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뒤에 숨은 램지어 "한국 '위안부' 강제 징집은 거짓말"

[워싱턴 주간 브리핑] '전쟁범죄' 옹호하는 토론문 실은 하버드대의 무책임

한국계 여배우 산드라 오가 주연(김지윤 역)을 맡았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에는 동료 교수(빌 돕슨)가 수업 중 '나치 경레'를 한 것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이 핵심적인 갈등 중 하나로 등장한다. 학생들이 앞뒤 문맥과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이 행동을 문제 삼아 돕슨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아시아 여성 최초'로 영문학과 학과장을 맡은 지윤이 해결해야할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간다.

가상의 스토리이지만 이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미국 학계, 더 나아가 미국 사회 내에서 독일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어느 정도 무게로 자리매김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는 그 누구도 이견을 달 수 없는 끔찍한 전쟁 범죄다. 어느 누구도, 특히 학자 입장에선 이를 옹호해서는 안 된다. 앞서 '하이힐을 신은 트럼프'라는 별명을 가진 공화당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도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무화를 홀로코스트에 비유했다가 사과를 해야만 했고, 배우 우피 골드버그도 "홀로코스트는 인종주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가 해당 방송 출연을 일시적으로 정지당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 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인정하는 지극히 당연한 인식이다.

안타깝지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전쟁 범죄에 대해선 이런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다. '더 체어'에선 동료 교수 돕슨을 잘 알기 때문에 그의 행동이 '나치 옹호'와는 거리가 멀다며 그를 감싸는 학과장 지윤마저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에 반해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 계약에 기반한 매춘부(prostitute)"라는 주장을 하는 논문을 발표했던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최근 하버드대에서 출판된 토론문을 통해 자신의 논문의 정당성을 거듭 주장하고 나섰다.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미쓰비시 일본법학 교수는 지난해 3월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 위해 "열살 아동이 자발적 성매매를 했다"고 노골적으로 아동 성매매를 옹호하는 논문("태평양전쟁에서의 성 계약")을 발표했다. '미쓰비시 일본법학 교수' 자리는 하버드대가 일본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로부터 수십년에 걸쳐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은 뒤 만들어졌고, 램지어가 해당 교수로 처음 임용됐다. 선교사 출신인 부모 때문에 일본에서 나고 자란 램지어 교수는 일본 기업법이 전공이며, 2018년 일본 정부로부터 '욱일장' 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논문은 학술지 <법경제학국제리뷰(IRLE)> 온라인에 게재됐다. 이어 2021년 3월호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언론을 통해 논문 내용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쏟아지자 출판이 보류된 상태다. '위안부' 문제를 전공하는 역사학자 뿐 아니라 그가 차용한 '게임이론'을 전공하는 경제학자, 법학자 등 4000명에 육박하는 전세계 학자들이 그의 논문을 비판하는 성명서에 동참하면서 출판을 강행하려던 움직임이 저지됐다. 하지만 <IRLE>는 출간 자체를 취소하지는 않았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며 '보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토론문 통해 "1996년 유엔 위안부 보고서도 거짓"

이런 가운데 하버드 대학신문 <하버드 크림슨>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램지어 교수가 지난 1월 하버드대 존 M. 올린 센터의 토론문 시리즈 중 하나로 자신의 논문("태평양전쟁에서의 성 계약")에 대한 비판들에 대해 재반박하는 글(바로가기)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램지어 교수는 이 글에서 자신의 논문에 대한 비판들이 "실제 주제를 무시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미성년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성매매 계약을 맺었다)는 것에 대해 "도덕적인 판단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는 학자로서 왜 실제 남성과 여성이 계약을 맺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 계약들의 도덕적 특성을 평가하는 것은 결정적으로 내가 조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이 글에서 "한국 여성들이 일본군에 의해 강제 징집됐다는 주장은 거짓"이라면서 이를 자신의 논문을 비판한 학자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1996년 유엔에서 발표한 '위안부 보고서'의 정당성도 인정하지 않았다.

"내 논문에 대한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많은 수의 한국 여성들이 한국에 있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징집됐다고 주장한다. 내 논문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지만 이 토론문에서 이를 논의하겠다.

이 주장은 거짓이다. 한국 여성들은 한국에서 일본군에 의해 계획적이거나 강제로 위안소로 징집된 것이 아니다.

강제 징병에 대한 동시대의 문서는 없다. 1945년 전쟁이 끝난 이후 35년 동안 어떤 증거도 없었다. .

1980년대 후반에서야 일부 한국 여성들이 자신들이 강제 징집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1983년 요시다 세이지라는 일본 작가가 자신을 포함한 일당이 한국 여성들을 총검으로 찔러 강간한 뒤 성노예로 보냈다고 주장하는 베스트셀러를 써냈다.

1996년 유엔의 한국 여성 징집에 관한 유명한 보고서는 이 책을 근거로 했다. 이 책을 계기로 소수의 한국 여성들이 앞서 다른 설명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 징집됐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요시다는 자신이 죽기 전 책 전체를 조작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의 조작은 <뉴욕타임스>를 포함한 아시아와 해외에서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위안부 분쟁은 요시다의 사기 사건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놀랍고 결정적인 것은 내 비평가들에 의해 이런 사실이 언급되지 않았다."

<하버드 크림슨>은 램지어 교수의 토론문에 대한 학자들의 비판에 대해 보도했다. 하버드대 앤드루 고든 교수(역사학)와 카터 에커트 교수(동아시아언어문화학)는 앞서 자신들의 비판이 램지어가 한국인 위안부 계약과 관련된 주장의 증거로 일본 여성들의 계약서를 인용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지적이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램지어 교수는 한국 위안부 계약서를 갖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노스웨스턴대 에이미 스탠리 교수는 동료 교수 4명과 같이 발표한 성명을 통해 램지어의 주장에 대해 "그의 토론문은 첫번째 논문과 똑같은 문제를 갖고 있다"며 그가 객관적 증거 없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글을 <뉴요커>를 통해 발표해 주목을 받았던 지니 석 거슨(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도 "다른 학자들의 연구를 검토하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학계의 일이고 동료 검토를 통해 연구 오류가 드러났을 때 이를 인정하는 것이 학자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 교수가 일본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이 발견한 일본어 출처 오류에 대한 답변은 이 논문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으면서 기존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동료 교수들이 지적하고 있는 명백한 '학술적 오류'에도 불구하고 램지어 교수가 여전히 '학문적 주장'이라며 '망언'을 계속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라는 든든한 배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와 일본 우익언론을 '방패' 삼은 램지어, '망언'은 계속된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처음 발표됐을 때 하버드대 내에선 학교 측에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가 쇄도했다. 하버드대 학생회, 로스쿨 학생회 등이 이런 요구에 앞장섰다. 이에 대해 하버드대 총장은 "학문의 자유에 해당한다"는 짧은 입장을 표명하는데 그쳤다. 이어 램지어 교수가 지난 1월 훨씬 노골적으로 "한국 여성들의 위안부 강제 징집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하는 소논문까지 하버드대 로스쿨을 통해 발표됐다. <하버드 크림슨>은 이 토론문에 대한 학교 측의 입장을 문의하자 하버드 로스쿨 대변인은 개별 논문에 대한 언급은 부적절하다면서 입장을 밝히는 것을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연세대 법학연구원 신희석 박사(일본군 '위안부' 문제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 추진위원회)는 17일 기자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하버드대의 '책임'에 대해 지적했다.

신 박사는 "유대인 홀로코스트나 흑인 노예제, 여성 차별, 성소수자에 대한 사실 왜곡이나 편견이었다고 해도 과연 하버드대에서 이렇게 무책임하게 대응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학교 측에서 기계적 중립에 치우쳐 램지어 교수의 역사적 사실 왜곡, 인종주의에 대한 실체적 검증이나 가치 판단 자체를 피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램지어 교수의 또 하나의 중요한 '버팀목'은 일본 우익 집단이다. 지난해 램지어 교수의 논문 내용이 최초로 알려진 것도 일본 우익 신문인 <요미우리> 보도를 통해서였다. 램지어 교수는 이달 초 우익성향 주간지 <슈칸신초>에 "무리에서 배척당한 하버드대 교수가 밝히는 '위안부=직업매춘부' 논문에 대한 비정상적 비난"이라는 제목의 기고를 썼다. 

이 글에서 램지어 교수는 "지금 한국 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는 강력한 반일과 일본 비판을 기초로 하고 있다"며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을 위안소로 보내기 위해 강제 연행했다는 설은 유권자 지지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현 정권의 세력 유지에 도움을 주고 있고 나에 대한 공격은 바로 선거와 관련된 역할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부당한 공격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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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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