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도시가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에게

[시민권 없는 시민들-서울도시가스 여성 안전 점검노동자] ③

저는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투철한 노동의식도 신념도 없이 그저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아줌마였습니다. 그저 학교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는 게 좋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7년을 일한 무기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교장이 바뀌면서 아무런 이유 없이 내가 사랑한 일터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순순히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부당함에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노동조합을 만났습니다. 기나긴 복직 투쟁, 복직 후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 등을 진행하다 보니 노동조합 간부까지 맡게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학교에서 일한 시간보다 노동조합 활동가로 산 세월이 많아져 버렸네요.

지난 5월 24일, 서울시청 별관에서 동지들과 함께 한 1박 2일의 농성투쟁은 제게 긴 가뭄 뒤 단비 같은 하루였습니다. (관련 기고 ☞ 도시가스 여성 점검노동자들의 생애 첫 외박 )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온 저의 지나온 날들을 되짚어보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차별이 눈에 보였다는 이야기, 억울함에 몸과 마음이 반응해 노동조합으로 모이게 되었다는 이야기, 처절하게 몸싸움도 해보고 억울함에 서로 붙들고 처절하게 목 놓아 울어보았다는 이야기들이 어쩜 이렇게 나의 이야기와 똑같은지요. 당신들을 보면서 또 다른 나를 보는 듯 눈이 절로 뜨거워졌습니다.

그날 경찰은 우리가 면담을 요구하러 가는 길을 폭력으로 가로막았습니다. 떼인 임금을 받기 위해 담당자와 면담하겠다는 우리의 요구에 대한 답변은 폭력과 감금이었습니다. 

▲서울시청 별관 외문과 내문 사이에 고립되어 있는 도시가스 안전 점검노동자들과 연대단위 활동가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부상자가 속출했습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과 바닥에 쓰러지는 사람들,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까지 서울시청 별관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결국 병원으로 향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서울시도 경찰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시민의 민원을 받아안아야 하는 서울시도, 시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경찰도 모두 우리의 적이었습니다. 서울시는 우리와 대화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로막고, 감금하고, 폭력을 행사했을 뿐입니다.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에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비롯한 몇 명의 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이 문과 문 사이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팔이 비틀리고 발이 밟히는 등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당신들은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의 아픈 몸을 부둥켜안았습니다.

감금된 공간 안에서는 생존유지를 위한 어떠한 활동도 모두 싸워서 얻어내야 했습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갇혀있다 보니, 공기가 통하지 않아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생겼지만, 경찰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몇몇은 어지러움증과 탈진 증세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화장실을 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오게 해달라고 하자, 경찰은 위에서 아직 결정된 것이 없으니 보내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가만히 있을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경찰에 적극적으로 항의하며 투쟁한 끝에 화장실을 교대로 다녀오게 되었지만, 공권력에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제한당해야 했던 굴욕적인 날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우리의 절박함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도시가스 안전 점검노동자들에게 농성 물품이 전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서울시가 설치한 바리케이트 사이로 피켓팅하고 있는 노동자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그 힘든 와중에도 당신들은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내일 방문을 약속한 고객님에게 "제가 떼인 임금 못받아서 죄송하지만 내일 못 갑니다 고객님!" 하고 외치던 조합원의 이야기, 유행가를 개사한 투쟁가를 부르며 서로 박장대소하던 시간들. 그래도 조금 더 먼저 더 많이 싸워 보았다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할 때마다 격하게 호응해주시던 반짝이는 눈동자들, 그것으로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단지 대화하기 위해 온 우리를 탄압하는 경찰과 서울시는 무엇을 위해 이 끔찍한 1박 2일 사태를 만든 것입니까? 이 모든 책임은 서울시와 경찰에게 있습니다. 내 월급 떼먹지 말고 제대로 달라는데, 누구도 답하지 않는 현실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입니까?

윤석열 정부는 우회적 민영화 구조조정 노동개악 공세가 점차 거세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이 투쟁의 주인공은, 지금 이 기막힌 시대의 영웅은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당신들, 그리고 우리들입니다.

탄압에 굴하지 맙시다. 우리의 1박 2일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시간들도 견뎌냅시다. 그리고 반드시 승리합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