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논란이 일었던 '만 5세 취학' 학제개편안에 대해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학제개편안 발표 이후 여론의 역풍을 맞고 박순애 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사퇴하는 사태에까지 이르자 교육부가 사실상 철회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박 전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학제개편안을 보고한 지 11일 만이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교육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폐기한다', '더 이상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드리지 못하지만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차관은 전날 박 전 부총리의 사퇴로 장관 대행 신분으로 업무보고에 나선 자리에서 유기홍 교육위원장의 질의를 받고 이같이 답했다.
장 차관은 "초등 입학 연령 하향 방안은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하나의 제안 사항으로 보고됐던 것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해 보겠다는 내용이었다"라며 "브리핑 과정에서 마치 추진이 확정된 것으로 보도가 되고 이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사후적으로 굉장히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도 "정책 취지 자체는 교육과 돌봄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보자는 취지"라면서 앞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자는 취지이기에 이를 달성할 여러 방안에 대해 국민·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장 차관은 "대통령 업무 보고와 관련하여 소통 부족으로 여러 가지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과 위원님들께 죄송하다"면서 "신중한 자세로 국민에 귀 기울이고 국회와 소통하며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을 만들어 나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與 "교육부가 혼란 초래" vs 野 "결국 대통령 지시"
이날 여야 교육위원들은 학제개편안 논란과 관련해 책임 소재를 두고 다른 입장을 보였다. 여당은 교육부를 질타한 반면,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공세를 폈다.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은 "교육부가 너무 설익은 아이디어 차원의 정책을 대통령 업무보고에 내놓아 괜한 분란과 혼란을 초래했다"면서 "교육부 공직자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 정부도 학제개편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보육 서비스를 더 갖춰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는데 아직 유보통합도 제대로 안 된 상황 아니냐"라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은 박순애 전 부총리를 임명한 인사권자로서의 책임과 함께 학제개편안 논란도 윤 대통령 본인의 책임임을 지적했다. 민주당 간사인 김영호 의원은 "박 전 장관은 스스로 떠났으나, (그를) 검증도 없이 임명해 졸속으로 온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윤 대통령은 사과도 없다"면서 "학제개편도 결국 대통령의 지시 아니었나"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그러면서 학제개편안 정책 출처를 집중적으로 따져 물었다. 강득구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업무보고에서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했다. 그러면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이 이렇게 업무지시를 한 걸 박순애 장관이 충실하게 따랐다는 것 아니냐"며 "이 정책이 윤 대통령과 박 전 부총리의 합작품이 아니냐"라고 물었다. 장 차관은 "업무보고를 받으시고 지시를 한 것"이라며 원론적 수준에서 답했다.
이처럼 학제개편안 논란 책임 소재와 관련해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실에서 학제개편 사안과 관련해 장 차관에게 쪽지를 건넨 것이 언론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권성연 대통령실 교육비서관의 이름이 적힌 해당 쪽지에는 '오늘 상임위에서 취학연령 하향 논란 관련 질문에 국교위를 통한 의견 수렴, 대국민설문조사, 학제개편은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영호 의원은 이 쪽지에 대한 사진 보도를 접하고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해 "권성연 비서관이 차관에게 '학제개편을 언급하지 말라'는 메모를 전달한 게 포착됐다"며 "이게 사실이면 차관은 여기 와서 허수아비 노릇을 하고, 컨트롤 타워는 대통령 비서관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영호 의원은 "어떻게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대통령 집무실의 일개 비서관이 차관에게 이런 메모지를 전달하느냐"며 "교육위원장이 확인해달라. 이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에 유 위원장이 장 차관에게 "보도 내용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고, 장 차관은 "의견을, 메모를 전달받았는데 그것은 의견일 뿐이고 제가 판단해서 답변하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유 위원장은 "어떻든 메모를 전달받았다는 건 차관도 시인한 것 같다"고 말하자, 장 차관은 "메모를 제가 직접 받은 건 아니고 의견을 우리 직원이 메모 형태로 제가 참고자료로 전달을 받은 것"이라고 했다. 유 위원장은 "직원에게 메모를 줬겠느냐. 차관 주라고 메모를 줬겠지. 자꾸 말장난하지 마시라"고 질타했다.
김영호 의원은 오후 질의에서 재차 "쪽지를 갖고 계신 것 자체로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질책하면서 "5세 이하 입학 관련 당정청 회의를 연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장 차관이 "한 적이 없다"고 답하자, 김 의원은 "당정청 회의를 안 했나. (교육부가 대통령실과) 소통도 안 하고 쪽지대로 지침만 따르는 게 정상적인가. 그러니까 기자들이 촬영해서 보도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건희 표절 아님' 국민대 판단 존중"
한편 장 차관은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국민대학교에 대해 "대학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장 차관은 민주당 도종환 의원이 김 여사가 작성한 논문의 표절 여부를 묻자 "지금 알 수 없다"고 답한 뒤, "(국민대) 조사 위원회에서 검증을 충실하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의 검증 시스템 자체를 일단 존중한다는 기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앞선 지난 1일 국민대는 김 씨의 박사 학위 논문 등 3편에 대해 "연구 부정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고, 학술논문 1편에 대해선 '검증 불가' 결론을 내렸다. 이같은 국민대의 결론에 대해 당시 교육부는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장 차관은 이날도 국민대 판정을 존중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되풀이했고, 도 의원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은 이를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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