바람

대학 캠퍼스가 코로나로 인해 맞이한 변화는 셀 수 없다. 그중 하나를 꼽자면,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가 이전만큼 활발하지 못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코로나로 주춤했던 노학연대는 올해 캠퍼스가 열리면서 새로운 세대를 맞이했다. 코로나로 명맥이 끊긴 노학연대에 새로 뛰어드는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학연대를 올해 시작한 학생들은 당연히 미숙하다. 인터뷰한 네 명의 학생들처럼, 현수막을 처음 만들어보기도 하고 대자보를 처음 붙여보기도 한다. 집회에 참여해서 투쟁을 외치는 것은 이들에게 너무나 어색한 일이다.

노학연대의 새로운 문을 여는 학생들이 이런 어려운 책임을 짊어지면서까지 운동을 만들어나가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끝나지 않는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제는 지켜보기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켜보기만 해왔던 투쟁에 내가 직접 뛰어드는 일은, 결정하기까지의 과정도, 직접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과정도 깊은 고민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런 고민이 만들어낸 학생들의 책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결합해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는 이전의 노학연대와는 또 다른 절박함을 갖는다.

노학연대의 명맥이 끊긴 대학 캠퍼스에 새로운 노학연대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 바람은 느리고 미숙하지만, 그 어떤 학생들의 운동보다 확고하고 간절하다. 숙명여대 TF팀 학생들이 바로 그 바람의 선두에 있다. 이들이 열심히, 신중하게 놓고 있는 돌다리가 미래에 학생과 노동자를 연결할 수 있는 소중한 기반이 되어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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