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전쟁, 카터 때부터 노정된 실패...이제 '전쟁빚'과 전쟁 시작"

[아프간 사태와 미국의 앞날]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안병진 경희대 교수 대담 ①

지난 8월 30일(현지시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하면서 20년을 끌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끝났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 3명이 풀지 못한 난제를 해결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최악'이다. 미군 철수로 이슬람 무장세력인 탈레반이 재집권하게 됐으며, 지난 8월 26일에는 또다른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살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과 아프간인 최소 170명이 사망하는 참사까지 발생했다. 일각에선 1975년 베트남 함락 당시 사이공 미국 대사관 옥상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한 사태가 재연됐다고 평가한다. 바이든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의 지지율은 취임 후 최저치인 43%(NPR-마리스트폴 공동 조사)까지 떨어졌다.

아프간과 '20년 전쟁' 종료는 당장 눈에 띄는 혼란이나 정치적 공방 이상의 다층적 의미를 갖는다. 향후 국제 정세에 미칠 영향도 간단하지 않다. 아프간 전쟁은 왜 20년이나 지속될 수 밖에 없었으며, 영원해 보이던 전쟁을 끝낸 미국은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이런 변화가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결코 쉽지 않은 이런 질문을 갖고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와 안병진 경희대 교수를 인터뷰했다. 김동석 대표는 1990년대부터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유권자 운동과 시민운동을 해온 현장 정치 전문가다. 안병진 교수는 최근 팬데믹과 기후위기, 미중 신냉전 속에서 미국 정치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분석한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라는 책을 내는 등 미국 정치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학자다. 김 대표와는 서면과 전화 인터뷰, 안 교수는 서면 인터뷰를 했으며, 각자의 인터뷰 내용을 공유하고 정리하는 작업을 거쳐 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2회에 걸쳐 대담을 게재한다. 편집자

▲ 예상보다 너무 빨리 탈레반이 지난 8월 15일 카불을 점령한 뒤 미군 철군 과정은 혼란 그 자체였다. 탈레반의 정치적 보복과 강압제가 두려워 아프간을 떠나려는 아프간인들도 카불 공항에 물려들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사진은 지난 8월 22일 카불 공항 밖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아프간인들과 미군 병사의 모습. ⓒAP+연합뉴스

부시-오바마-트럼프가 '20년 전쟁'을 이어간 이유

프레시안 : 미군이 8월 30일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완료함으로써 20년간 지속됐던 아프간 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났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일어난 이유, 20년이나 지속된 이유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김동석 : 아프간 전쟁을 이 지역 분쟁의 역사 뿐 아니라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려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련이 1979년부터의 10여년 무자헤딘과 전쟁을 벌였다. 당시 소련의 팽창을 막기 위해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가들이 무자헤딘을 지원하면서 소련이 패했고, 그것이 소련의 해체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세에 저항하는 아프간 무슬림 역사에서 무자헤딘, 탈레반,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나 이슬람국가 호라산(IS-K) 등 무장테러 세력도 이해해야 한다. 미국은 탈레반과 오랜 관계가 있고 탈레반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미 CIA는 탈레반 내부를 분열시켜 쪼개어 내려는 공작을 이어왔다.

이번에 미국까지 사실상 전쟁에서 패배하고 철군하면서 '아프간은 제국의 무덤'이라는 말이 다시 입증, 회자되고 있다. 미국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간을 침공할 때도 전쟁에 대한 신중론과 함께 이 말이 뉴스에 많이 언급된 것을 기억한다. 이길 수 있는 전쟁이 아니다, 아프간을 지배할 수 없다, 당시 미국 시민사회의 분위기로 인해서 반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국제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신중론도 없지 않았다. 물론 9.11 테러에 대한 미 국민들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진보학자들(노엄 촘스키, 하워드 진)은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대다수가 '테러와의 전쟁' 자체를 반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전쟁의 규모와 수준에 대해서는 미국 내 논란이 있었다. 리버럴 시민단체나 전문가들은 테러리스트 색출과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 강했고 반면 부시 정권 내 네오콘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중동을 미국 중심으로 정리하려는 목표를 갖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확전을 주장했고 전쟁을 개시했다.

부시 정부는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 라덴과 그 일당들이 속한 알카에다를 비호한다는 이유로 2001년 10월 아프간을 침공한 뒤 두 달 만에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아프간 전쟁을 끝내지도 않고 이라크로 확전을 시키면서 이라크와 아프간의 연계를 빌미로 미군의 아프간 점령을 이어갔다.

부시에 이어 오바마 정부가 들어섰는데 전쟁 종료라는 이슈보다 금융위기가 더 큰 문제였다. 동시에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을 거부하는 주류 백인들의 여론이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문화적 이슈도 또한 사회분란의 요소로 등장했다. 소수자 인권 문제 등 가치 이슈를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됐다. 오바마 출생지 의혹 등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음모론'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또 오바마 정권이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서민들의 문제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고 국가부도위기에 책임을 져야 하는 금융 자본가들(월스트리트)을 우대하는 정책에 배신감을 느낀 백인 노동자층이 이탈 현상을 보이기 시작됐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층이었다. 이런 국내 문제에 오바마 정부가 포로가 되면서 국제 문제에서는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취임 초 오바마 대통령이 이집트를 방문해 분쟁지역에서의 미국의 과오를 시인했고, 그 여파로 '아랍의 봄'이란 중동 민주화의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전쟁 자체를 끝내지는 못했다.

오바마는 2011년 빈 라덴 사살 후 철군을 주장하는 바이든 부통령과 병력 증파를 주장하는 힐러리 국무장관 사이에서 힐러리 쪽 손을 들어줬다. 그런 점에서 오바마도 아프간 전쟁이 20년이나 지속된 것에 대한 책임이 크다.

오바마 뿐 아니라 트럼프도 아프간 전쟁을 통해 미국의 에너지가 소모되고 미군의 희생이 늘어만 가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하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프레시안(전홍기혜)

카터 때부터 노정된 실패…그러나 아프간은 바이든의 사이공이 됐다

안병진: 고(故) 찰머스 존슨 교수가 말한 '블로우백'이 문제의 핵심을 건드린다. 이는 원래 CIA 용어로 비밀작전에서 당초 의도하지 않은 부정적 결과를 의미한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전략가들이 소련을 제국의 무덤으로 유인하기 위해 아프간 전사를 지원하던 작전이 전형적인 블로우백에 해당된다. 이후 이 전사들은 자신들을 버린 무신론 국가와 성전을 벌이게 된다. 걸프전(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영국·프랑스 등 34개 다국적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다국전군의 승리로 종결됐다)은 흔히 미 제국의 부활로 칭송되지만 사실은 오사마 빈 라덴의 9.11 테러 결심의 동기로 작용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소련을 제국의 무덤에 빠뜨리기 위한 브레진스키의 덫처럼 빈 라덴은 미국을 덫에 빠뜨리기 위해 테러를 벌였고 미국은 정확히 그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보수주의 정점인 레이건 시절에도 광기 어린 영향력을 생각보다 크게 발휘하지 못한 네오콘들이 다루기 쉬운 부시 대통령을 움직이며 아프간 전쟁을 중동질서 급진 재편의 계기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 경험도 제대로 없고 첨단 무기의 위력을 맹신한 관념적 과격우파인 이들의 실패는 예정된 운명이었다.

찰머스 존슨의 예지력 있는 경고처럼 미 제국의 과잉은 오바마 시기에도 강고했다. 기존 군사주의 편향의 장성들과 미국의 자유주의 질서의 힘을 과신하는 리버럴 참모들(마크 인딕 전 이스라엘 대사가 소위 "순진한 해외파(Innocent Abroad)"라고 비판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인 오바마는 이미 실패가 예정된 전쟁의 성공적 탈출이라는 모순적 퍼즐을 풀지 못했다. 그저 오바마의 사이공이 되지 않기 위해 증파라는 모르핀 주사를 통해 예정된 죽음을 연장할 뿐이었다.

외교안보 경험의 전설이란 이미지에 비해 핵심 판단에서 유능하지 못했던 바이든은 이 이슈에서만큼은 오바마 시기에 혼자 지혜로운 철군을 주장했다. 정작 가장 강력하게 철군을 주장한 바이든이 아프간 수렁과 실패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긴 역사의 과정을 보면 카터의 소비에트 유인 작전, 이후 레이건의 아프간 방기, 조지 시니어 부시의 걸프전, 클린턴의 무능, 조지 부시의 빈 라덴 덫에 빠지기, 오바마의 미루기, 트럼프의 성급한 철군 약속이 오늘날 실패를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아프간은 바이든의 사이공이 되었다.

▲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아프간에 병력 증파한 오바마, '20년 전쟁'의 책임 크다

프레시안 : 아프간에서 미군 철군은 트럼프 정부에서 탈레반과 '도하 협상'을 통해 결정한 것을 후임인 바이든 정부가 이행한 것입니다. 트럼프 정부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 또 바이든 정부가 이를 뒤집지 않고 이행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동석 : 트럼프가 아프간에서 철군을 추진한 것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가장 부합하는 이슈였기 때문이다. 또 2016년 트럼프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측근 마이클 플린의 역할도 한몫 했다. 트럼프 정부 초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플린은 이라크 아프간 전쟁에서 군사 정보책임자(군사정보국장)로 복무했다. 그는 당시 아프간에서 벌어진 각종 부패와 전횡에 대해 있는 그대로 보고서로 올리다가 오바마 정부에서 해고가 됐다(오바마 정부에서 밝힌 해고의 이유는 군사정보국장의 권한을 넘는 수준에서 러시아와 군사기밀을 공유했다는 혐의였다). 플린은 해임되자 트럼프 선거 캠프에 합류했다. 아프간 전쟁에 관한 내부 상황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을 꼽으라면 군사 전문가들은 플린을 꼽는다.

트럼프 정부에서 왜 탈레반과 협상을 했나. 탈레반이 아니고는 아프간에 들어가 있는 미군의 안전한 철수를 보장할 수 있는 세력이 없었다.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하자마자 도망간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이 이끄는 아프간 정부는 수도 카불 외에는 어떤 지역에 대해서도 통제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정부는 올해 5월 1일까지 철군하겠다고 약속했다.

아프간 철군은 바이든의 대선 공약이었다. 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 미군 기지의 구조조정이 그의 공약이었다.

바이든은 부시 정권에서 민주당 상원외교위원장을 할 때부터 아프간 전쟁을 정리하고 미군이 나와야 하며 아프간은 경제적 지원 등 다른 방식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부통령 때도 2011년 빈 라덴 사살 후 미군 철군을 주장했다. 반면 힐러리는 군사적으로 아프간을 관리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아프간 특사는 힐러리의 오른팔인 리차드 홀부르크였는데 그는 키신저와 마찬가지로 적극 개입론자였다. 힐러리와 홀부르크는 장기적 전략으로 아프간에 미국이 둥지를 틀고 있어야 중앙과 서남 아시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는 힐러리 손을 들어줬고 그 과정에서 바이든이 상당히 수모를 당했다고 알려졌다. 오바마는 미군을 빨리 나오게 하려면 더 많은 군인이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돼 병력을 증파했다.

또 아프간 철군은 바이든 입장에서는 트럼프에게 뺏긴 과거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백인 노동자 계층의 일부를 다시 찾아올 수 있는 이슈 중 하나다. 다수 백인 노동자층이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문화적 이슈 때문이 아니라 경제 정책 때문이다. 2020 대선 기간 중에 바이든 캠프는 트럼프에 열광하는 경합주 내 백인 유권자들의 어젠다에 주목했는데 바로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 철수가 미국우선주의의 가장 앞선 어젠다라는 걸 알게 됐다.

트럼프의 허술한 협상, 바이든의 성급한 결정이 야기한 비극

안병진 : 미국의 중동 개입의 역사의 복잡성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백인 노동자층 정서와 폭스뉴스에만 의존하는 트럼프에게 아프간 전쟁은 하나의 퍼즐과도 같았다. 트럼프 시기 내내 소위 "어른들(존 켈리 비서실장,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의 최대 불안 중 하나는 트럼프의 신경발작적 철군 지시를 어떻게 무력화시킬 것인가 였다. 트럼프에게 아부하고 자신의 정치적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이 트럼프를 자극해서 아프간 철군의 공약을 지킨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라고 채근했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 캐롤 레오닝 기자 등의 책 <나 혼자 고칠 수 있어 (I Alone Can Fix It)>을 보면 트럼프 임기 말기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너무 두려워 마크 밀리 합창 의장 및 합참 본부 간부들은 연쇄적인 사임 시위를 기획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들 입장에선 다행히 트럼프는 철군 시한만 설정하는 협정으로 끝났고, 이 실행은 바이든에게 넘겨졌다. 트럼프는 협상 달인이기는커녕 나르시즘과 정치적 계산만 빨랐다. 정작 디테일에 약한 트럼프답게 탈레반과 맺은 허술한 협정은 이후 철군시 제약으로 작용했다. 탈레반의 조기 카불 진입 등에 대한 고려는 협상에서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트럼프의 편의주의적 철군 약속과 이를 바이든이 조야하게 이어가면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 역대 가장 준비된 외교안보 대통령 중 하나인 바이든 시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바이든은 오바마 정권에서 고립을 각오하면서 조기 철군을 강하게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언제나 국익을 냉정하게 계산하는 현실주의 면모를 가진 인물이고 아프간 등 중동의 고유한 문화와 특성을 잘 알기 때문에 아프간 수렁은 늪과 같다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 특히 갈수록 거세지는 중국의 패권 도전은 그로 하여금 신속히 아프간에서 손을 떼고 싶게 했다. 바이든은 이 골치덩이 아프간을 중국과 러시아에 넘기고 중국과의 운명을 건 실존적 대결 및 미국 내부 경제 재건을 통해 중간선거 승리에 집중하고자 했다. 중국 견제와 트럼프 부활 저지, 이 두 단어가 바이든의 24시간을 지배하는 키워드로 보인다.

'본능의 리더' 바이든, 오바마 스타일 참모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아프간 철군 과정에서 탈레반 세력이 "11일 만에(오스틴 국방장관의 표현)" 카불을 점령하면서 바이든 정부가 주장한 질서 있는 철군이 불가능해졌습니다. 특히 26일 이슬람국가-호라산(IS-K)의 자살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 아프간인 최소 170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하면서 바이든의 정치적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부통령 시절부터 철군을 주장했던 바이든이 지나치게 고집을 부려서 발생한 일이라는 비판이 지배적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안병진: 오바마가 숙고의 리더라면 바이든은 본능의 리더다. 이 둘이 결합할 때 판단력은 균형을 이룬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의 결합은 미국 대통령제 역사상 가장 성공적 시너지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바이든은 자신의 오바마를 갖고 있지 않다. 만약 바이든 정권 내 오바마가 있었다면 그는 현황 보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부단히 숙고하고 디테일을 챙겼을 것이다.

예를 들어 2011년 빈 라덴 암살 작전 시 헬리콥터가 한대만 투입되는 것에 대해 최종적으로 문제제기한 것은 오바마라고 한다. 실제 작전에서 헬리콥터 한대는 고장으로 추락했다. 만약 오바마가 최종적으로 그런 지적을 하지 않았다면 이 작전은 오바마의 '블랙호크 다운'(클린턴 정권의 소말리아 작전 실패)이 됐을 것이다. 자기 임기 중에 정치적 타격을 입는 게 불 보듯 뻔한 철군을 결정한 바이든의 용기와 본능은 인정할만하지만 바이든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오바마 스타일의 참모가 필요했다.

모든 철군이 혼란의 도가니를 피하기 어렵지만, 바이든이 현장 파악 실패 및 이를 지혜롭게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또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도 실패했다. 바이든은 누가 보더라도 어설픈 철군 작전과 그 과정에서 양산된 비극에 대해 겸손하게 인정하고 성찰하기보다는 냉담한 태도를 취했다. 이는 위기관리 관점에서는 결코 지혜로운 행동이 아니다.

김동석 : 이번 철군 과정이 신중하게, 철저하게 준비되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은 맞다. 바이든은 매우 현실주의자다. 바이든은 철군 시기를 미뤘어야 한다는 비판과 관련해 "좋은 때는 없다"고 반박했다. 정치 일정을 봐도 내년에는 중간선거가 있고 그 이후에는 대선 레이스에 들어간다. 바이든은 치밀하게 준비가 안됐어도 지금 나와야겠다고 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IS-K의 폭탄 테러로 미군 13명이 사망한 것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8월 26일 카불 공항 테러가 발생한 뒤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이제 미국이 싸울 상대는 '전쟁 빚'…참전군인 복지비는 '시한폭탄'

프레시안 : 미군이 IS-K에 대한 보복 공격을 2차례 감행하면서 어린이를 포함한 아프간 민간인 10명이 사망하는 등 끝까지 피로 얼룩진 아프간 전쟁이 공식적으론 막을 내렸습니다. 바이든은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서 싸우는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며 철군 이유를 밝혔습니다. 아프간 전쟁 종료가 미국 국내, 더 나아가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김동석 : 미국 정치사회에는 큰 교훈이 됐다. 미국만이 주장하는 전쟁의 가치, 명분이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미국이 갖고 있는 힘을 인간사에 유용하게 쓰지 않으면 미국이 안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20년 전쟁'의 교훈이다.

이제 미국이 싸워야 할 상대는 탈레반이 아니고 전쟁 빚이다. 미국 군수산업의 경기를 위해서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그러한 논리로부터 탈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교훈이 있다. 경제를 위해서도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교훈이 '20년 아프간전쟁'이다. 바이든이 '20년 전쟁과 1조 달러 전비'를 언급한 것에 대해 브라운대 왓슨연구소는 아프간 전비는 2.31조 달러라고 민감하게 주장했다. 2.31조 달러에는 CIA 공작비용과 참전용사 의료복지비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이 전쟁비용은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전후 비용이란 것이 있다. 향후 50여년 이상에 걸쳐서 발생할 참전군인(베테랑) 의료복지비는 미국 시민사회 내 시한폭탄이다. 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을 위한 비용이 지금까지도 미국 정부의 재정에 가장 큰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프간과 이라크 테러전의 450만 참전군인을 지원할 복지비용은 장차 미국 정부의 디폴트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어느 정권에서나 전쟁비용은 특별예산으로 한다. 따라서 세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1, 2차 대전에 대해서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임에도 전쟁 때문에 세금을 올려서 국가경제를 보호했다. 트루먼과 존슨 대통령은 세율을 올렸다. 그러나 부시, 트럼프 정권은 전쟁을 하면서도 세금을 인하했다. 앞으로 어마어마한 후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아프간 전쟁은 끝났지만 미국 국내에서 정치사회적으론 전쟁 비용 문제로 더 심각한 전쟁을 치러야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이번 철군 과정에서 국제사회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미국은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다른 나라들도 끌어들였다. 당시 노무현 정부도 미국의 압력으로 이라크에 파병을 했다. 47개 나라가 아프간에 전투병을 파병했고, 80여 개국이 어떤 식으로든 관여했다. 미국 때문에 이렇게 많은 나라가 전쟁에 개입했는데, 이번 철군 과정에선 미국만 혼자 빠져나왔다. 동맹들과 관계 회복과 향후 아프간과 탈레반을 관리하는 문제도 바이든 정부에 주어진 과제다. 향후 아프간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021년 바이든은 '신냉전 리버럴'…미국과 중국의 승부는 이제 시작

안병진 : 바이든은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복원을 선언했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그 복귀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공감의 아이콘이었던 바이든이 이번 사태에서 너무 냉정하게 미국의 국익만 계산했다고 비판한다. 이는 바이든 세력의 뉴노멀 문제의식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2021년의 바이든은 10년 전의 낭만적 바이든이 아니다.

나는 <뉴욕타임즈> 제임스 트라우브 기자가 바이든을 '신냉전 리버럴'이라 부른 것에 상당히 공감한다. 바이든의 자유주의 질서는 선택적 자유주의이자 현실주의가 보강된 자유주의 질서를 뜻한다. '선택적'이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의 관점에 자유주의 보편성 주장도 종속된다는 의미이다. '현실주의 보강'이란 더 이상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말한 지구적 경찰로서 부드러운 제국이 아니라 보호주의, 고립주의 기조까지 녹인 자유주의 질서라는 의미다.

나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이데올로그인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교수의 발표에 사회를 본 적이 있다. 기존 자유주의 교과서 같은 아이켄베리 교수는 미국 국내 중산층의 이익 보호 등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너무 비자유주의적인 것 아닌가 자문하며 겸연쩍게 웃기도 했다. 지금 미국 리버럴들의 마음 상태를 아주 잘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아프간 사태 이후 보다 냉정해진 면모를 드러낸 자유주의 진영 대 더 야심과 자신감이 커진 중국 권위주의 진영과의 진검 승부가 시작됐다. 일부 성급한 학자들은 과거 소비에트가 아프간에서 패주한 것과 비교하며 미 제국 퇴조의 본격 막이 오른 것으로 본다. 나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중국의 주류 전략가들은 자신감은 높은데 미국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난 중국 공산당이 2008년 미 경제위기를 보며 자신감의 발톱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오히려 중국은 제국의 무덤을 떠넘긴 미국판 이이제이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지 모른다. 미 제국은 중장기적으로 퇴조하겠지만 아직은 인구와 대학, 군사력 등 측면에서 다양한 회복탄력성 요소를 가진다. 더구나 게임 체인저인 기후위기에서 지정학적으로 미국은 유리하다. 19세기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토크빌이 찬양한 지리적 이점은 아직 유효하다. 미중간 승부는 이제부터다.(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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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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