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인가 관변단체인가, 갈림길에 선 시민운동

[손호철의 발자국] 69. 서울 통인동 : 한국시민운동, 어디서 왔고,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참여연대정부'. 문재인 정부에 붙은 별명 중의 하나다. 조국(전 민정수석,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장하성(전 청와대 정책실장, 주중대사), 김상조(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여연대 출신이 문재인 정부의 요직에 다수 포진되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뒤인 2018년 <중앙일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청와대와 내각 등에 참여연대 출신이 62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로에서 낙산공원 쪽으로 들어가면 주택가의 한 골목 입구에 작은 표시판이 있다. 골목 안을 가리키는 화살표와 함께 '경실련'이라고 쓰여 있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국내 최초의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나타났다. 시민단체, 시민운동은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나타나 우리 사회의 새로운 권력기관이 됐는가?

▲ 대학로 뒷편에 위치한 경실련 사무실 ⓒ손호철

<땅 : 투기의 대상인가? 삶의 터전인가?> 김태동 당시 성균관대 교수가 1990년 출간한 책이다. 부동산 광풍과 LH 사태로 난리가 난 지금과 비슷하게, 1980년대 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투기와 불로소득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다. 1989년, 김태동 교수 등은 불로소득을 봉쇄하고 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평화적인 시민운동을 전개한다는 목적으로 경실련을 만들었다. 물론 YMCA 등 '넓은 의미의 시민단체'는 그전부터 존재했지만, '시민운동'을 목표로 생긴, 좁은 의미의 시민단체는 경실련이 처음이다.

▲ 경실련 마크와 안내판 ⓒ손호철

경실련이 등장한 것은 부동산 투기 이외에도 또 다른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그것은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을 주도해온 '민주화운동'의 분화다. 민주화운동은 1980년 광주 민중항쟁을 거치며 진보운동이 복원되면서 진보적이고 변혁적인 노동운동 등 기층민중계급에 기반한 '민중운동'과 자유주의적(리버럴)인 '중산층 민주화운동'이 연대해 왔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에 따른 직선제 개헌 쟁취 후, 특히 6월 항쟁에 이은 '7·8월 노동자대투쟁' 이후(이에 대해서는 '손호철의 발자국', 16. 울산 87년 노동자대투쟁, <프레시안> 2021년 4월 12일자 참조), 민주화운동이 분화되기 시작했다. 중산층 등은 노동자대투쟁에 나타난 노동자들의 전투적인 투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경실련으로 상징되는 시민운동은 이 같은 중산층의 반응이었다.

▲ 민주화운동의 분화와 시민운동의 등장을 촉진시킨 1987년 노동자대투쟁. 울산노동역사관 1987 제공
▲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최초의 시민단체인 경실련의 출범 관련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시민운동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노동운동, 농민운동, 빈민운동 같은 계급이나 기층민중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민중운동'과 구별되어 1980년대 말 등장한 '시민이 중심이 되는 운동'이다. 여기에서 키워드는 '시민'이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의 취지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노동자가 아니면 그 조합원이 될 수 없지만, 시민운동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이제는 서울시 교육감이 된 조희연 교수는 학자 시절 시민운동의 특징을 민중운동과의 차이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시민운동은 1) 민중운동에 대립되는 중산층 운동이며 2) 급진적 이념이 아니라 온건한 합리적 이념에 기초해 있고 3) 체제타파적이 아니라 체제 내의 개혁운동이고 4) 민중 중심이 아니라 시민 중심의 운동이고 5) 제도외적 수단이 아니라 제도적 수단에 의존하는 운동이다.

특히 초기 시민운동의 경우 주류 언론의 지원 속에 민중운동과 각을 세우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경실련이 출범한 뒤 5년 뒤인 1994년, 경실련보다는 '진보적'인 입장을 가진 참여연대가 박원순, 조희연 등이 중심이 되어 출범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1998년 정부로부터 일절 지원을 받지 않고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만 운영하는 진정한 의미의 시민단체로 자리 잡았고, 2020년 현재 1만5000명의 회원을 가진 한국을 대표하는 시민단체로 성장했다. 특히 참여연대는 2004년에는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 협의 지위를 획득했다.

▲ 경실련과 함께 진보적 시민운동단체로 출범한 참여연대 사무실 ⓒ손호철

1990년대~2000년대는 시민단체가 폭발한 시기이다. 참여연대처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를 모두 다루는 종합적 시민단체만이 아니라 한국여성단체연합(이 단체는 원래 1987년 창립됐다)과 같은 여성단체, 인권운동사랑방과 같은 인권단체,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환경단체, 문화연대와 같은 문화단체, 언론개혁시민연대와 같은 언론단체들이 생겨나거나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도 지역에 기반한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생겨났다. 2001년에는 이들 시민단체들 간의 협력과 조율, 공동투쟁을 위해 500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모여서 시민단체연대회의를 창립했다. 또 광우병 투쟁, 박근혜 탄핵 촛불운동 등이 보여주듯이, 민중운동과의 (제한적인) 연대도 생겨났다.

▲ 환경운동연합의 반환경후보 낙선운동 ⓒ환경운동연합자료

시민단체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통념은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은 '개혁적', '진보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잘못된 편견이다. 뉴라이트 운동, 태극기부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이지, 정부기관도 민중단체도 아니다. 미국의 극우단체인 KKK도 시민단체이다. 물론 시민운동이 초기에는 개혁적, 진보적 단체들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보수세력의 경우 분단 후 수십 년 간 국가권력을 독점해 왔기 때문에 시민단체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반공단체 등 형식적인 시민단체들이 존재했지만, 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정부와 연결된 '관변단체'였다.

보수적 시민단체들이 급속히 생겨난 것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특히 2000년 남북정상 회담 이후다. 자유주의(리버럴) 세력에게 권력을 잃은 데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전향적 대북정책 등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세력이 바른사회시민회의, 시대정신,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등을 만들었다(이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좌파'라고 비판하지만, 국제적 기준에서 볼 때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좌파'는커녕 '진보(progressive)'도 아니고 미국의 민주당 비슷한 '리버럴'이다).

▲ 시민운동이 모두 진보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극우적 시민단체'들의 태극기 집회 ⓒ프레시안

시민단체가 한국정치,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시민운동은 계속 구설수에 시달려 왔고 특히 최근 들어 그 정도가 심해졌다. 그 중심에는 감시를 해야 하는 정부와의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즉 그 중심인물들이 감시해야 하는 정부에 들어가면서 시민운동의 핵심이 '중립성' 내지 '비정파성'에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너무 많은 참여연대 출신이 들어가 생겨난 '참여연대정부'라는 비아냥거림이 대표적인 예지만, 시민운동 초기인 김영삼 정부 초기에 이미 정성철, 안병영, 이수성 등 경실련 인사들이 입각해, 경실련이 '정치단체화'되었다는 비판을 들었고, 정계로 가기 위한 수단으로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학자 등도 다수 생겨났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뉴라이트시민단체들의 입각이 줄지었다.

최근에는 김경율 참여연대공동집행위원장이 "회계사로써 조국 펀드를 분석해보고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성명을 발표하자고 이야기했다가 묵살당했다"며 "참여연대는 존립근거가 없어졌다"며 탈퇴했다(참여연대는 그의 행동이 틀렸다고 보는 입장이다). 시민운동 출신의 대표적 정치인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성희롱 추문과 관련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여성운동 출신의 남인순 의원이 그 피해자를 '피해호소인'이라고 지칭하는가 하면 검찰조사 결과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함께 피해자의 고발을 박 시장에게 전달한 것으로 나타나 도덕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열악한 재정 때문에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는 것도 문제다.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그리고 집중 지원을 해주는 화이트리스트가 대표적인 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뉴라이트 단체들에게 자금 지원을 해서 관제시위까지 사주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정권이 바뀌면 자신들과 성향이 비슷한 시민단체들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반대 성향의 단체들에 대한 지원은 깎아, 시민단체들이 생존을 위해 특정 정치세력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통인시장에서 그리 멀리 않은 한 골목에 5층짜리 작은 빌딩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의 제5부'라는 말을 듣는 참여연대다. 한때 참여사회연구소 이사로 열심히 드나들던 이 건물을 오랜만에 찾아와 건물에 그려져 있는 '세상을 바꾸는 시민의 힘 참여연대'라는 로고를 보고 있자,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시민운동은 한국사회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고 앞으로도 계속 기여해야 한다. 하지만 화이트리스트로부터 조국 사태, 박원순 사태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이 보여주고 있듯이,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최근 너무 많은 문제를 겪고 있다. 시민운동의 정치적 중립·감시기능과 관계자들의 정계 진출이라는 딜레마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이들이 정치에 직접 뛰어들어 시민운동에서 얻은 지식을 정치 발전에 사용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로 인한 시민운동의 공신력 훼손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일정 공직의 취업제한처럼 시민운동 관계자들도 일정기간이 지나야 정계 진출을 할 수 있도록 자체 규정을 만들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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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화가를 꿈꾸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로 진학했다. 독재에 맞서다 제적, 투옥, 강제 징집을 거쳐 8년 만에 졸업했다. 어렵게 기자가 됐지만, '1980년 광주 학살'에 저항하다 유학을 갔고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일하며 진보적 학술 활동과 사회운동을 펼쳐왔다. <국가와 민주주의>, <한국과 한국 정치>,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 등 이론서와 <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등 역사 기행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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