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진상 규명, 이젠 젠더 관점의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폭력과 여성] ⑫ 김상숙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下

<그건 '팔자'가 아니다>(☞바로가기) 에서 이어집니다.

<국가폭력과 여성>

① '나주경찰부대 사건' 유족 곽정례 할머니 上 1950년 7월 25일, 10살 딸은 아버지가 총에 맞는 모습을 봤다 (☞바로가기)

② '나주경찰부대 사건' 유족 곽정례 할머니 下 "유족회 막내가 일흔 둘이야, 한국전쟁 때는 뱃속에 있었을 거라고" (☞바로가기)

③ 삼척 고정간첩단 피해자 김순자 할머니 上 대한민국이 간첩으로 내몬 한 여자의 '평생 자술서' (☞바로가기)

④ 삼척 고정간첩단 피해자 김순자 할머니 下 "내 아들 내 놓아라" 엄마들은 밤새 철창을 잡고 흔들어 댔다 (☞바로가기)

⑤ '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사건' 피해 유족 김호정 씨 上 "15년 만에 알게 된 아버지 죽음의 진실, 범인은 '국가'였다"(☞바로가기)

⑥'재일교포 실업인 간첩단 사건' 피해 유족 김호정 씨 下 "독재정권 시대의 인권침해" 그 한 줄로 시작된 아버지 죽음의 진실규명(☞바로가기)

⑦ 실미도사건 유족 임충빈 씨 上 1968년, 실미도 사건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바로가기)

⑧ 실미도사건 유족 임충빈 씨 下 실미도 사건, 남은 사람들의 절규 "사형하고 암매장…어디 묻었는지도 말 안해요"(☞바로가기)

⑨ 전 YH 노조 지부장 최순영 上 "깨질 거면 크게 깨지자"던 여성들의 결의, 유신 붕괴의 도화선 되다(☞바로가기)

⑩ 전 YH 노조 지부장 최순영 下 경찰 천명을 동원한 국가폭력도 이 여성의 양심을 꺾지 못했다(☞바로가기)

* 이번 연재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와 함께 기획했습니다.

▲김상숙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 ⓒ프레시안(최용락)

프레시안 : 여성피해는 성폭력 피해가 가장 많을 것 같다.

김상숙 : 우리나라 과거사에서의 성폭력을 크게 구분하자면 우선 민간인학살 현장에서 발생한 성폭력이 있다. 민주화운동, 시위, 파업 진압과정에서의 성폭력, 정보기관의 사찰관리과정에서 발생하는 성폭력도 있다. 그리고 권위주의 시기의 시국사건, 공안사건에서 여성 구금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이 있다.

간첩 사건이나 시국사건 등을 조작하면서 구금자를 고문하는데 여성 구금자에게 성고문을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다. 성고문은 시국사건이 아닌 일반 형사사건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 선감학원 등의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성폭력도 있다. 수용소에서의 성폭력은 남녀 가리지 않고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성노예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성노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비교적 많이 알려졌고 연구도 많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군 '위안부', 유엔군 '위안부'도 있었다. 전후에도 미군 '위안부'는 '기지촌'에서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군 '위안부'에 대한 국가폭력은 주한미군에 의한 살인사건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윤금이 살해사건'이 유명한데 이 사건은 워낙 끔찍해서 알려졌지만, 그 외의 범죄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주한미군이 저지른 범죄인 데다 피해 여성들이 가족과 단절된 생활을 한 경우가 많아 국가기관에서 진상조사를 하기도 어렵다.

국가가 관리하는 단체나 시설에서 강제결혼이나 강제 낙태, 강제 불임수술 등의 폭력을 자행한 경우도 있다. 강제 낙태·불임 수술 등의 폭력은 한센인들을 대상으로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지만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는 '강제 임신'도 성폭력의 유형으로 보고 있다. 유고슬라비아 분쟁 시에, 인종 말살을 위해 여성을 모아 구금시설에 가두고 자기 민족의 아이를 강제로 임신시킨 사례다.

프레시안 : 성폭력이 아닌 젠더폭력은 어떤가.

김상숙 : 앞서 말한 것처럼 젠더폭력은 국가폭력과 성차별이 결합해 일어나는 폭력이다. 우리나라 과거사에서 보이는 모습으로는 '빨갱이의 처', '빨갱이의 딸'에게 남성보다 더 가혹한 차별과 억압이 작용하는 식이다.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자 공동체 내에서 또 소외되기도 한다.

제가 만났던 분 중엔 20살 때 남편이 보도연맹에 연루돼 학살된 분이 있었다. 그분은 그 후로 시가에서 학대를 당하며 살았다. '남편 잡아먹었다', '여자 팔자가 드세서 그렇다', '여자 잘못 들어와서 집안이 이렇게 됐다', 손가락질당하고 수시로 맞았다. 시부모님을 모시고 하녀처럼 살면서도 말이다. 하도 시집살이를 심하게 겪어서 시어머니 살아있을 때는 구들방에서 잔 적이 없다고 했다. 시가의 가족들도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지만 이분은 그 피해자 공동체 사이에서도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 된 것이다. 드문 일은 아니다. 여성이 민간인학살 희생자의 처나 딸이라는 이유로 집에서 내쫓기는가 하면 친척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한다.

마을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사례도 있다. 빨갱이 집안과 엮이면 안 된다고 다들 피하는 식이다. 농촌사회에서는 협업이 반드시 필요한데 여기서 제외된다. 논에 물 대는 것도 못하고. 남성에게도 이런 낙인과 배제가 이루어지지만 여성에게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쉽다. 예컨대 경찰이 수시로 와서 동향감시를 하면서 성적 노리개 취급하는 식이다. 성희롱, 성추행은 예사이고 마음에 들면 첩으로 삼기도 했다.

프레시안 :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도 심각했을 것 같다.

김상숙 : 그런 사례가 있다. 한 마을에서 전쟁이 끝난 뒤 보도연맹원의 아내를 경찰이 성폭행했다. 피해자는 성폭행으로 임신이 되어 나중에 아기를 낳았는데 집안에서 쫓겨났다. 그 집안의 사람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성폭행 가해자가 아니라 그 피해자를 비난했다. "바람이 났다", "평소 행실이 안 좋았다", "우리 집안의 수치다"라고 하면서. 그분은 결국 자기 고향 마을에서 떠나 다른 마을에서 아이를 데리고 살았다.

피해가 피해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도 2차 피해라고 할 수 있겠다. 제가 만난 분 중에 한국전쟁 당시 경찰이었던 분이 있었다. 그분이 당시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는데, "그 마을 보도연맹원 중 예쁜 여성이 있었다. 그래서 경찰 간부가 그 여성의 남편을 죽이고 그 여성은 첩으로 삼았다. 나중에 그 여성이 아들을 낳아 다방을 차려줬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다. 그런데 그 경찰이었던 분이 하는 말이 "보도연맹원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잘 된 케이스도 봤다"고 했다. 첩으로 들여 다방 차려주고 했으니 아주 행복하게 잘 해줬다 여기는 것이다. 다른 비슷한 사례에서도 "남편 죽고 팔자 폈다"라고 하면서 피해자가 비난 받는 경우도 있다.

프레시안 : 젠더폭력에서 성적인 측면의 폭력을 완전히 빼놓을 수는 없겠다.

김상숙 : 민간인학살의 경우엔 군경 토벌사건과 부역 혐의 학살 사건에서 성폭력이 잦았다. 토벌작전 때 여성들 골라 끌고 간다 거나, 아예 중대본부에 젊은 여성을 조달하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

부역 혐의 학살 사건의 경우에는 인민군점령기에 누가 인민위원장을 했다고 하자. 주로 남성이 위원장을 하게 된다. 국군 수복기가 되면 남성은 학살되거나 월북하는 등 도망간다. 그럼 그 인민위원장의 아내, 여성 가족이 집단 성폭행 피해를 겪는다. 또는 발가벗겨진 채 마을 장터 같은 곳에 끌려 다니기도 한다. 성적 모욕은 남성을 대상으로도 발생하지만, 여성 피해자가 많다 아무래도. 성적 모욕의 의미가 성별에 따라 다르니까.

성폭력 자체가 목적인 학살도 있었다. 어떤 마을에서, 전쟁 전에 우익청년단원 하나가 마을의 여성 한 명을 성폭행했다. 구장이 마을의 청년들을 모아 성폭행 가해자를 매질했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런데 한국전쟁 일어나고 마을에 국군이 들어오니까 이 성폭행 가해자가 완장을 차게 됐다. 그가 국군을 안내하면서 자기가 예전에 성폭행한 여성부터 마을 구장, 자신을 매질했던 청년들 모두 빨갱이로 지목했다. 그리고 끌려 온 여성들은 군인들과 그 우익청년단원에게 집단 성폭행 당하고 총살됐다. 성폭행을 위해 빨갱이로 만든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군인이 여성을 성폭행 하려는데 가족들이 나와 저항하니까 그 가족을 죽이고 여성을 끌고 간 사건도 있다.

프레시안 : 민간인학살에만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전쟁이라는 매우 폭력적인 상황에서 국가폭력이 더 약자인 여성에게 더 폭력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김상숙 : 앞서 말한 것처럼 학살·연행 등의 현장에서 성고문, 성폭행, 성기 등의 신체 훼손 폭력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자주 발생했다. 신체 훼손 사례로는 여성의 유방이나 생식기를 공격해 학살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으로는 이런 사례도 있다. 단발이나 파마머리를 한 여성을 찾아 "너 빨갱이지?" 하면서 죽였다. 단발이 빨갱이, 공산주의와 어떤 특별한 상징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니다. 농촌 지역에서 양장을 잘 차려 입는다거나, 단발이나 파마머리는 흔치 않으니까 "너 이상하다"하고 죽인 것이다.

과거사 진상 규명, 젠더 관점의 조사 반드시 필요한 이유

프레시안 : 이런 여성피해를 조사하는 데 있어서 1기 진실화해위원회의 방식에 어떤 아쉬움이 있나.

김상숙 : 젠더 관점의 조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앞서 말했듯이 젠더 관점에서의 국가폭력이 조명 받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시스템 자체가 신청주의 조사를 주된 방법으로 하고 있다. 즉, 신청이 들어오면 목격자를 찾고, 관련 문서를 찾는 방식이다. 그래서 젠더폭력,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사방법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 별도의 조사방법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부족하다. 사회에서도 젠더폭력 피해를 두고 '피해자가 운이 없었다'는 식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심지어 전시 성폭력은 '군대에 남자들이 모여 있으니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식의 생물학적 결정론은 위험하다. 이런 인식이 뒤집어져야 한다. 젠더폭력은 분명 구조적인 문제다. 그리고 국가 구성원이 가해를 했거나 국가가 관리하는 시설에서 일어난 젠더폭력은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가칭) 출범 합동브리핑.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 2018.6.8. ⓒ연합뉴스

프레시안 : 젠더폭력 조사에 참고할 만한 해외사례가 있나.

김상숙 :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화해위원회(이하 '남아공 TRC') 사례를 들고 싶다. 남아공 TRC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의 국가폭력 진상규명을 위해 활동했는데, 남아공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과거청산의 선구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남아공 TRC의 활동은 시민 참여적 성격이 매우 강했다. 진상규명 과정은 청문-진술-사면의 세 단계로 진행됐다. 각 지역의 사무소에서 청문회를 열어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조사관들은 피해자를 찾아 청문회에 데려오는 일을 했다. 청문회도 공개적으로, 전국에 7개 국어로 생중계됐다. 이런 공개적인 활동방식이 과거사 사건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일으켰다. 위원회는 청문회에서 나온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을 조사해 진실 규명했다. 그리고 청문회에서 나온 증언 내용은 후에 위원회 최종보고서 등의 자료로 만들어져 대중에 공개됐다. 이렇게 피해자가 주체적으로 말하게 하는 방식은 단순히 법적 진실 규명 뿐 아니라 사회적 진실을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남아공 TRC의 조사 방식은 피해자의 신청을 받은 뒤 신청사건 중심으로 진실규명을 한 우리나라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방식과 차이가 있다.

프레시안 : 시민 참여적 청문회에서 젠더폭력 조사의 필요성은 어떻게 드러났나.

김상숙 : 남아공 TRC도 처음부터 젠더폭력을 별도로 고려하지는 않았다. 조사를 진행하는 동안 젠더적 측면에서 눈에 띄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체 진술자 중 여성이 54.8%였는데, 여성 진술자는 중년이나 노년의 흑인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전체적으로 진술자는 여성이 많았지만, 이들은 자신의 피해보다 희생자 가족, 2차 피해자로서 아들과 남편 등 남성 가족 구성원에 대한 인권침해 피해를 증언한 경우가 많았다. 여성 진술자 중 1차 피해자로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한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됐다. 성폭력에 관한 부분은 진술하지 않는 경향이 컸다. 여성학자와 여성단체에서 이러한 점을 극복할 권고안을 남아공 TRC에 제시했고, 이에 따라 남아공 TRC도 여성피해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성들의 피해는 공개적 증언이 어렵다는 특성을 반영해 여성 피해자들이 안심하고 증언할 수 있도록 비공개로 여성특별청문회를 마련하고, 조사지침도 별도로 만들었다.

프레시안 : 젠더폭력을 별도로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 TRC 전체에 미친 영향이 있나.

김상숙 : 젠더폭력을 조사하기 위한 여성특별청문회는 무엇보다 '여성 피해자들을 위한 공간 만들기'에 주력했다. 이를 통해 성폭력을 포함한 젠더 차별에 따른 폭력이 다양하게 드러났다.

이것은 다른 주제별, 부문별 청문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흑인여성 의사, 환자에게 가해진 인권침해, 언론 부문 청문회에서는 흑인여성 작가에게 가해진 차별 등이 드러났다. 이처럼 여성 피해생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또한, 아동‧청소년, 성 소수자들의 인권침해 문제도 가시화됐다. 남아공 TRC는 이러한 내용을 최종보고서에 담아 공식 기록으로 남겼다.

남아공 TRC의 노력은 비록 미흡한 점은 있었지만, 이후 여러 나라의 과거청산 과정에 영향을 미쳤고 국제사회의 인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아공 사례를 바탕으로 1990년대 후반부터 아프리카나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가 과거청산 영역에도 성평등 관점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많은 나라가 남아공의 사례를 참고해 국가 차원의 과거청산 기구를 운용할 때 젠더폭력 문제도 해결 과제로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젠더폭력 드러내기, 피해자 개인의 피해 구제 이상의 의미

프레시안 :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했다. 젠더 관점의 조사를 위해 어떤 점이 반영돼야 하는가.

김상숙 : 현재 진실화해위원회는 개별 신청인의 피해구제와 명예회복을 주요 목표로 하는 법적 진실규명 방식으로 조사하고 있다. 물론 진실화해위원회는 역사적 진실규명의 의무도 있다. 피해자의 재심이나 피해 배·보상 문제 해결을 염두에 두고 조사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에게 사건을 신청 받은 뒤 과거에 국가기관에서 기록한 문서를 조사하거나, 제삼자(목격자, 전문증언자, 가해자 등)의 증언을 확보하여 피해자가 신청한 내용을 입증하고 진실규명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70여 년 전 한국전쟁 때 마을에 토벌 나온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고령의 피해자가 어렵게 용기를 내어 신청했다고 치자. 아니면 50여 년 전 사찰 관리하던 경찰들에게 성폭행 당한 피해자가 신청했다고 치자. 그런데 그런 피해 사실을 기록해 놓은 국가기관 문서가 있을까? 사건의 증인을 찾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과거사 젠더폭력 사건의 경우, 다른 사건과 같은 방식으로 조사했을 때 피해자가 신청한다 해도 대부분 피해자의 증언 뿐이라는 이유로 '진실규명 불능'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첫째, 과거사 젠더폭력 사건 조사를 위한 조사방법이나 조사원칙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유형의 사건은 다른 국가폭력 사건과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현 시점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성폭력‧젠더폭력 사건의 '수사'와도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둘째, 진실화해위원회 안에 과거사 젠더폭력 사건을 다룰 '전담조사팀' 구성이 필요하다. 이 팀에는 별도의 전문가로 조사관을 충원하고 심리상담 전문가도 결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셋째, 피해생존자들이 스스로 신청하고 증언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이러한 사건을 조사한다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널리 홍보하고, 피해생존자들이 신원 정보 비밀을 보장받으며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접수창구도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넷째, 진실화해위원회 차원의 직권조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사건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 젠더폭력 사건은 다른 국가폭력 사건과 결합하여 일어난 경우도 많다. 기존의 국가폭력 사건을 조사하면서 놓친 젠더폭력 사례를 수집하고, 그 결과를 모아 백서로 만들 필요가 있다.

다섯째, 현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기본법」은 여러 의원들이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개정을 추진 중이다. 5‧18 특별법처럼 이 개정안에도 과거사 젠더폭력도(아니면 성폭력만이라도) 진상규명 과제로 명문화하고 관련 조항을 담아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여성학계와 여성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도 힘을 모을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젠더폭력 사건을 따로 모아 백서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나.

김상숙 : 사실 고령의 피해생존자들을 만나보면, 그분들은 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금전적 배‧보상 같은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겪은 피해를 죽기 전에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겨서, 평생 피눈물 흘리며 살아온 삶을 그 누군가가, 특히 국가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유형의 사건은 국가기관이 기록한 문서나 목격자 증언으로 사실 여부를 입증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는 형태로는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므로 피해 사례라도 조사해 익명의 증언집이나 백서 형태로 발간해 국민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이러한 폭력을 드러내고 그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본다. 즉, 이렇게 살아온 피해생존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을 우리 사회가 기억하고 그 아픔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피해자를 위한 구제 방법은 만들 수 없을까.

김상숙 : 고령의 피해생존자들은 심리적 후유증이나 신체적 후유증이 심한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심리적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피해생존자들이 터놓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매우 절실하다. 신체적 후유증이 심한 분들을 위해 의료나 요양서비스 지원 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재발 방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사회 인식의 변화다. 미투 운동이 일어난 지도 몇 년 안 됐다. 즉, 사회에서 성폭력을 중대한 인권침해 문제라고 인정하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 그런데 지금도 미투에 나선 이들을 대상으로 2차 가해가 계속되고 있다.

과거사 젠더폭력 사건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 가부장주의 등 여러 겹의 억압 속에 국가폭력과 젠더폭력이 중첩된 지점에 있어 진상규명이나 피해 구제가 더 힘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지난날 국가가 저지른 범죄이기에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한다. 더구나 해방 후부터 1980년대까지만 잡는다 해도 과거사 젠더폭력 사건의 피해생존자 상당수가 고령이므로, 더 늦기 전에 그들의 피해를 구제하고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사회가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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