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6.3 조기 대선에, 윤석열 정부 국정 2인자였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일 오전 나온 한 전 총리의 대선 출사표에는 '비상계엄'에 관한 언급은 일절 없었고 그에 대한 사과도 당연히 없었다.
전날 총리직 사의를 밝힌 뒤, 이날로 사직서가 수리된 한 전 총리는 곧장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의 선택을 받도록 전력을 다하겠다"며 출마를 강행했다.
한 전 총리는 "(앞서) 국회에서 여러 차례 죄송하다고 말했다"며 정작 출마선언 자리에서는 계엄·탄핵 사태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애초 "대선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던 태도를 뒤집어 직접 대선 주자로 뛰어든 배경에 관해서도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탄핵당한 정부의 총리가 대선에 출마하는 것을 두고 명분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질문을 받자 "여러 번 국회에서 죄송하다, 송구하다 반복해 말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며 "제대로 된 리더십에 의해 고치지 않으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만 했다.
12.3 계엄 해제를 위해 당시 어떠한 노력을 했냐는 물음에도 한 전 총리는 "그 문제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헌법재판소가 결론을 냈다"며 "헌재라는 사법 절차가 완료됐다"고 답했다. 윤 전 대통령과의 향후 관계 설정에 관해서는 "저는 많은 대통령을 모셨지만, 한 번도 제 철학을 꺾어가면서 대통령들의 생각이나 이런 거에 따라본 적 없다"며 두루뭉술한 입장을 밝혔다.
한 전 총리는 출마선언문에서 개헌 추진을 공약했다. 당선 시 임기 첫날 '대통령 직속 개헌 지원 기구'를 만들겠다며 "취임 첫해에 개헌안을 마련하고, 2년 차에 개헌을 완료하고, 3년 차에 새로운 헌법에 따라 총선과 대선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곧바로 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3년 내에 개헌을 마치고, 3년 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동시에 치르게 해 본인은 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이와 관련 "3년 안에 제가 말한 모든 걸 이룰 수 있다면 전 그 안에라도 기꺼이 하야하겠다"고 공언했다. 한 전 총리는 자신을 "이길 수 있는 경제 대통령이고, 좌나 우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사람이며 약속을 지킨 뒤 즉시 물러날 사람"이라고 내세웠다.
그는 대선 국면 꾸려질 보수진영 '빅텐트'의 기준과 관련해서도 "절실하게 요구되는 건 헌법 개정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찬성하는 분들과는 어느 누구와도 협력해 나갈 것이다. 필요하면 통합도 해나가고 노력하겠다"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말했다.
아울러 그는 '거국통합내각'을 구상을 밝히며 "저에게 가차없이 쓴소리하는 분들, 대선 과정에서 경쟁하는 분들을 한 분 한 분 삼고초려해 모시고, 거국통합내각에 모시겠다"고 말했다. 또한 "사회 모든 분야에서 국민통합과 약자동행이 이루어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다만 한 전 총리는 더불어민주당의 국무위원 탄핵 등 야권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는 않았다. 그는 "개헌은 그야말로 서로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고, 자기의 편익을 위해 탄핵하는 게 아니고, 자기의 추구하는 바를 위해 국무위원을 정지시키는 게 아니고, 수사 검사를 직무 정지시키는 게 아니"라며 "행정부와 대통령, 입법부가 충돌하지 않고 협치할 수 있는 근본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했다.
전날 민주당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소추안 추진에는 "정말 실망했다"며 "지금 최 전 총리가 탄핵되면, 적어도 3개월은 직무가 정지된다. 그걸 민주당이 원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 전 총리의 사퇴로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이어받을 예정이었던 최 전 부총리는 전날 민주당의 탄핵안 추진에 사퇴했다. 최 전 부총리의 사직서는 한 전 총리가 전날 밤 처리했다.
현재 무소속 원외 신분인 한 전 총리의 국회 기자회견은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의 소개로 이뤄졌다. 김기현·송언석·이인선 등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이 기자회견장을 찾아 한 전 총리에게 힘을 실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출마 선언 뒤 현충원을 참배하며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그는 이후 서울 종로 쪽방촌을 방문해 오세훈 서울시장과 만나 오찬을 함께했다.
한 전 총리는 쪽방촌 방문 행사를 오 시장과 함께 한 이유에 대해 "오 시장이 그간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모토를 걸고 그 분 본인들의 자존심을 유지하면서도 시가 도와줄 수 있는 많은 일을 한 것을 알고 있다"며 "중앙정부로서도 이런 일종의 새로운 복지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했다.
한 전 총리는 이날 오후 광주 방문 일정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데 대해 "제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한 첫 날에 광주 5.18 묘지를 가야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준비를 한 것"이라며 "이런 것들을 너무 미리 알리거나 하면 과거 정치인들이 하는 일종의 의례적인 것으로 알지 않을까 해서 조용히 다녀오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5.18이 우리나라 전체 국민의 통합에 있어 의미하는 바가 매우 크다"며 "당연히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광주 5.18(과 관련), 불행한 일로 희생된 분들에 대한 마음, '이런 일들이 다시는있어선 안 된다는 의지와 이 분들이 가진 마음의 응어리에 대한 인식과 배려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처럼 사회가 분열되고, 남의 얘기 안 듣고 본인이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일종의 확증편향, 반지성(이 문제)"이라며 "조화·상생·협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확증편향·반지성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부정선거 음모론 등 극우 이데올로기와 그 결과이기도 한 12.3 비상계염 사태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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