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들, '불타는 검증 정신' 어디로 갔나

[김종구의 새벽에 문득]

2019년 8월6일부터 9월5일까지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 130만5천564건, 하루 평균 기사 4만2천114건.

2019년 8월부터 10월까지 관련 키워드로 검색된 24개 언론사 기사 3만3천784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명 뒤 몇 달 사이에 쏟아져나온 언론 보도 건수를 조사한 수치다. 조사 기간, 대상 언론사, 검색에 사용된 키워드 등에 따라 결과에 편차가 있지만, 보도의 양적 측면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인 것은 분명하다. 단지 양만이 아니다. 보도의 내용, 범위, 양태 등 모든 면에서 '조국 보도'는 학문적 연구 대상이 될 만한 '언론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박주현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가 쓴 "'조국 사태' 보도에 있어서 언론의 이념성과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과의 관계 연구"(<언론과학연구>, 2020년 6월)는 조국 보도에 대한 몇 안 되는 연구 논문 중 하나다. 논문 제목에 등장하는 '가차'(gotcha)는 영어 'I got you'(딱 걸렸어)의 약어로, '가차 저널리즘'은 공인, 특히 정치인의 말실수나 해프닝, 주변의 사사로운 문제들까지 꼬투리 잡아 반복적으로 보도하는 것을 지칭한다. 이 논문은 조선·동아·한겨레·경향 등 4개 신문의 보도 내용과 특징 등을 상세히 비교·분석했는데, 몇 가지 흥미로운 분석 결과도 눈에 띈다. "뉴스에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주제어는 '사모펀드의 조국과 관련성 유무'였다", "사설에서는 <조선일보>가 가장 많은 부정적 견지의 논조를 보였고 단독 기사에서는 <동아일보>가 많은 보도를 했다", "부정적인 보도의 기사 출처(취재원)는 주로 검사·검찰 관계자에 의존한 것이 많았다" 등등. 이 논문은 결론 부분에서 "보수신문들은 부정적 기사를 신문뿐 아니라 계열 종편 방송사를 통해 반복해 지속적으로 보도함으로써 흠집내기와 꼬투리 잡기식 보도의 전형인 가차 저널리즘적인 보도 태도를 나타냈다"고 짚었다.

공직자 후보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언론의 마땅한 의무다.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을 낱낱이 파헤쳐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불타는 취재 정신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그런데 보수언론의 검증 정신은 매우 선택적으로 작동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최재형 전 감사원장 등 대선에 뛰어든 야권 후보들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보다 훨씬 막중한 자리이므로 언론의 검증 보도 역시 더 엄격하고 치열해야 하는데도 상황은 정반대다. 조국 사태 때는 가을의 서릿발처럼 매섭던 보수언론들이 야권 후보에 대해서는 봄바람처럼 훈훈하다. 언론 보도의 일관성, 형평성, 공정성은 먼 나라 이야기다.

언론계와 정치권 안팎에서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가족에 대한 지나친 보도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사자가 아닌 가족에 대한 검증이 주가 돼선 안 된다" "연좌제가 없어진 게 언제인가" "쥴리-유지(Yuji) 프레임에 반대한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윤 전 총장 본인이나 보수언론들이 할 말은 아니다. 사안의 본질과 동떨어진 시시콜콜한 문제들까지 '가차 없이' 융단폭격을 가해 '가차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주었던 게 보수언론들이다. "자식들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당사자들에게는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지만 공직자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지난해 11월3일 <관훈저널> 주최 언론사 법조팀장 좌담회). 조 전 장관 동생 부부의 위장결혼 의혹까지 공소장에 명기해 '연좌제'로 엮었던 게 바로 '윤석열 검찰'이었다.

가족 문제 등 '곁가지' 사안까지 가지 않더라도 윤 전 총장 본인을 둘러싼 '본줄기' 의혹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는데도 보수언론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삼부토건 쪽의 골프 접대·향응 의혹,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 사건의 검찰 수사 무마 의혹, 변호사 소개 의혹 등이 고구마 줄기처럼 이어진다. 그런데도 보수언론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혹시 보수언론에는 '검증 정신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그래서 조국 보도로 이미 총량을 소진해버린 탓에 더는 검증 정신 재고가 남아 있지 않은가?

이재명 경기지사의 '미군 점령군' 발언을 꼬투리 잡아 신문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의 보도를 보면 검증 정신이 소진된 것은 아닌 듯하다. 여전히 '선택적 검증 정신'은 날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우리의 미래를 생각해보면 '색깔 감별'보다 언론이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망국적 병폐인 '지역주의' 문제다. "(대구에 오니)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코로나 초기 확산이 대구가 아니었으면 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특정 지역의 표심 공략을 위해 지역을 가르고 편을 나누는 발언이 난무하는데도 보수언론은 눈 감고 귀 막는다.

고위공직자 후보의 최대 결격 사유는 거짓말이다. "내 장모가 사기를 당한 적은 있어도 누구한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이 없다"고 말했다더니 장모가 구속되자마자 윤 전 총장 쪽은 갑자기 '와전'이라고 둘러댄다. 이 발언을 전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애초 기자 출신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정확히 전달하는 직업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그가 과연 '오보 전문가'인지 아니면 '진실'을 말했다가 황급히 오보라고 덮은 것인지는 본인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사모펀드 관련 발언은 더 심각하다. 윤 전 총장은 "내가 사모펀드 관련 수사를 많이 해 봐서 잘 안다. 어떻게 민정수석이 사기꾼들이나 하는 사모펀드에 돈을 댈 수 있느냐"며 '조국 법무장관 불가론'을 폈다고 한다. 그런 발언은 상식적으로 봐도 납득이 된다. 표창장 위조나 허위 인턴 경력 등의 문제로 대대적인 검찰 수사를 하는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 아마도 그때는 '사모펀드 비리'에 확신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서두에 인용한 논문에서 언론 기사 중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주제어가 '사모펀드의 조국과 관련성 유무'였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만약 대법원에서 정경심 교수의 사모펀드 범죄 혐의 관련성에 유죄판결이 나왔더라면 윤 전 총장은 "그것 봐라. 내가 사모펀드에 대해 말한 게 맞지 않느냐"고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그런데 무죄판결이 나오자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있다. 윤 전 총장의 발언을 직접 들은 사람은 일국의 장관을 지낸 사람(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이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는 너무나도 자명해 보인다.

윤 전 총장을 치켜세우는 사람들은 그를 '공정의 아이콘'으로 포장한다. 검찰 수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민낯을 드러낸 공로를 입이 닳도록 칭찬한다. 그런데 그는 공정의 아이콘이 될 자격이 있는가. 그를 애지중지 키운 것은 바로 보수언론들이다. 그에게 조중동은 아빠요. 종편은 엄마다. 그가 대선주자로 '속성재배'된 것은 보수언론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이 크다. 문제는 짧은 기간에 '정치적 키'는 훌쩍 자랐지만 이에 상응하는 학업 능력과 실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러자 '대선 입시'도 '조중동 아빠 찬스' '종편 엄마 찬스'로 치르려 한다. 대학 입시도 아니고 대선을 '특혜'에 기대 합격을 노리는 것은 너무 불공정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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