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계양을 보궐 선거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윤형선 국민의힘 후보를 제치고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결과적으론 이겼지만, 찜찜한 승리다. 무명에 가깝던 '0선' 후보를 상대로 힘겨운 대결을 펼치며 대선주자로서의 명성에 큰 흠집이 생겼다. 정치인 이재명에게 지난 대선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였다면, 이번 보궐선거는 '이못싸(이겼지만 못 싸웠다)'였다. 얻은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은 선거였단 얘기다.
명분 없는 출마에 등 돌린 텃밭 민심
"이번에 지면 정치 생명 끝장나요."
이 후보가 지난 23일 계양 유세 도중 유권자들에게 했던 이 말은 그저 엄살이 아니었다. 이 후보에게 이번 선거는 단순히 국회의원 배지를 다느냐, 아니냐의 차원을 넘어, 정치 생명이 끝나느냐, 이어지느냐를 결정짓는 절체절명의 기로였다.
지난 3월 대선에서 패한 지 불과 두 달 만의 출마 선언이었다. 대선에서 패한 정치인들이 보통 긴 잠행의 시간을 가진 것과 다른 선택이었다. 당 밖은 물론이고 내부에서도 무리라는 지적이 잇따랐다. 대선 패배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대선 후보가 단순히 활동을 재개하는 정도를 넘어서 이처럼 단기간 내 직접 선거에 출마한다는 건 전례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인천 계양은 연고가 없는 지역이었다. 명분 부족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 후보는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당이 처한 어려움과 위태로운 지방 선거 상황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며 정확히 대선 두 달 만인 지난달 8일 출마를 공식화했다. 심지어 민주당의 선거를 총지휘하겠다며 총괄선대위원장직까지 맡으며 다시 선거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이러한 선택의 전제는 '나가면 이긴다'는 것이었다. 앞서 송영길 전 대표가 다섯 번이나 당선된 민주당의 '텃밭'이니 떼어 놓은 당상이라 여긴 셈이다. 나아가 총괄선대위원장직까지 맡은 것은 계양을 승리를 고리로 인천 등 수도권에도 승리의 바람을 불어넣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새 정부 출범 여파로 야당이 된 민주당에 이번 선거는 어차피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총괄한 선거에서 민주당이 기대보다 선전할 경우,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는 것은 물론 다음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해 '친명(親明)계'를 두텁게 형성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면 다음 대선 경선까지는 탄탄대로. 쉽게 말해 '문재인 코스'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막상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녹록지 않은 선거 지형이 펼쳐졌다. 국민의힘이 인지도는 낮지만 계양 토박이인 윤 후보를 공천하며 '연고 정치인' 대 '무연고 정치인' 프레임 전략을 편 것이다. 인천에 연고가 없는 이 후보는 '일 잘하는 일꾼'을 내세웠지만 국민의힘이 내건 프레임 전략은 강했다. 계속되는 '25년 대 25일' 공세에 계양 여론이 흔들렸다.
첫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는 10% 내외로 여유 있게 앞서나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세는 윤 후보 쪽에 쏠렸다. 선거 막바지에는 급기야 윤 후보가 앞선다는 조사도 나왔다. 예상 밖의 접전에 당황한 이 후보는 선거 전략도 급히 수정했다. 총괄선대위원장으로서 전국구 유세를 다니던 그는 계양 유세에 집중해야만 했다.
계양을 승리 기운을 전국에 전파하겠다는 포부와는 달리, 상황은 반대로 돌아갔다. 계양을 지지율이 하락하는 동시에 당 지지율도 같이 내려앉았다. 선거 초반 민주당이 내걸었던 "과반 승리" 목표는 "8곳"에서 "5곳"으로 점점 축소됐다.
혼자 살아남은 선거...'문재인 코스' 가능할까
출구 조사 결과는 이 후보 54.1%, 윤 후보 45.9%, 첫 여론조사와 엇비슷한 수준이었다. 패하거나 신승을 하는 최악의 상황만은 면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지만, 당은 처참하게 패했다. "저의 모든 것을 던져 인천부터 승리하고 전국 과반 승리를 이끌겠다"던 말은 허언이 됐다. 이번 선거 승리를 발판으로 전당대회부터 차기 대선 경선 때까지 차근차근 당 입지를 늘려가겠다던 계획은 틀어진 셈이다.
이번 선거로 '정치 생명이 끝장'나진 않지만 위태로운 지경에 빠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당 내 비토 세력이 대선 패배에 대한 문책을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선거마저 승리로 이끌지 못하면서 책임 추궁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선 이후 짧았던 정계 복귀, 험지 아닌 텃밭 출마 등에 대한 비판이 우후죽순 쏟아지며 이 후보의 정치력에 대한 회의론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기정사실로 여겨졌던 8월 전당대회 출마부터 재고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이 제기된다. 그러나 차기 대선 출마를 위해선 당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관문인 만큼 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관건은 이 후보가 자신에게 향하는 책임론을 어떻게 돌파하고 리더십을 회복할 것이냐에 있다. 아울러 아직 당내 입지가 탄탄하지 못한 친명계가 여전히 건재한 친문(親文)‧86 그룹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나갈지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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