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은 크루그먼이 尹정부에 조언한다면 "부자감세는 좀비야!"

[프레시안 books]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싫어한다. 사람들이 좀비와 싸우다가 일부는 좀비로 변하고 주인공을 포함해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 좀비를 소탕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너무 단순화했지만 좀비 영화는 이 줄거리 패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게다가 좀비는 잘 죽지 않는다. 다 죽은 줄 알았던 좀비 중 한명이 되살아나면서 속편이 시작된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폴 크루그먼 지음, 김진원 옮김, 부키 펴냄)라는 헐리우드 영화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책은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좀비' 경제정책이 어떻게 지난 수십년간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지 통렬하게 비판한다. 폴 크루그먼은 노벨 경제학상(2008년) 수상자이자 경제학자들도 인정하는 경제학자다. 그는 <뉴욕타임스>에 20년 넘게 '폴 크루그먼 칼럼'을 연재하는 등 대표적인 미국의 '공적 지식인'이기도 하다.

경제학자가 싸우는 '좀비'는 "반증에 의해 이미 쇠멸되었어야 하는데 여전히 비척비척 걸어다니며 사람들의 뇌를 파먹고 있는" 경제 정책을 말한다. 정책은 시간이 지나면 객관적으로 성패가 검증되고, 실패한 정책은 역사 무대에 사라져야 할텐데, '좀비'처럼 지긋지긋하게 되살아나는 정책들이 있다는 얘기다.

최강 좀비, 부자 감세

크루그먼은 대표적인 좀비 정책으로 '부자 감세'를 꼽는다.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이 도입한 부자 감세는 1979년-1982년 미국의 '이중침체(더블 딥)'을 극복한 경제 정책이라고 보수주의자들은 주장한다. 크루그먼은 이런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1980년대 초반의 경기 후퇴는 연준이 높은 인플레이션율을 억제하려고 이자율을 대폭 올렸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며, 1982년 이자율을 떨어뜨려서 그 뒤 호황이 찾아온 것이라며 "1982년-1984년 호황은 대개 레이건의 감세 정책이 아니라 금융 완화 조치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우파가 감세정책을 옹호하기 위해 저 케케묵은 일을 계속 끄집어낼까? 왜 최근 보다 성공한 사례를 거론하지 않을까?"의문을 제기하면서 "왜냐하면 그런 사례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후 1993년(빌 클린턴), 2000년대 초반(조지 W. 부시), 2017년(도널드 트럼프)에도 감세 정책을 실시했지만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부자 감세 정책이 죽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크루그먼은 "자신의 부 가운데 극히 일부를 떼어 감세 바이러스를 흔쾌히 퍼뜨리는 정치인, 두뇌 집단(사실은 무뇌 집단), 당파적 언론 매체를 지원할 의향이 있는 소수의 억만장자만 있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크루그먼은 부자 감세 좀비 외에도 과학이 밝혀낸 결과도 무시하는 '기후변화 부정 좀비', "미래 세대에게서 그만 훔쳐라" 같은 구호로 진지하고 점잖은 척하지만 사실상 저소득층 지원을 줄이고 실업률을 방치하면서 경기 회복에는 아무 순기능을 하지 못하는 '긴축 좀비', 경제 불평등을 부정하는 '불평등 없다' 좀비, 불평등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4차 산업혁명과 기술 발전 때문에 발생하는 불가피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기술 격차 좀비'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도 '부자 감세'

공교롭게도 서평을 쓰는 동안 윤석열 정부는 21일 첫 세제개편안을 발표했다. 선명한 감세 기조로 세법이 정부안대로 바뀌면 세수는 13조원 넘게 감소할 전망이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감세라고 한다.

무엇보다 법인세 최고세율 하향, 상속.증여세 완화, 종부세 다주택 중과 폐지 등을 통한 기업과 고소득층 감세는 7조7000억원 규모로 서민.중산층의 감세(4조6000억원)에 비해 훨씬 크다. 법인세 인하가 전체 감세에서 차지하는 비중(6조8000억 원)이 가장 크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감세안을 발표하면서 기업들의 부담을 줄여주면 투자가 늘어나고 이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소위 '낙수 효과'를 언급했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크루그먼이 당장 이렇게 외칠 것이다. "좀비야!"

마지막으로 '공적 지식인'으로서 크루그먼이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실패의 진짜 원인을 설명한 대목을 소개하고 싶다. '이기주의의 신성화'에 도달한 보수주의, 한국은 예외일까?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 정책은 엄청난 참사였다. 수천명이 아무런 까닭없이 생목숨을 잃었다. 심각하지만 짧았을지 모를 경기 침체가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 불황으로 이어졌다. 어쩌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묻는다면 대답은 이것이다. 다 좀비 탓이다."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는 대체로 이기주의의 신성화에 다름 아니다. 즉, 구속받지 않는 사리사욕 추구가 번영과 행복을 여는 열쇠라는 주장 말이다. 우파는 타인을 보호하려면 희생을 약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제안에 무조건 분노부터 쏟아낸다."

▲<폴 크루그먼, 좀비와 싸우다> (폴 크루그먼 지음, 김진원 옮김, 부키 펴냄)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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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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