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가 노동자 외면할 때 학생들은 한걸음에 달려갔다

[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② 고려대 교지 '고대문화' 편집위원회 박기영(가명) 인터뷰

'학생회관 앞 불법시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연세대학교 에브리타임(학내 커뮤니티)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학내 청소노동자들의 시위를 미신고 집회로 고발하고 638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한 세 명의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수많은 언론사가 취재하기 시작하면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 소식도 같이 알려졌다.

고발한 학생 3명의 이야기에 언론이 떠들썩한 것과 대조적으로 학내 노동자 투쟁에 꾸준히 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주목받지 못했다. 학생운동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고들 말하지만, 자신이 속한 학교를 쓸고 닦고 지키는 노동자들을 같은 학내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사실 끊긴 적이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와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가 함께 주관하여 각 학내 학생들의 목소리가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인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 문제해결을 위한 청년학생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연세대, 고려대, 서울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에서 '우리 학교'의 투쟁뿐만 아니라 대학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문제를 함께 해결해보자고 말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글로 담는다.(필자)

학교의 주인은 노동자라고 외치는 학생들

22일간의 학교 본관 철야농성 끝에, 고려대학교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이 투쟁 승리를 이루어냈다. 노동자들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본관의 문을 두드렸을 때, 학교는 문을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았다. 학교는 노동자들을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학생들은 도리어 학교의 주인은 노동자들이라고 외쳤다.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에 가장 먼저 달려온 이들은 바로 고려대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당번을 짜고 본관에서 노동자들과 밤을 함께 보냈다. 그들 중에 기영이 있었다. 투쟁 소식을 들은 기영은 학교 본관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려대분회가 투쟁에 승리하여 농성을 해제하며 투쟁 승리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이 함께 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꿈이 바뀌게 된 계기

기영의 어렸을 적 꿈은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 애초에 경력단절이 잘 없는, 결혼과 육아라는 것이 내 진로를 막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기영이 꿨던 '교사'라는 꿈은 그가 그 나이에 파악한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2016년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기영은 주변에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친구들을 만났다. 친구들과 함께 잘못된 것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원래 기영이 다니던 학교는 두발규정이 자유롭고 교복을 수선해서 입는 것이 허용되던 곳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바뀌면서 학교 내 불필요한 규정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관행으로 굳어지면 더더욱 바뀌기 어려운 규정들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규정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자보를 써 붙이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들이 적절하지 않은 발언을 할 때 바로 손을 들고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2017년도에 박근혜 정권의 탄핵을 요구하는 바람이 불었다. 기영은 그 바람에 휩쓸리기보다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17년도에 박근혜 탄핵 집회가 있었잖아요. 그걸 참여하게 되면서 실제로 뭔가 나라의 대표라는 대통령이 하나 없어지는 것이 내가 겪고 있는,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로는 부족하겠다. 그렇다면 세상이 바뀌려면 뭐가 필요할까? 이런 고민이 들었어요."

그때 기영은 오랫동안 간직해온 교사라는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아 내가 나를 소외시키는 방향으로 내 장래를 구성해왔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그때 당시에 박근혜 탄핵과 함께 있었던 사회운동의 요구들을 보게 되고, 페미니즘도 한 축으로 보게 되면서, 이 문제들이 함께 변해야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영은 이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력단절이 되지 않는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게 되었다. 대신, '여성들이 경력단절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고민을 계기로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던 고려대 본관에 학생들이 찾아와 투쟁발언하며 연대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나의 운동이 만들어지는 과정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 기영은 자신이 돌진하는 트랙터 같았다고 말했다.

"왜 사람들이 운동을 안 하는지 그걸 이해하는 데 1년이 걸렸어요.(웃음) 왜 다들 운동을 안 하지?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해서 지금 당장 운동을 하지 않고 뭐하는 거야?"

2019년에 기영은 대학에 입학했다. 19년도에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었다. 톨게이트 투쟁이 있었고, 신영프레시젼 투쟁이 있었다. 기영은 그들의 투쟁 속에서 구조적인 여성 혐오를 읽어냈다.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찾아가 연대했다.

각각의 투쟁을 묶어내어 학내 인권부스를 통해 여성 노동과 관련된 사업을 펼쳤다. 학회에서 세미나를 구성하여 토론을 진행하고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학생들이 종종 학회에 가입하기도 했다. 그 학생들과 만나 관계를 맺고 서로를 설득해나가는 과정도 하나의 운동이었다.

학내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에 결합한 것은 올해부터였다. '고려대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를 통해 학내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여 간담회를 개최하고 노동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학생들도 이 투쟁에 연대하고 지지한다, 원청인 학교가 책임있게 나서라'라는 내용의 자보를 작성하고 학교의 곳곳에 붙였다. 

학내 교지인 '고대문화'에서 기영은 학생들에게 이 문제에 대해 알려야겠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매일 진행하던 중식 집회에서 투쟁의 모습을 촬영하고 교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투쟁 현장을 생중계했다.

기영은 학생운동을 하면서 자신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하나의 투쟁, 하나의 운동을 무조건 지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나만의 입장을 가져야겠다고 배우게 되었다.

"저는 언제나 투쟁에 참여할 때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려고 해요. 우선 일이 터지면 몸이 무조건 먼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투쟁의 내용에 대해서는 나만의 기준에 따라서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내 노동자들의 투쟁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운동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관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학생으로서 참여하고 있는 이 운동이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그러나 기영은 그런 질문과 비판을 하는 것이 당장 이 운동에 결합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한마디가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이유에서라도 결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영은 오늘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한다.

▲고려대 학생들이 학내 청소·주차·경비노동자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학생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내 주변에서의 변화가 피우는 불씨

돌진하는 트랙터 같은 그녀도 노동운동에 대한, 집회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자주 마주한다. 고등학생 때에도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따가운 눈초리를 보내왔다.

"고등학생 때에는 그런 사람이 싫었어요. 왜 바뀌지 않을까? 왜 그럴까? 그런데 대학에 와서 느끼게 된 것이, 그것도 하나의 주장이고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혐오라고 말하기보다 그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맥락을 이해하는 게 운동에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기영은 강하다. 그런 사람들이 백만 명, 천만 명이 있어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그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실 그런 시선에 별 신경을 안 쓰는 성격인 것 같기도 해요(웃음)."

기영은 '세상이 바뀔 수 있다'라고 당당히 말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바뀔 수 없다'라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바람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바뀌는 것부터가 세상을 바꾸는 시작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려대 노동자들과 함께 학교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투쟁이 승리하는 것을 눈앞에서 봤다. 학회에 새로 들어온 학생에게 세상을 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하고 그 사람이 변화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세상이 바뀐다는 것의 의미를 꾸준히 고민하고 활동해 나가는 것이 기영의 새로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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