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남자의 계절이 아니다

[그녀들의 맛있는 한의학] 5화. 가을은 지난 여름의 자신을 돌아볼 때

"가을 석 달은 용평容平이라 이르는데, 하늘의 기운은 쌀쌀해지고 땅의 기운은 맑아진다. 가을에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를 닭과 함께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 가을의 추상같은 기운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 마음으로 안으로 거두어들여 가을의 기운을 따르고,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가다듬어 폐의 기운을 맑게 한다. 이것이 가을의 기운에 응하는 양생의 방법이다. 이것을 어기면 폐가 상하고 겨울에 설사를 하며 안으로 간직하는 힘이 약해진다.

秋三月, 此謂容平, 天氣以急, 地氣以明, 早臥早起, 與鷄俱興, 使志安寧, 以緩秋刑, 收斂神氣, 使秋氣平, 無外其志, 使肺氣淸, 此秋氣之應, 養收之道也, 逆之則傷肺, 冬爲飱泄, 奉藏者少."

- 동의보감 내경편 권1 신형身形 중에서 -

흔히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고 말한다. 음양론의 관점에서 '음'에 속하는 여성은 추운 겨울(음)에서 따듯한 봄(양)으로 변하는 시기에 몸과 마음이 더 부대끼고, 반대로 '양'에 속하는 남성은 뜨거운 여름(양)에서 서늘한 가을(음)로의 변화가 힘들다고 본 것이다. 한때 트렌치코트의 옷깃을 한껏 올리고 가을 나무 아래서, "시몬, 너는 좋으냐?"며 세상 고독한 표정을 짓는 중년남성을 가을의 대명사로 묘사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한 남성이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드는 기분이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계절의 변화를 맞이하는 몸과 마음의 변화는 성별과는 무관한 일일 것이다.

봄과 가을처럼 계절의 변화가 크게 일어날 때 힘든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도 몸과 마음의 관성 때문일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인간은 늘 외부와 소통하는 존재다. 온도와 습도의 변화, 바람과 일조량 등 외부환경에 맞춰 우리 몸과 마음은 생존에 적합한 상태로 자신을 세팅한다. 이 과정은 매일 발생하지만, 같은 계절 동안은 비교적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된다. 하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또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갈 때는 좀 더 큰 폭으로 조정할 필요가 생기는데, 이때 몸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변화의 과정이 수월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다. 문명이란 옷을 입고 자연을 이용대상처럼 여기는 현대인이지만, 그 속내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일부인 것이다.

그럼 여자는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을 탄다는 말은 왜 나왔을까? 앞서 말한 것처럼 음양론적인 해석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농경문화와 과거 사회구조의 영향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안사람과 바깥사람이라는 말처럼, 활동의 폭이 제한된 여성은 겨울에는 더욱 그것이 제한되었을 것이고, 봄으로의 변화에 적응할 때 더 애를 먹었을 확률이 크다. 남성은 그 반대였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봄을 타고 가을을 타는 것은 남녀의 문제라기보다는, 지난 계절 동안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실제 환절기에 진료실을 찾는 환자들을 봐도 봄이라고 해서 여성이 더 많고 가을이라고 해서 남성이 더 많지 않다. 환절기에 부대끼는 사람들은 신경계가 예민해서 외부 변화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과 지난 계절에 과로나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피곤한 사람들이 많다. 이 중에서도 지쳐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가장 높다.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기에 에너지가 부족한 것이다.

가을이 되면서 한 일도 없이 피곤하고, 과거에 좋지 않았던 증상들이 다시 생기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지난여름의 자신을 한 번쯤 되돌아보면 좋다.

너무 치열하게 감정에 상처를 내며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자신에게 선물같은 잠시의 휴식을 선물하고, 과도한 열망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마음을 잘 다독거려주자.

동의보감에서 인용한 가을의 양생요결은 "마음을 편안히 하고, 안으로 거두어들인다."에 있을 것이다. 가을을 잘 나야, 다가오는 긴 겨울을 건강하게 날 수 있다.

▲ⓒ

그녀들을 위한 레시피 : 송이버섯무국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나를 지치게 하는 여러 요인들 중에 더위를 빼놓을 수는 없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단 기운을 빼는데 이만한 게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더위가 싫고 두렵다. 어느 한 계절도 삶이 만만하지는 않지만 여름은 어쩐지 두 배로 힘든 느낌으로 살아낸다. 그런 까닭에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녹록치 않은 여름을 잘 이겨낸 내가 스스로 대견해서 뭔가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긴다.

장에 나갔다가 할머니들이 들고 나오신 송이버섯을 만났다. 소고기 한 근 가격으로 실하고 예쁘게 생긴 송이버섯을 두 송이 사고 아직 철 이른 무를 하나 들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 송이버섯의 향이 나를 달뜨게 한다. 밥을 하는 동안 송이버섯뭇국도 끓인다. 오래 전 가마솥 앞에서 외할머니가 큰 무를 들고 칼을 휘두를 때마다 무가 베어지면 내는 시원하고도 명쾌한 소리를 기억해 낸다. 나도 한줌 양의 무를 삐져 썰어서 끓여본다.

송이버섯을 넣기 전 이미 먹을만하게 끓여진 무국의 불을 끄고 준비해둔 버섯을 넣고는 재빨리 뚜껑을 덮는다. 불과 2~3분이지만 송이버섯의 향을 가두는 일종의 의식 같은 행위다. 뚜껑을 열면 수렴하는 계절인 가을이 거기 오롯이 담겨 나를 위로하는 상처럼 다가온다.

<재료>

무 300g, 들기름 1큰술, 간장 1/2큰술, 대파 1뿌리, 소금 약간, 육수 6컵

송이버섯 2송이

육수 : 쌀뜨물 7~8컵, 멸치 10g, 다시마 10*10cm, 파뿌리

<만드는 법>

1. 쌀뜨물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30분간 두었다가 센불로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최소로 줄이고 15분간 두었다가 불을 끄고 거른다.

2. 무는 껍질을 까지 말고 깨끗이 씻어 삐져썰기 방법으로 썬다.

3. 대파는 어슷썰기 한다.

4. 송이버섯은 갓과 대를 분리하여 갓은 얇게 썰고 대부부은 무와 비슷한 크기와 두께로 썬다.

5. 국을 끓일 냄비에 무와 들기름을 넣고 중간불에서 충분히 볶는다.

4. 들기름이 무에 배어들고 무가 반쯤 익으면 준비해둔 육수를 넣고 끓인다.

5. 간은 간장과 소금으로 나누어 한다.

6. 무가 무르게 익으면 썰어 놓은 대파를 넣고 불을 끈다. 7. 준비해둔 송이버섯을 넣고 뚜껑을 덮어두었다가 상에 올리기 직전 국그릇에

담아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