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하철 아시아계 여성 살해가 보여준 미국의 비극 두 가지

[워싱턴 주간 브리핑] '아시안 증오범죄'는 아니라는 아시안 대상 폭력

미국 뉴욕 지하철역에서 지난 15일 오전 아시아계 미국인 여성을 한 남성이 선로로 떠밀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결론이 내려지지는 않았다고 밝혔지만, 미국 현지 언론들은 이 사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아시안 증오범죄'에 다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관련법까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증오범죄' 기승

정신병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62세의 가해 남성은 15일 오전 뉴욕 타임스스퀘어 지하철역에서 중국계 미국인인 미쉘 알리사 고(40) 씨를 열차가 들어오는데 선로로 떠밀어 사망하게 만들었다. 범행 직후 경찰에 자수한 가해자는 피해자가 아시안이기 때문에 공격한 것이 아니라고 진술했고, 고 씨 이전에 공격을 당한 여성(이 여성은 다행히 사고를 면했다)은 아시안이 아니라서 '아시안 증오범죄'로 특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USA 투데이>는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현재 가해 남성은 2급 살인죄로 기소됐다. 

▲지난 주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미셸 알리사 고 씨 추모행사. ⓒAP=연합뉴스

이 충격적인 사건을 계기로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AAPI) 공동체의 공포는 더욱 커져만 가고 있다. "다음은 내 차례인가?"

이 살해 사건 전후로도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한 폭력 범죄가 연일 발생하고 있다. 21일 <뉴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30대의 미국 여성이 뉴욕 맨해튼 23번가 지하철역에서 아시아계 남성에게 접근해 "너희들이 바이러스를 퍼뜨렸다"고 욕을 한 뒤 피해자를 떠미는 일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인종.종교에 따른 차별에 기반한 학대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지난 12일에는 뉴욕 퀸스에서 70대 한국계 여성 노인이 공격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 여성은 길을 가다가 신원을 알 수 없는 한 남성이 뒤에서 밀쳐 넘어져 얼굴이 크게 다쳤으며 일시적으로 기억상실 증세까지 보였다고 한다. 이 남성은 공격을 한 뒤 바로 도주했다. 

지난해 7월에도 베트남계 여성이 뉴욕 지하철에서 공격을 당해 선로에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아시안태평양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모니터링하는 단체인 '스톱 AAPI 헤이트'에 따르면, 2020년 3월 19일부터 2021년 9월 30일까지 1만300건이 넘는 아시아 증오범죄가 발생했다. 이 단체는 뉴욕에서만 2021년 한해 동안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233% 증가했다고 밝혔다.

AAPI 공동 설립자이자 사회학자인 러셀 증 씨는 이날 <USA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인종주의와 공포의 맥락에서 아시안을 대상으로한 폭력은 여전히 아시아계 미국인을 외부인이나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며 "아시안에 대한 폭력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아시안이라며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인종적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피해자 8명 중 아시아계 여성이 6명을 차지하는 충격적인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팬데믹 이래로 급증한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한 대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아짐에 따라 작년 4월 22일 '코로나 증오범죄법'(COVID19 Hate Crime Act)가 연방의회를 통과했다. 당시 상원에서 찬성 94명, 반대 1명의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는데, 반대표를 던진 유일한 의원은 강성 트럼프 지지파인 공화당 조시 할리 의원(미주리)이었다.

이 법안을 대표 발의한 메이지 히로노 상원의원(민주당, 하와이)은 아시아계 증오범죄에 대한 정치적 대응책 마련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 대해 크게 의미를 부여했지만, "문화적 인식이나 태도의 문제는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까지 끊이지 않는 아시안 증오범죄는 법안이 통과된 지 반년이 넘게 지났지만 일부 미국인들의 마음 속엔 아시안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크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뉴욕 지하철, '스크린도어' 설치 불가...뉴욕시장도 "지하철 타면 불안"

한편, 지난 15일 지하철 살해 사건은 뉴욕 지하철의 고질적인 '안전성' 문제에 대한 논란도 불러왔다. 그러나 뉴욕시 교통국장이 사고 직후 취한 조치는 시민들에게 승강장 가장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을 당부하는 수준에 그쳤다.

25일 CNN 보도에 따르면, 뉴욕 지하철을 운영하는 메트로폴리탄 트랜짓(MTA)은 한국 등 다른 나라 지하철에 설치된 승강장 스크린 도어 설치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100년이 넘는 오래된 뉴욕 지하철 시설에 스크린 도어를 설치할 경우 환기, 화재 대비, 장애인 접근성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이달 초 취임한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은 "나도 지하철을 탈 때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며 "범죄를 줄이는 등 뉴욕 시민들이 지하철 안에서 안전하게 느끼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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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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