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사업장 보호 위한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인권으로 읽는 세상] 예외 없는 적용을 원칙으로

"사라진 빨간 날을 돌려주겠다"며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대체공휴일법이 통과됐다. 쉴 권리 보장을 내세운 법에서 근로기준법과의 충돌을 이유로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됐다. 임금과 고용, 노동시간과 휴식 등 노동조건의 최저기준을 규정한 근로기준법이지만, 최저기준조차 지키지 않아도 되는 예외지대가 바로 5인 미만 사업장이다.

권리 없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 중 하나가 "가족 같다"는 것이다. 작은 규모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일터에서 맺는 공적인 관계가 아닌 가부장처럼 사장이 군림하는 영세사업장의 현실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하다. 정해진 시간보다 더 일해도 수당은 없고, 휴게시간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다. 연차휴가가 없다보니 아파도 그냥 참고 일하고, 회사 사정 따라 휴업해도 아무런 대책이 없다. 위험한 작업환경에 노출되어도 안전조치를 요구하기 어렵다. 비단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만의 현실은 아니지만, 문제는 5인 미만 사업장을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지대라고 법이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2명 이상 모이면 노조를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이를 이유로 휴폐업을 하든 해고하든 아무런 대처를 할 수 없는 무방비 조건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이렇게 법이 만든 권리의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360만 명으로 추산되는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영세사업장 보호를 위해?

근로기준법 적용범위 조항의 헌법소원 결정이 1999년과 2019년에 있었다. 합헌 결정의 주요 이유로 "영세사업장의 경제적․행정적 부담"이 똑같이 등장했다. 영세사업장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 제한이 불가피한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대체공휴일뿐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중대재해기업 처벌 등 오랜 시간 이어져온 사회적 요구의 법제화에 매번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되었다. 노동자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로 열악한 영세사업장 보호를 내세우지만, 정작 영세사업장이 놓여있는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절반이 도․소매업, 음식․숙박업 같은 생활과 밀접한 업종이다. 어느 골목에서나 편의점, 빵집과 카페, 식당 등 프랜차이즈 가게를 찾아볼 수 있다. 단골 뉴스가 된 프랜차이즈 갑질 논란처럼 본사와 가맹점 간 위계에서 물품 강매 등 불공정 거래가 횡행한다. 원하청 사슬이 촘촘하게 작동하는 제조업이나 건설업의 5인 미만 사업장 현실도 다르지 않다. 원청의 납품 단가 후려치기를 가장 큰 골칫거리로 꼽는 하청업체는 어려워진 조건을 노동자를 쥐어짜며 메운다.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끊이지 않는 이유 뒤에는 무리한 공사 기간 단축을 요구하는 발주처의 요구가 있다. 영세사업장이 열악한 근원에는 원하청 사슬 속에서 비용과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이 있다. 사슬의 위쪽으로 갈수록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기 위해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사슬의 아래쪽으로 떠넘겨진다. 그리고 그 사슬 끝에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른 차별을 승인해온 근로기준법은 비용과 책임을 전가하는 불합리한 구조가 가능하도록 뒷받침해왔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인 예외지대가 있으니 비용과 책임을 무한정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법조차 피해갈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해 열악함이 구조화되는 것인데, 열악하니까 법의 예외로 두는 잘못된 진단을 되풀이한다. 산재 사망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함에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범위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여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준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법의 예외는 영세사업장의 열악함을 방치하는데 그치지 않고 더욱 양산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사업체를 쪼개 허위로 5인 미만 사업장을 운영하는 사례처럼 법의 예외가 만든 경계는 현실에서 더욱 확장되어 해당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권리도 위태롭게 만든다.

비용과 책임을 전가해온 구조의 문제

5인 미만 사업장 제외의 이유로 정부와 기업은 영세사업장 보호를 이야기하면서 마치 노동자 권리 보장과 대립하는 것처럼 왜곡해왔다. 그렇게 지탱되어온 영세사업장이 놓인 구조적 조건과 함께 이를 뒷받침해온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 열악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5인 미만 사업장을 법의 예외로 두는 것이 아니라, 열악함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질문하고 과제를 찾아야 한다. 우선 예외지대를 없애야 한다. 예외 없는 적용을 원칙으로 근로기준법과 함께 사업장 규모에 따라 권리의 제한을 만들어온 법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조건의 차이를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사업장마다 규모든 업종이든 여건이 다르기에 예외 없는 적용을 원칙으로 세워도 일괄 적용이 어려운 현실이 있다. 정부는 사업장의 어려운 조건을 노동자 권리 제한의 이유로 삼을 것이 아니라, 어떻게 모든 사업장이 노동자 권리 보장의 조건을 갖추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개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후설비를 비롯한 작업환경 개선이 필수적인데,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감당하지 못할 때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을 갖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원할 수도 있고, 관리감독을 강화할 수도 있다. 또한 예외 없는 적용이 원칙이 되었을 때, 그동안 비용과 책임의 전가로 영세사업장을 열악함으로 내몰아온 원청 기업의 수탈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일하는 모두의 권리 보장으로

대체공휴일의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로 근로기준법 개정 과제가 다시 떠올랐다. 2018년 문재인 정부가 만든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도 5인 미만 사업장을 예외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을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작년 개원한 21대 국회의 주요 입법과제 중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을 꼽았다. 현재 국회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여럿 발의되어 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논의의 진전이 없는 상태다. 더불어 연이은 중대재해 소식에 아무 변화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요구도 제기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권리 배제는 단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문제다. 예외지대로 승인한 노동자의 취약한 위치는 노동자의 권리를 일하는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특권 또는 시혜처럼 뒤바꾸고 모두의 권리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예외 없는 적용을 원칙으로 권리를 빼앗아온 구조적 조건의 변화를 만드는 지점에 근로기준법 개정 과제가 놓여있다. 모든 노동자의 권리로 세우는 시작이자 확대하는 경로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나아가야 할 걸음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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