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생산 증대와 확대재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을 중시하고 있다. 북한에서 물리학‧화학‧생물학‧수학 등의 순수과학의 발전에 비해 산업기술은 뒤떨어져 있다는 통념이 있다. 통념과는 달리 북한은 과학기술과 생산의 밀착을 강조해왔다.
사상‧기술‧문화의 3대혁명을 주창해온 북한은 오랫동안 기술혁신을 중시해왔다. 첨단돌파를 통해 경제재건에 성공하겠다고 선포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북한은 전 사회적으로 과학자‧기술자와 생산자 간의 협력과 '전민과학기술인재화'를 전개하고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돌파하기 위해 자력갱생을 중시하고 있다. 경제현장에서는 '과학기술에 의거한 자력갱생'을 모토로 내세운다. 21세기 지식경제시대에서 경제력은 과학기술 수준에 달려 있다.
'전환기' 북한경제는 과학기술발전을 빼놓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전 방위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생산현장에서 결실을 맺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실험과 시행착오가 반복될 것이다.
6회에 걸쳐 북한의 과학기술발전을 둘러싼 정책의지를 살펴봄으로써 과학기술발전이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 어떻게 접근하려고 하는지를 생각보고자 한다.
북한경제의 자력갱생, 가능한가?
북한의 새로운 5개년계획(2021~25년)과 과학기술발전의 관련성을 생각하던 차에 필자는 한편의 논문을 읽었다. 중국 연변대학교 림금숙 교수가 국내에서 발표한 "북한의 국가경제발전 '새로운 5개년계획'의 특징과 전망"(<수은 북한경제>, 2021년 봄호)이었다. 5개년계획에 관한 연구가 많지 않은 터에 관심 있게 읽던 중 필자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북한이 자력갱생으로 중화학공업의 수입대체를 실현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라며 세 가지를 들었다. ①생산설비의 노화가 심각하다. ②북한의 자력갱생은 '고비용 저효율'에 기반을 둔 것이다. ③자체의 힘으로 생산했다고 주장하는 기계설비도 핵심부품은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결국 "현재와 같은 이런 식의 자력갱생으로는 북한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으며 반드시 수출주도형 전략과 대외개방을 통하여 선진적인 기술‧장비들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24-25쪽).
생산설비에 대한 개건‧현대화
이런 지적에 동의하는 국내외 전문가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5개년계획에서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재편성을 기획하면서도 자력갱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필자는 북한이 어떤 정책기획을 갖고 실행에 옮기는지를 예의주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림 교수가 지적한 ①,②,③을 북한이 해결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북한은 ①'생산설비의 노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각 산업부문의 공장‧기업소들의 생산설비에 대한 개건(改建)‧현대화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개건‧현대화사업의 실증적인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지난 10여 년간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에 나섰던 대부분의 공장‧기업소들에서 개건‧현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쓴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제2권(파주: 경인문화사, 2020)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비용 저효율'의 극복
북한은 ②'고비용 저효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공장‧기업소들에서 노동력‧에너지‧부지 절약형 생산시스템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본 연재의 앞부분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을 보면 기간산업에서 원가 절감과 효과성 증대를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림 교수가 '고비용 저효율'의 사례로 지적한 석탄액화 기술만 해도 석탄가스화 기술과 함께 세계적으로 새로운 발전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주체철 생산에서 코크스를 대체하는 '산소열법 용광로'가 전력소비가 많다는 지적과 관련, 북한은 초기단계부터 전력소비 감소를 연구해오고 있다.
공업용 소금의 부족과 바닷물소금에서의 낮은 정제 수준(3%)으로 북한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림 교수의 서술이 있었는데, 바닷물소금의 정제기술을 발전시켜야 했다면 북한은 이 부문의 연구와 투자에 집중했을 것이다.
설비‧부품의 국산화 노력
북한은 ③설비‧부품 수입을 줄이기 위해 국산화에 주력하고 있다. 국산화가 어려운 주요 설비와 핵심부품은 수입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설비를 국내에서 제작하고 핵심부품 5% 이내만 수입하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국산화정책이 얼마나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그들의 정책 방향은 알 필요가 있다. "수출주도형 전략과 대외개방을 통하여 선진적인 기술‧장비들을 도입해야 한다"는 충고가 북한에 적절한 지는 의문이다.
①,②,③의 문제를 폭넓게 이해하려면 북한의 과학기술발전과 경제의 파급효과를 살펴보는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과학기술을 대하는 북한의 태도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로동신문>은 지난 4월 23일자 논설에서 "과학기술에 의해서만 자립경제의 쌍기둥인 금속공업과 화학공업을 중심 고리"로 삼아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생산을 추켜세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설의 초점은 "과학기술이 자립경제 발전의 기본 동력"이라는 것이었다.
논설에는 다른 나라들로부터의 선진과학기술 도입은 '주체적 과학기술발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었다. 문제는 북한의 핵무기를 비롯한 전략무기 개발과 그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신문은 "설비‧원료‧자재의 국산화가 생명선"이라는 관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과학기술과 생산의 밀착
과학기술발전을 통해 설비‧원료‧자재의 국산화에 도달하겠다는 것은 북한의 오랜 열망이다. 이것은 과학기술과 생산의 밀착이라는 정책방향과 통한다. 농업과 경공업,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공업부문, 지방경제와 국토관리 등의 발전은 모두 과학기술과 결부되어 있다.
5개년계획 기간에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모든 부문‧단위에서 노동력‧자재‧자금을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그것은 과학기술발전을 요구한다. 과학기술역량의 강화는 인재중시‧과학교육중시로 이어진다. 이것들은 과학기술문제를 대하는 북한의 기본 관점이다.
지난 4월 11일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는 제8차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결정을 관철하기 위한 내각의 1/4분기 사업정형을 총화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필자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경제 전반에서 과학기술의 역할을 '증대'시키는 문제가 토의됐다는 사실이었다(중통, 2021.4.12. '중통'은 <조선중앙통신>의 줄임말. <연합뉴스>, <통일뉴스> 등의 재인용 표시가 없는 경우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정보포털>에 게재된 <주간북한동향>, <월간북한동향>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보도에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으나 과학기술과 생산의 밀착을 강화한다는 의지가 재확인된 셈이다. 과학기술적 성과들이 생산설비에 장착되어 효력을 발휘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자금‧노동력‧시간이 소요될지라도 '과학적인 자력갱생'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 북한의 생각이다.
황해제철연합기업소의 궐기모임과 과학기술
<로동신문>은 지난 2월 23일 황해제철연합기업소의 노동계급 궐기모임을 보도했다. 5개년계획의 첫해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집회였다. 이런 모임은 늘 있는 일이었지만 그때그때 모티브가 다르다.
궐기모임에서 보고에 나선 황해제철연합기업소 당위원회 리성철 책임비서는 "나라의 금속공업을 앞장에서 견인할 수 있게 하는 최선의 방략은 황철 노동계급의 불타는 충성심과 애국적 열의, 자력갱생을 생명력으로 하는 과학기술발전에 있다"고 말했다. 산업현장에서 '충성심과 애국적 열의'는 관행적 수사(routine rhetoric)다. 금속공업을 대표하는 황해제철에서 '자력갱생을 생명력으로 하는 과학기술발전'을 중시하는 것은 수사가 아님이 분명하다.
리 책임비서는 "과학기술을 당정책 관철의 근본열쇠로 틀어쥐고 생산 공정의 기술개건과 현대화를 다그치며 재자원화를 적극 실현함으로써 계획적이며 과학적인 자력갱생의 생활력을 뚜렷이 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적인 자력갱생에서 생산 공정의 기술개건과 현대화 촉진, 재자원화(recycling) 실현 등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적인 자력갱생은 자력갱생의 시대적 변주다.
그는 또 "과학자, 기술자들은 자력갱생정신과 창조본때로 두뇌전, 실력전, 탐구전을 벌려 철강재 생산을 늘리는데서 나서는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하며 정비전략, 보강전략의 요구에 맞게 생산장성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완벽하게 구축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철강재 증산에서 요구되는 과학기술적 문제 해결에 방점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과학자‧기술자들은 두뇌전‧실력전‧탐구전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2021년에 생산 활성화와 확대재생산으로 직행하기보다 정비‧보강전략을 통해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주안점을 두겠다는 것이었다.
궐기모임에서는 김영철 기업소 지배인 등의 결의토론이 있었다. 토론에서는 △월별‧분기별‧연차별 목표와 계획의 '현실적' 구체화와 집행 △황해제철의 과학기술주도형‧개발창조형 기업체로의 전환 등을 통해 "올해 철강재 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할 것"이라고 했다. 계획의 '현실적' 구체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을 수립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산업현장에서 과장과 허위는 계획경제에 치명타를 준다는 문제의식이 살아나고 있다.
'과학기술주도형' '개발창조형'는 황해제철뿐 아니라 북한의 모든 기업체들의 로망이다. 황해제철 궐기모임에 등장한 '과학자‧기술자들의 자력갱생정신과 창조본때'는 과학자‧기술자들의 정신자세를 압축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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