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에 대중교통이 무제한!"…독일의 실험 그 이후

[초록發光] 독일 9유로 티켓이 남긴 질문과 과제

"다섯 명이 가도 다섯 잔의 물을 공짜로 준다고?"

식당에서 물값은 따로 받지 않는다는 말에 독일 친구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인원수에 상관없이 물은 언제나 공짜! 원한다면 두 잔, 그 이상도 가능하고. 아예 물통을 통째로 갖다주기도 하지. 물뿐인 줄 알아? 주변 곳곳에 있는 공중 화장실도 무료로 무제한 이용이 가능한 나라가 한국이야!

물론 그가 놀란 것만큼이나 나 역시 독일 식당에서는 맥주보다 비싼 값을 내고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 식당이나 기차를 제외하곤 백화점, 고속도로 등의 화장실 입구에서 돈을 내는 일이 흔쾌하진 않았다. 그래서 기차를 이용할 때는 무료 화장실 이용을 잊지 않았다. 물론 기차요금이 저렴하지는 않았다. 독일에서의 기차요금은 이동과 이용이 망설여질 만큼 비쌌다.

그런데 지난 6월부터 독일에서 단돈 9유로(약 1만2000원)면 한 달간 독일 전역의 버스와 기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특실(1등칸) 이용과 고속철도(IC, EC, ICE)는 탑승할 수 없지만, 8월까지 3개월간 한시적으로 판매하는 이 티켓의 가격은 파격적으로 저렴한 것이다. 6월 첫 달에만 2100만 명이 구매했다고 한다. 이미 표가 있었던 정액권 사용자들 1000만 명을 고려하면 (이들에게는 9유로를 제외한 차액을 돌려준다) 독일에서 1/3 이상의 시민들이 9유로 티켓을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다.

독일교통협회와 독일철도(DB)의 설문조사 결과 9유로 티켓 이용자의 88%가 만족스럽다고 대답했고, 39%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기 위해, 70%는 가격이 저렴해서 이 티켓을 구입했다고 답변했다. 독일연방교통부장관(Volker Wissing)도 한시적이나마 9유로 티켓을 도입한 것은 매우 성공적이라 평가했지만 9유로 티켓 판매는 예정대로 8월로 종료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독일 연방교통부는 9유로 티켓을 3개월간 운영하면서 발생한 25억 유로를 부담했다. 이 제도를 지속한다면 연간 약 100억유로(약 13조 500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렇다면 9월부터 독일의 대중 교통정책은 9유로 티켓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독일 기차역에서 찍은 9유로 티켓 사진. 지난 6월부터 독일에서 단돈 9유로(약 1만2000원)면 한 달간 독일 전역의 버스와 기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임성희

9유로 티켓이라는 파격적인 제도는 대중교통 이용 잠재성이 얼마나 높은지, 저렴한 대중교통 정책이 왜 필요하고 어떤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9유로 티켓 도입 이전과 대비하여 교통 정체는 확실히 줄었고, 시민들은 교통비 부담을 덜었다. 기후보호에도 기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렇다면 독일의 대중교통정책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방식과 비용, 재정 분담을 둘러싸고 논쟁은 지속되고 있고, 1일 1유로, 연간 365유로 티켓 제도 도입도 여러 제안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대중교통 재정을 둘러싼 연방정부와 주 정부 간의 예산 보조와 요금 구조의 복잡성 때문에 결론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지만, 대중교통 요금 정책과 인프라 개선을 위한 변화는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연방의 재정에서 이미 650억 유로가 환경에 위해한 보조금에 사용되고 그중 80억 유로가 디젤에 대한 에너지세제 혜택을 위해 투입되고 있다. 결국 재정이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의 문제일 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독일에서 대중 교통 이용 활성화를 위한 저렴한 티켓 제도에 대한 제안은 오래되었다. 대표적으로 프라우언호퍼 연구소는 저렴한 '시민티켓'제도를 제안해왔다. 대중교통의 문턱을 낮추어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가용 이용자들을 대중교통으로 유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자동차를 위해 내주었던 공간을 되찾고, 대기오염 문제 해결과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서도 적극 고려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7월 1일부터 기후 티켓 (Klimaticket)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1년간 오스트리아 전역의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으로 비용은 1,095유로이다. 연간 티켓을 구매하면 1개월 이용권을 덤으로 준다. 2013년부터 에스토니아 도시 탈린에서는 무상 대중교통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룩셈부르크는 세계 최초로 전국 차원에서 무상 대중교통을 시행하고 있는 나라다. 2020년 2월 말부터 1등석을 제외한 대중교통(버스, 기차)를 무료로 이용하는데, 외국인, 여행자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에서는 화성시에서 23세 이하, 65세 이상에게 무상 교통정책을 펴고 있다.

9유로 티켓은 생태환경을 고려한 이동권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수송부문의 탄소배출 감축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시민들의 부담을 경감시켜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대중교통 이용 확대로 도로 혼잡 감소를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9유로 티켓은 '공적 공간은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공적 공간으로서 도로가 이제까지 전적으로 자동차를 중심으로 설계된 것이었다면 이제는 걷기 위한, 자전거를 위한, 대중교통을 위한 공간으로 재편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해 준 것이기도 하다. 공적 공간이 모두의 것이라면, 도로 역시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도로의 주인으로 자동차를 당연시하는 교통정책의 변화는 우리 사회에서도 필요하다. 국내 누적 등록대 수 2천5백만대를 넘어선 자동차. 그 많은 수의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수소차로 대체하는 것은 해법이 아니다. 전기차를 위해 생산되어야 할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과 저장 장치를 위해 채굴될 막대한 양의 희귀금속과 광물자원을 생각하면 자동차 수의 현격한 감소 없는 전기차로의 전환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내연기관차 생산, 판매, 등록 금지를 넘어 자동차 이용을 절대적으로 감소시키고 대중교통과 자전거, 보행으로의 전환을 위한 급진적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한 상상력은 이미 9유로 티켓이나 무상교통 등 여러 곳에서 실험되어 왔다. 여러 실험들은 이제 현실을 주도하는 도도한 흐름으로 만들어갈 때도 되었다. 관성을 벗어나려는 노력이나 버리는 것 없이 위기는 돌파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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