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의 과제

[서리풀 연구通] "'안티 페미' 비판과 동시에 '페모내셔널리즘' 역시 경계해야"

20대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대 정당 모두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네거티브 전략과 표심을 위한 정치공학에 골몰했다. 무엇보다 여성혐오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대단히 퇴행적인 선거이기도 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발언, 남성만을 정치의 주체로 상정한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났다. 선거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되었으며, 여성들의 발언은 성폭력의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요구하는 의제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었다.

피로감만 큰 소모적인 선거를 거쳐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낮다. 대선 직후 윤석열 당선자의 국정수행 전망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긍정적인 응답은 52.7% 수준으로, 역대 정권의 60~70%에 비해 유독 낮다. 기대는커녕, 우리의 삶이 더 나빠지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암울한 시기이지만 우리가 너무 냉소하고 좌절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있다. 대선 직후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 12억 원의 후원금이 모였고, 20~30대 여성의 민주당 입당 신청이 줄을 이은 점은 '안티 페미니스트' 정권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저항 의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치적 주체들의 결집과 이를 통한 세력화를 바탕으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우리의 지난 투쟁의 방향이 옳았는지, 과오는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지에 관한 철저한 반성이다. 오늘 소개할 논문은 페미니즘의 외피를 쓴 우익적 젠더정치가 어떻게 페미니즘 정치의 목표와 전망을 한계 짓는지 비판적으로 분석한 전의령(2020)의 연구이다.(☞ 바로 가기 : 타자의 본질화 안에서의 우연한 연대: 한국의 반다문화와 난민 반대의 젠더정치)

이 논문은 2018년 제주도를 통해 입국한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불거진 '난민 반대 담론'을 통해 우익적 젠더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을 분석하고 있다. 이때 당시, 무려 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멘 난민 신청자들의 수용 거부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서명하였으며, 온라인 SNS도 난민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들썩거렸다. 난민 반대 단체도 출범하고 여러 차례 집회도 열렸는데, 이러한 활동의 중요한 주체들은 기존의 보수‧우익 집단들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있었다. 이 여성들은 '엄마'와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혐오가 아니라 안전을" 요구한다면서 예멘 난민의 수용을 반대했다.

난민 수용 반대는 예멘 난민을 '난민'으로 보지 않고, '성착취자'로 본질화함으로써 정당화되었다. 온라인상에서 이슬람권의 '여성 할례'와 '조혼풍습'에 관한 내용이 반복적으로 전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예멘 남성은 ''조혼 악습'과 '명예살인'이라는 문화 또는 관습 아래 여아들을 잔인하게 강간하고도 제재받지 않는 자들'로 정의된다. 이러한 정의는 '전쟁 포화 속에서 어린 아내와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 온 이기적인 남성과 이들에 의해 희생된 여성이라는 단순화된 대립 구도를 강화하는 한편, 이러한 '미개'한 '아프리카 문화'를 고정적이고 변치 않는 것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예멘 난민(남성)을 잠재적 '아동 성범죄자'로 규정한다.

맘카페에서는 난민들 때문에 "애기 데리고 다니기 겁나"고,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 안전하길 바란다며 두려움과 불안을 호소하는 글들이 게시되었다. '엄마'라는 정체성과 그 안에서 의미화되는 '아이들에 대한 불안' 및 '난민 남성의 위협성'에 대한 제기는 모성의 가부장적 자연화 속에서 가능하다. 이와 같은 맘카페 회원들의 정치적 발화는 이성애‧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에게 부과된 돌봄과 재생산이라는 역할 안에서 행해졌다. 한편, 난민 반대 운동에 참여한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예멘 난민을 '난민'이 아니라 '남성'이자 '억압자'로 본다. 이들은 성별 권력관계를 가장 근본적인 억압관계로 간주함으로써, 남성-억압자 대 여성-피억압자의 이분법을 고착화한다. 이 과정에서 희생자로서 예멘 여성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여성과 남성은 다양한 사회문화적‧정치적‧역사적 의미가 탈각된 채 생물학적 본질주의 안에서 이해되며, 페미니즘 정치의 목표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난민 반대 주장의 사례들은 '여성의 얼굴'을 하거나 '페미니즘의 외피'를 쓴 언행이 우익적 정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반대로, 보수‧우익적 움직임 속에서 페미니즘의 가치가 전유되고, 극우주의자‧민족주의자‧신자유주의자들이 '여성인권과 반성폭력'이라는 페미니즘적 의제도 적극적으로(그리고 선택적으로) 동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페모내셔널리즘(femonationalism)'이라고 부른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반이주민 노선을 공고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젠더 평등이 활용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젠더 평등의 문제에 무관심했던 주류 보수 정치권과 이들을 위협하는 극우 정당이 중첩되는 유권자들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가운데, 북아프리카계‧무슬림 이주민의 여성 억압을 과잉 강조하고 이에 대립하는 것으로써 젠더 평등을 '프랑스적 가치'로 재정의한 것이다.

20대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차별금지법에 사실상 반대하면서도 성폭력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한 점 역시, '안전'이라는 타협 가능한 페미니즘적 가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한 성폭력의 범주도 일부이고, 무고죄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하는 등 매우 제한적인 수준에서 제시된 것이지만 말이다.) 물론 여성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관철하기 위한 노력은 중요하고, 이는 어느 정도 여성 운동의 성과이다. 다만 이 논문은 여성의 안전을 위한 투쟁이 본질주의적 젠더 이분법 논리에 기대게 될 경우, 타자를 공존 불가능한 대상으로 규정하고, 다양한 여성들의 투쟁을 무화하며, 기존의 이성애중심적‧가부장적‧계급적‧인종적 관계를 재생산함으로써 우익적 기획에 복무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우리는 페미니즘 정치의 목표와 전망을 한정 짓는 '안티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페미니즘, 혹은 페모내셔널리즘 역시 경계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스스로의 역할을 '엄마' 혹은 '피해자'에 국한하는 정치, 구조적 차별을 유지하는 정치를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을 배제하고 혐오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들은 오래 지속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박탈과 혐오의 대상이 될 가능성과 그로 인한 취약성을 재생산하는 이 체제를 영속화한다. 새로운 연대의 대항 정치를 통해 우리가 무사히 안티 페미니스트 대통령 시대를 살아갈 수 있기를, 우리의 투쟁이 다른 누군가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내버려 두거나 모른 척하지 않기를, 우리를 위한 투쟁이 곧 타인을 위한 투쟁이 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대선에서는 지워졌던 장애인, 이주민, 홈리스, 성소수자 등의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연대의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해본다.

▲3월 11일 오전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열린 2022 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참고문헌


- 전의령. (2020). 타자의 본질화 안에서의 우연한 연대: 한국의 반다문화와 난민 반대의 젠더정치. 경제와사회, 360-401.


- Krupenkin, M., Rothschild, D., Hill, S., & Yom-Tov, E. (2019). President Trump stress disorder: partisanship, ethnicity, and expressive reporting of mental distress after the 2016 election. Sage open, 9(1), 2158244019830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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