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 비상대책위원장이 연일 강력한 당 쇄신 의지를 밝하고 있다. 지방선거 패배 위기가 거론되는 중에 나온 자구책으로,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86세대'의 퇴진 등 강력한 당 개혁을 통해 중도층을 포섭하자는 취지의 주장이다. 그러나 86세대 당사자를 포함한 당내 주류 세력과 강성 당원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지며 민주당이 혼란에 빠지는 모양새다.
박 위원장은 지난 24일 긴급 대국민 호소에서 "맹목적 지지에 갇히지 않고 대중에 집중하는 당을 만들겠다"며 "민주당을 팬덤 정당이 아니라 대중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당 내 여론은 확연히 갈렸다. 인천 계양을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김동연 경기지사 후보 등은 박 위원장의 지적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낸 반면, 한 편에서는 '내부 총질'이라며 반발했다.
김민석 민주당 선대위 공동총괄본부장은 25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금은 (지방선거) 막판이기에 그것보다는 조금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포함하면 좋겠다는 일정 논의가 지도부 내부에 있었다"면서 "지도부 안에서 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본인이 평소 생각한 걸 이야기했다"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박 위원장의 돌출 행동을 지적한 것이다.
김 본부장은 전날 자신의 SNS에도 "무한 책임감과 과잉 책임감은 다른 것이다. 옳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강경파 초선 의원 모임인 '처럼회' 소속 김용민 의원도 전날 자신의 SNS에 "사과로 선거를 이기지 못한다"며 "새로운 약속보다 이미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은 전략"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당 홈페이지 게시판, 민주당 유튜브 계정 실시간 채팅창 등에는 "박지현 탈당하라", "보기 싫다", "민주당은 당원들이 주인인 것을 잊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글들이 줄을 이었다.
더 나아간 박지현 "쇄신안 담은 대국민 사과문 채택해야"
쏟아지는 반발에도 박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갔다. 그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회 합동회의에서 당 내 86 정치그룹을 향해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해야 한다"며 "용퇴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때 2선 후퇴하겠다는 선언이 있었지만 은퇴를 밝힌 분은 김부겸 전 총리와 김영춘 전 장관, 최재성 전 의원밖에 없다. 선거에 졌다고 약속이 달라질 수 없다"며 "586의 사명은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이 땅에 정착시키는 것이었다. 이제 그 역할은 거의 완수했다"고 직격했다.
또 당 윤리심판원이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강욱 의원에 대한 징계 회의를 지방선거 뒤로 미룬 점을 지적하며 "비대위의 비상 징계 권한을 발동해서라도 최강욱 의원의 징계 절차를 합당하고 조속하게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서울·경기·인천 시도지사와 선대위원장이 공동으로 당 개혁과 쇄신 방안을 담은 대국민 사과문을 채택하고 국민 앞에 밝힐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그는 "어제 회견 이후 왜 사과를 자꾸 하느냐는 분들이 많다. 반성하지 않은 민주당에 대한 국민 분노가 더 깊어지기 전에 신속하게 사과드리고 호소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팬덤 정치는 끊어 내야 한다. '검찰 개혁 강행만이 살 길이다. 최강욱 의원 봐주자'라는 식(의 주장)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라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같은 박 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다른 지도부 인사들은 곧바로 제동을 걸었다. 전날부터 박 위원장에 대한 공개 비판을 해온 김민석 본부장은 같은 회의석상에서 박 위원장을 향해 "팬덤의 잘못된 행태는 극복해야 하나 권리 당원의 권리 증진이란 내용 또한 있어왔음을 놓쳐선 안 된다"면서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어 최 의원 징계와 관련해서도 "당헌·당규에 맞게 신속하게 처리하되, (민주당이) 지도부 일방 또는 개인의 독단적 지시에 의해 처리되는 수준의 정당은 아니"라고 비판했다.
윤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 대선에서 국민이 민주당에 명령하신 정치 교체와 정당 혁신의 길도 중단 없이 걸어갈 것"이라면서도 "더 단결하고 더 혁신해서 다양한 가치들이 어우러진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돌발 발언이 당의 단결을 저해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윤 위원장은 전날도 박 위원장 대국민호소문 발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쇄신안이) 당과 협의된 바 없다", "(박 위원장) 개인 차원의 입장 발표"라고 했었다.
공교롭게도 윤 위원장은 1963년생, 김 본부장은 1964년생으로 ‘86세대’에 해당된다. 두 사람은 모두 서울대를 나온 50대 남성(서오남)이기도 하다.
비공개 회의에서 고성까지 오가…朴 "윤호중, 숙고해야" vs 尹 "공개회의 안해"
이날 공개 발언이 끝난 뒤 진행된 비공개 회의에서는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윤 위원장은 "앞으로 월·수·금 공개회의는 안 하겠다", "지도부 자격이 없다"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지도부에 속한 다른 86그룹 인사도 "무슨 말을 하든 지도부와 상의하고 하라"며 박 위원장을 겨냥했다고 한다. 박 위원장도 지지 않고 "봉하 다녀와서 느낀 바가 없느냐. 노무현 정신은 어디 갔느냐", "이럴 거면 나를 왜 여기 앉혔느냐"고 맞섰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 내 반발에 대해 "우리 당이 적어도 민주당이라면 이런 다양한 의견 분명히 낼 수 있다고 본다"며 "지도부의 협의된 내용도 물론 중요하지만 뭐가 맞는지에 대해서는 윤호중 위원장도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고 받아쳤다.
윤 위원장도 뒤이어 기자들과 만나 '86 용퇴론'에 대해 "당의 쇄신과 혁신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에 선거를 앞두고 몇 명이 논의해서 내놓을 내용은 아닌 것 같다"며 "당의 그런 논의 기구가 만들어지고 거기에서 논의될 사안이라고 본다"고 부정적 입장을 명확히 했다.
박 위원장이 비상 징계 권한을 언급한 데 대해서도 "그 사안(최 의원 징계)은 윤리심판원으로 넘어가 있는 것이고, 윤리심판원에 징계 절차를 넘긴 것도 비대위 의결사항"이라며 선을 그었다.
이처럼 지도부 사이에서조차 파열음이 나오면서 전날 박 위원장이 공언한 금주 내 당 쇄신안 발표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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