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솜방망이 처벌, 망각의 문화가 계속 가해자를 만든다

[안종주의 안전 사회] 조직 살인, 국가 살인에 아파하지 말고 분노하라.

“절망스러웠을 피해자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피해 신고 이후 부대 내 처리, 상급자와 동료들의 2차 가해, 피해호소 묵살, 사망 이후 조치 미흡 등에 대해 엄중한 수사와 조치가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현주소이자 치부를 드러낸 공군 여성 부사관 성추행 사건과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에 의한 사망 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엄중한 수사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피해자에 대한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 것은 적절한 발언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가슴 아픈 것은 대한민국에서 숨 쉬고 있는 국민이라면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이런 심정을 뛰어넘어 분노를 말했어야 한다. 그리고 국군 통수권자로서 국가를 대신해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에 대해 국민에게 통렬하게 사과하고 분노를 표출했어야 한다. 문상도 직접 가야 한다.

상급자와 동료들의 2차 가해, 피해 호소 묵살, 사망 이후 조치 미흡 등은 이런 유형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가 익히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는 말이다. ‘미투’ 운동이 벌어졌을 때도 귀에 따갑도록 들었다. 군대뿐만 아니라 공무원 조직과 민간기업·조직, 체육계, 문화계, 의료계, 법조계, 예술계, 대학 등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곳에서 이런 일련의 공식은 나타났고 지금도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군인이 되고자 했던 공군 부사관의 죽음은 조직의 살인이자 국가 살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아버지·어머니의 딸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이자 청년이었다.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산재 사망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듯이 공군 부사관의 죽음을 더는 이 땅에 군대뿐만 아니라 조직에서 성 범죄와 이를 무마하기 위한 집단적 추가 범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부사관 죽음, 국정조사와 특검으로 파헤쳐야

이를 위해서는 군 수사기관에 수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에는 공군참모총장뿐만 아니라 국방부장관, 그리고 군을 관리하는 청와대 안보실 관계자 등이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현실에서 과연 군 수사기관이 이들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꼬리 자르기나 적당한 선에서 수사를 하고 마무리를 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따라서 국정조사와 함께 특검을 구성해서라도 이 사건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군대에서 있었던 유사 사건에 대해 6개월 또는 1년이 걸리더라도 샅샅이 수사를 해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우리 군대에서는 날이 갈수록 여군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남녀군인이 함께 근무해야 하는 환경이 더욱 많아진다. 한데 여군이 마음 놓고 군 생활을 할 수 없다면 이는 군 전력을 약화시키는 일이 된다. 전쟁에 대비하고 적과의 싸움을 준비하는 훈련을 하며 전우애를 다져야 할 군대가 성추행과 성폭력의 위협뿐만 아니라 집단 따돌림, 협박 등에 시달려야 한다면 그 군대는 더는 국민의 군대가 아니다. 성 추행이 전우애를 다지는 행위는 아니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이런 사건이 터질 때 하는 행태를 보면 직접 가해 당사자들은 구속하고 재판에서 실형을 선고한다. 성추행 가해자와 은폐·회유·협박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이 그 대상이다. 하지만 이러한 처벌로만 그친다면 유사 사건을 결코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이다. 부대장이나 공군참모총장, 그리고 국방부 장관 등은 여론의 추이를 보다가 마지못해 경질하는 정도다.

공군참모총장, 사표 수리가 아니라 사법처리해야

이번에는 절대로 그런 수순을 밟아서는 안 된다. 만약에 보고를 받고도 엄중하고도 적절한 조치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장관이라 할지라도 직무유기죄로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 옷을 벗기는 수준에서 이번 사태를 마무리하려 한다면 야당과 국민의 저항은 불 보듯 뻔하다. 하루빨리 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더는 이런 사건이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수술을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공군참모총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한다. 국민이 분노하고 엄청난 파장이 이는 이런 유형의 사건이 터지면 늘 하던 행태다. 하지만 결코 사표를 수리해서는 안 된다. 그는 지금까지 드러난 것으로만 보더라도 피의자 조사에 이어 사법처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국방부 장관은 부사관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야 관련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대처, 즉 장관이 이 사실을 알자마자 전군에 긴급 전언통신문 등을 통해 즉각 알리고 전군 지휘관을 소집하는 등의 조치와 보도자료 발표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곧 바로 공표하였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또 재발 방지와 철저 수사계획을 밝히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과연 했는지도 조목조목 살펴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2차 가해 솜방망이 처벌, 망각의 문화가 계속 가해자 만들어

우리 사회는 최근 광역단체장들의 잇단 성추문 사건으로 재보궐선거를 치른 바 있다. 이 사건들을 톺아보면 피해자가 자신의 자녀나 형제자매, 친구일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가해자가 자신과 친하거나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2차 가해를 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지고 있다. 이들은 2차 가해를 하고도 버젓이 검사 활동을 이어가고 공직 생활에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는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최근 현실이다.

2차 가해를 하는 정치인들도 처벌받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거의 없다. 혹 명명백백한 2차 가해 행위를 저질러 고발을 당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대중도 2차 가해 언행을 접할 경우 그때 잠시 분노하거나 비판·비난하고 만다. 조금만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또 그들을 지지하고 열광하며 한통속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망각의 문화, 망각의 행동은 제2, 제3의 가해자를 탄생시킨다.

우리 사회의 진짜 적폐는 청산되지 않았다. 힘없고 돈 없으며 권력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 차별받고 대접을 받지 못하는 구조적인 시스템과 문화를 청산해야 한다. 산재로 신음하고 죽어가는 하청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사람 취급받지 못하고 ‘갑질’에 내몰리는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네이버’ 청년 죽게 한 괴롭힘과 폭력 직장 문화 뿌리 뽑아야

우리 사회는 최근 몇 년간 각종 성범죄 사건과 직장 내 괴롭힘이나 갑질 폭력 사태를 겪었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최근 벌어진 국내 정보기술기업의 상징인 네이버에서 벌어진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직원의 극단적 선택, 즉 자살 사건이 그 단적인 예이다. 월급 많이 주고 자유로운 직장 문화를 상상해왔던 네이버에서 국민 대다수에게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은 공군 부사관의 죽음 사건에 밀려 상대적으로 언론과 정치권, 그리고 국민의 관심을 덜 받고 있다. 하지만 군대 성 범죄 사건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정부는 이 사건이 민간기업에서 일어났다고 해서 나몰라 하지 말고 청년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을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이를 계기로 직장에서 벌어지는 각종 탈법과 불법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특별근로감독과 함께 수사를 벌여야 한다. 정치권도 유사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 정비를 해야 한다. 네이버 청년의 죽음은 김용균의 죽음처럼 중대재해에 해당하는 억울한 산재나 다를 바 없다.

네이버 청년 사망 사건과 공군 부사관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끼리끼리의 문화가 팽배해 자신들이 저지르는 일들에 대해 최소한의 죄의식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유사 사건이 같은 조직에서 또는 다른 조직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 정치권, 학교, 법조·의료계, 공직사회 등 대한민국 거의 모든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로남불’과 끼리끼리 문화는 공정과 정의를 짓밟는 적폐 중 적폐다. 이런 적폐에 아파만 하지 말고 분노하라. 분노하지만 말고 행동하라. 그래야 진짜 적폐를 청산할 수 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이 적폐의 제물이 되지 않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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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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