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공간의 '고독한 행군' : 어느 젊은 민족장교를 위한 변명

[프레시안 books] <고독한 행군> 1~4, 이계홍, 범우

70대의 나이에도 열정적인 작품활동을 펴고 있는 소설가 이계홍씨(75)가 최근 4권짜리 대하 장편소설 <고독한 행군>을 도서출판 범우사에서 펴냈다. 해방 공간의 좌우 대결을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10.1대구항쟁, 4.3제주항쟁, 10.19여순사건을 배경으로 청년장교들의 고뇌와 숙청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으며 <프레시안>에도 연재가 됐다. (연재 바로가기) 이 소설은 원래 <월간문학>에 34회 연재(2016.10~2019.6)했던 작품이다.

이들의 활약상을 암장하거나 입에 올리는 것을 금기시해 왔던 게 현재까지 우리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이 작가는 여기에 의문을 품고, 이념의 차원을 넘어 이들의 입장에서 청년장교들의 고뇌와 시대 모순, 외세 개입, 국내 지도자들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이전투구 상황을 아프게 그린다. 특히 일본 육사 생도들이 해방을 맞아 귀국하면서 민족장교로서 국가의 간성이 되겠다는 의지가 꺾이는 과정을 담아 냈다.

일본 육사 출신들을 보면, 56기 김종석 이형근 박임항을 필두로, 57기 박정희 이한림 김호량 김영수, 58기 박원석 최주종, 59기 황택림 홍승화 장창국, 60기 장지량 조병건 이성구 이재일 김학림, 61기 오일균 등이다. 여기에 만주군 출신 백선엽, 최남근, 이병주, 이상진 등도 해방공간에서 활동을 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외세를 배격하고 민족주의 이상국가를 꿈꾸다 외세 및 그 하수인들에 의해 처형되거나 행방불명된다. 이중 충북 청원 출신 오일균 이야기가 이 소설의 뼈대다.

일반적으로 일본 육사 출신 하면 친일파로 분류하지만, 당시 생도들은 해방이 되자 민족의 성원으로서 독립국가의 간성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가진다. 식민지 시대의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던 것에 대한 자기 성찰이다. 이들은 분단 모순을 괴로워하며 민족의식에 눈뜬다. 전승국 미국이 해방관리를 국민의 뜻과 달리 펼치면서 나라는 분단이 구조화되고, 여기에 국내 정국은 이념투쟁과 헤게모니 쟁탈전으로 대립이 격화된다.

1946년 대구 10·1 항쟁, 1948년 제주 4·3항쟁, 1948년 10·19 여순사건을 계기로 일부 젊은 일본 육사 출신 장교들의 고뇌가 시대정신과 함께 표출되는데, 이 과정에서 이들 대부분이 사라진다. 이 책은 기자적 현장성과 작가적 상상력, 증언과 기록을 중심으로 엮은 해방공간의 논픽션 형식의 스토리 텔링이다.

작가 이계홍은 30년 이상 언론 현업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뒤 3년 전 역사 대하소설 <깃발> 5권을 냈다. 이번에 낸 것은 역사 소설 제2탄으로 <고독한 행군>이다. 이 작가는 젊은 시절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펴다가 언론계 생활을 하면서 사실상 문학을 중단했다. 퇴직 이후 이 작가는 우리 역사의 내면, 그 중에서도 우리 역사의 수난기를 세밀하게 살피며 소설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언론사 퇴직한 뒤 마포에 한국인물연구소라는 간판을 걸고 집필실을 마련해 주로 인터뷰 활동을 벌였다. 각 분야 샐럽들은 물론 전문가, 생활인으로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는 휴먼스토리를 쓰는 작업이었다. 언론사 재직 시절 문화부, 특집부에서 주로 근무하면서 인물인터뷰, 탐방기사를 많이 써온 배경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국방일보> 측에서 우리 '장군'들의 일대기를 집필하는 의뢰를 받았다가 해방 공간에 활동한 장교들의 스토리에 관심을 가졌고, 이는 격동의 동아시아 역사의 맥락 속에서 야심과 포부를 가진 다양한 군상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 수난기는 임진왜란-병자호란 시기(작품 <깃발>)와, 구한말의 망국, 그리고 해방 공간 등 크게 세 시기로 나누었다. 이 작가는 "우리가 좀더 역사의식에 투철하고, 분열과 대립상을 성찰하는 가운데 창조적으로 미래를 설계했더라면 어두운 시기를 극복하고 보다 이상적인 나라를 가졌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이 작가는 "해방 공간의 이야기는 작가든 역사학자든 사회학자든 여전히 입체적으로 파고들어 작업을 펼칠 수 있는 광활한 무대"라며 "이것이 제대로 파헤쳐지지 않은 것은 냉전 기득권 체제가 강화된 측면과, 여전히 그런 역사가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가는 "제한된 영역이나마 최초로 우리나라 군대를 통해서 해방공간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렸다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총 4권으로 이뤄진 대하소설 <고독한 행군> 이계홍 작 ⓒ범우

저자 이계홍

전남 무안 출생.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석사 졸업, 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현대문학 전공). 동아일보 체육부 문화부기자 및 문화부차장 여론독자부 차장, 문화일보 문화부장 체육부장 특집부장 사회2부장, 서울신문 논설위원 수석편집부국장 통일문제연구소장(국장급). 서울여자대학교, 용인대학교 겸임교수, 동국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객원교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국책연구기관) 연구기획조정팀 전문위원, 세종포스트 주필 역임. 1974 월간문학 신인상 소설부문 당선으로 문단 데뷔.

▶ 작품집

소설집〈틈만 나면 자살하는 남자〉(책나라), 중편소설집 〈비껴앉은 남자〉(신원문화사), 소설집 〈밑천〉(문학아카데미), 장편소설 〈초록빛 파도〉(아사달의 꽃), 서울 노마드〉(문학나무), 장편역사소설 〈깃발- 충무공 정충신〉(전 5권, 범우사), 역사소설 ‘불타는 나라-장만 장군 이야기’(오피니언 타임스 연재) 외.

▶ 인물전기 및 휴먼스토리

〈울밑에 선 봉선화-홍난파 전기〉(우석출판사), 〈이계홍의 휴먼스토리〉(모아드림· 월간 《신동아》 연재 ‘이 사람의 삶’ 인터뷰집), 인물전기 ‘장군이 된 이등병 최갑석’(화남출판사), 〈빨간 마후라 하늘에 등불 켜고-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 이야기〉(이미지북), 〈역사를 넘어 시대를 넘어-전주월한국군사령관 채명신장군 전기(국방일보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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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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