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사각지대'에 갇힌 동물들… "기르던 개 까맣게 타 죽어"

동물권행동 카라 "19년 고성 산불 당시에도 똑같은 피해"

동물보호 단체 활동가들이 울진 산불 현장에서 화재 피해를 입은 동물들의 사례를 밝히며 "재난재해 속에서 동물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10일 오후 '동물권행동 카라(KARA)'는 논평을 내고 "(울진 산불로 인해) 인명과 재산 피해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고, 생명을 잃은 사육 동물들도 어림잡아 수백 마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재난 시 동물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는데다 대피소에 반려동물이 입소할 수 없어 동물피해가 더욱 커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카라는 "재난재해 동물 대피 매뉴얼은 행정안전부의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에 그치고, 이마저도 안내견 외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으니 지인 내지 친척 등 동물이 대피할 곳을 자체 확보하여 이동시키라는 지침뿐"이라며 재난재해 대응체계 내의 동물보호대책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한국에선 재난재해시 반려동물 혹은 농장, 야생동물에 대한 안전대책이 따로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다.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이 규정하는 보호 대상은 국민(사람)으로 한정되어 있고, 행정안정부의 애완동물 재난대처법에는 "애완동물은 대피소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카라 소속 활동가 신주운 씨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소 축사에 묶여있던 두 마리 개 중 한 마리를 구조했지만, 한 마리는 새까맣게 타 죽어있었다"며 실제 재난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사례를 전하기도 했다. 신 씨는 지난 7일 이재민 대피소로 지정된 강원도 울진군 울진국민체육센터에 찾아 피해 가정을 대상으로 동물 구호 접수를 진행하고, 피해현장에 나가 동물 구호 활동을 펼쳤다. 그는 "산불 피해 지역은 주로 시골이다 보니까 대피할 때 차량조차 이용할 수 없는 노인 분들이 많다"며 "몸만 급하게 빠져 나오는 상황에 기르던 개의 목줄을 미처 풀어주지 못한 것"이라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대피소에 동물을 데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현장에 '남겨진 반려동물'들은 구속이 풀려도 피해를 당한다. 신 씨는 "목줄을 끊고 (사람이 살던) 집으로 대피했지만, 이미 화재가 번진 해당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질식사한 것으로 보이는 개의 사체를 확인하기도 했다"며 "대표적인 반려동물인 개 이외에도, 닭이나 소 등이 죽거나 다쳐있는 피해사례를 많이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본적으로 동반 대피가 어려우니, 급박한 상황 속에서 (동물 대피를 신경쓰지 못하고) 사람만 대피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그나마 19년 고성 산불의 경험을 통해 주인들이 목줄을 풀어놓거나 (축사 등을) 열어놓았기에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친 것"이라고도 했다. 

카라는 정부의 '늑장대처'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날 논평에서 이들은 "매번 발생하는 대형 재난재해 속에서 동물은 여전히 ‘배제’되어 있다. 지난 2019년에 발생한 고성산불 재난에서 심각한 동물피해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며 "행정안전부는 이제야 부랴부랴 재난 시 동물보호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하며 마련하겠다 밝혔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재난재해 상황에서의 반려동물 대피를 위한 '동물보호법·재해구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해당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인 상황이다. 

또한 단체는 반려동물 이외 농장동물, 야생동물 등에 대한 정책 공백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카라는 " 정부의 대책이 ‘반려동물“에 국한된 정책으로 귀결될까 우려스럽다"며 " 대피할 공간조차 없어 축사에 그대로 갇힌 채 희생당하는 농장동물"들과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은 야생동물과 길고양이"들을 위한 포괄적인 동물보호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동물보호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으로는 △보호자와 (실내, 외 사육동물 모두 포함한) 반려동물 동반 대피 및 대피소 의무 확보 △재난 시 사육동물 목줄 풀어주기, 축사 열어두기 의무화 및 미 이행시 차등 보상 △재난 시 사육동물을 위한 일반 행동 요령 수립 △재난 시 농장동물을 위한 세부지침 마련 및 상해 시 고통 경감을 위한 약물 허용 등 인도적 조치 △야생동물 및 길고양이에 대한 물과 먹이 공급 지원 △유기동물보호센터 대피소 사전 확보 및 안전 훈련 등을 제시했다.

이에 신 씨는 "울진군 등 작은 규모의 지자체의 경우 동물에 대한 피해 현황을 파악하고 대피 방안을 마련할 여력이 부족하다. 동물 피해상황의 파악이나 구호 활동 등도 민간 단체들이 피해가정의 제보를 받아 직접 진행 중이다"며 "정부가 재난재해 상황에서의 동물보호를 위해 매뉴얼을 만들어 두는 일이 우선적이고, 필수적인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강원도 울진 산불 피해 현장에서 동물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물권행동 카라(KARA) 활동가들 ⓒ동물권행동 카라(KAR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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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섭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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