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경제의 '중대한 사업'을 꼽는다면?
시‧군당책임비서강습회에서 지방의 '균형적이며 비약적인 변혁'의 '중대한 사업'이란 말을 꺼낸 것은 기존 전략의 반복은 아닐 것이다. '중대한 사업'은 무엇일까? 그 추정은 가능하다. 김정은 집권 이후 지방경제에서 벌어진 일에서 유추할 수 있다.
첫째, 삼지연의 도심개발처럼 당중앙에서 책임을 지고 5개년계획 기간에 각 도별로 시‧군을 정해 도심개발에 나서는 것이다.
둘째, 강원도 김화군의 지방공업공장 건설이 마무리되면 각 도별로 시‧군을 선택해 지방공업공장 건설을 진행하는 것이다. 지방공업공장은 생활필수품과 식료일용품을 생산하는 경공업공장이다.
군마다 지방공업공장이 20여 개 있다는 김일성 주석의 과거 발언을 감안하면 지방공업공장은 4180여개 정도로 추정된다(시(구역)‧군 209개 기준). 량강도 12개 시‧군에 지방공업공장이 151개 있었다는 북한이탈주민의 증언도 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시‧군당 공장 평균 숫자는 12.6개, 전체 공장 수는 2630여개 정도로 확 줄어든다. 지방공업공장의 실제 숫자는 2630~4180개의 중간 어디쯤일 텐데 이 공장들이 지방 인민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김덕훈 총리는 지난 3월 10일 김화군을 방문해 공장 부지를 돌아보았다. 그는 '지방공업공장의 새로운 기준'에 맞게 공공건물 건설에서 선(先) 하부구조 건설원칙의 준수, 하천정리 사업 등을 강조했다.
그는 현지협의회에서 건설대상별의 기술 준비의 촉진, 최단기간의 설계 완성, 마감공사의 질적 보장을 위한 기능공들의 준비, 공장들의 만부하 가동을 위한 원료원천의 탐구 동원 등의 대책을 토의했다(중통, 2021.3.10.).
김 총리가 김화군 건설현장을 방문한 것은 이곳 공장 건설이 '균형적이며 비약적인 변혁'의 분기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예를 찾아본다. 2017년에 건설된 삼지연 감자가루생산공장은 감자가루 생산이 기본 목적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7월 이곳을 방문해 영양쌀‧국수‧우동‧꽈배기 등 감자가공품 생산을 지시했다. 감자가루생산공장이 감자가공품 생산설비를 갖추면서 본보기공장으로 탈바꿈했다.
2019년에 백수십대의 설비 조립을 한 달여 만에 끝내고 생산 공정별 시운전이 진행됐다고 한다(중통, 2019.5.17.). 김화군의 신규 공장들도 2022년 이후 지방공업공장의 본보기공장이 될 것이다.
지방공업은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나? 국가의 큰 부담이 없이 자체의 풍부한 원료원천에 의거해 1차 소비품에 대한 지방수요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군에 자체의 원료기지를 확보하고 그 이용률을 높이면 국가의 추가적 투자가 거의 없어도 지방의 1차 소비품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일부 제품의 생산을 전문화하면 대외시장에 내놓을 수 있고 지역 특산물 생산을 늘릴 수 있다(로동, 2018.3.22.).
북한에서 1차 소비품은 된장, 간장, 치약, 칫솔, 비누, 술, 학습장(노트) 등 10여 가지를 지칭한다. 1차 소비품 생산은 순전히 지방공업의 몫이다. 1차 소비품의 중요성을 감안해 공장에 원료‧자재‧전기 등이 우선적으로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방공업공장은 중앙경공업공장과 마찬가지로 2002년 7.1조치 이후 경영활동의 자율성(북한의 표현으로는 '상대적 독자성')을 갖게 되었다. 이 조치에 따라 가격과 노동보수가 조정됐고 이것에는 근로자들의 욕구를 반영한 면이 있었다.
7.1조치의 시행 과정에서 액상계획(생산액 기준)이 반영되면서 현물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지방 인민들의 소비품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문제가 나타났다. 일부 지방공업공장에서는 계획 달성에 필요한 생산액 부담을 근로자들에게 전가하는 현상도 일어났다고 한다. 이러한 문제점은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언제든지 반복될 수 있다.
지금은 지방공업공장에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가 적용되고 있어 경영권한이 더 강화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지방공업공장이 처한 문제는 분명하다. 낡은 공장을 개건 현대화하는데 필요한 재정을 시‧군 인민위원회가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5개년계획 기간에 국가지원과 시‧군 자체 능력의 보강 사이에서 오락가락 할 수 있다.
셋째, 속도전청년돌격대와 군(軍)건설부대를 투입해 각 시‧군에 중소형 발전소를 더 많이 건설해 전력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북한의 지방경제 전문가는 지방의 특성에 맞는 전력생산기지를 건설할 것, 이미 건설된 중소형 수력발전소에서 전력을 정상적으로 생산할 것, 이를 통해 지방공업에 전력을 '자체적으로' 공급할 것을 강조한다(함성준, "지방경제의 특색있는 발전과 인민생활 향상" <김일성종학대학학보(철학‧경제학)>, 2018년 제4호/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북한농업동향>, 2020년 12월호, 130쪽 재인용).
지방공업에 전력을 '자체적으로' 공급하려면 전력생산기지를 늘려야 하고 현재로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소형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군민(軍民)협동작전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중앙에서 속도전청년돌격대와 군건설부대를 투입해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지방예산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넷째, 지방예산제의 개선사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지방예산제는 국가의 중앙집권적 지도 아래 지방 살림살이를 자체의 수입으로 꾸려나가는 제도다. 북한에서 지방예산제가 도입된 것은 1973년이었다. 당시부터 공장 기술설비의 현대화와 수매사업 방식의 개선 등을 통해 지방예산을 확보하라는 지시가 각 시‧군으로 하달됐다.
지방예산제의 도입에 따라 각 시‧군은 독자적인 살림살이를 마련해야 했고 지방공업공장들은 독립채산제에 의거한 독자 경영을 모색해야 했다. 당 중앙은 군의 역할을 높기 위한 지도를 강화할 것을 군당위원회에 지시했다. 각 시‧군은 지방공업을 근간으로 삼고 농업‧상업을 견인하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자립을 모색해야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자력갱생은 지방의 생존문제와 직결됐다. 당시의 물자 부족이 지방의 역동성을 불러오는 역설이 시작됐다. 각 시‧군의 경제형편은 달랐다. 자체의 원료원천이 풍부한 지역이나 공정 설비가 우수한 지역에서는 1차 소비품을 비롯한 생필품 공급이 상대적으로 원활했다. 그에 따라 재정 건전성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지방이 태반이었으나 점차 자력갱생에 익숙해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10.3담화에서 지방주권기관의 '계획권'을 확대할 것, 지방공업공장에서 생산품 가격을 자체로 결정할 것 등을 지시했다. 시‧군 인민위원회는 예산의 편성과 계획에서 이전보다 더 큰 권한을 갖게 됐다.
지방공업공장은 생산소비품의 가격‧규격을 자체로 제정하여 판매할 수 있었다. 다만 상급기관의 감독을 받아야 했다. 더욱이 시‧군 인민위원회는 세입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권한을 갖지는 못했다.
'지방예산법'에 따르면 지방 살림살이는 도‧시‧군 인민위원회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자체의 수입으로 지출을 보장하게 되어 있다(제2조). 이 법은 2012년 12월에 채택됐는데 이는 지방예산제가 시작된 지 40여 년만의 일이었다. 지방에서 모든 예비의 최대한 동원 이용과 지방 예산수입의 부단한 증대(제4조), 정해준 항목에 따른 지방예산자금의 정확한 지출(제5조) 등이 이 법에 담겨 있었다.
이 법이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와 제정된 것은 시‧군 인민위원회로 하여금 농촌경리와 지방공업 등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예산과 지출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산수입은 △시‧군 예산 소속 기관‧기업소‧단체가 내는 예산납부금 △시‧군 안의 중앙‧도 예산 소속 기관‧기업소‧단체가 내는 예산납부금이라는 두 가지로 구성된다.
예산지출은 시‧군 예산단위에 공급하는 기본건설자금, 대보수자금, 인민경제사업비, 인민적 시책비, 사회문화사업비, 국가관리비, 우대기금 등으로 이뤄진다(제12조).
예산 집행은 도 인민위원회의 지도 아래 시‧군 인민위원회가 한다(제15조). 시‧군 인민위원회는 도 인민위원회의 '지도 아래' 예산을 집행하니까 완전한 독자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지방예산수입에서 상부 기관(도‧중앙)에 바칠 납부금을 먼저 납부한 다음에 필요한 재정지출을 하게 되어 있다(제10조).
경제계획에 의한 수입(예산납부금)으로 상부 기관에 바칠 납부 몫과 자체의 지출을 보장하지 못할 때에는 지방의 원료원천과 내부예비를 최대한으로 동원하여 수입과 지출을 맞추도록 해야 한다(제17조 4항).
이런 구조이기에 예산수입의 확보가 중요해진다. 시‧군 인민위원회는 지방공업, 농업발전, 수산업발전, 상품공급‧사회급양‧편의봉사사업, 문화후생시설의 운영, 부동산사용, 경영활동의 개선 등으로 예산수입을 확보한다(제25~제31조). 가장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지방공업으로 알려져 있다.
각 시‧군의 지역적 특성에 따라 수입원천이 부족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시‧군 인민위원회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기본건설자금, 인민적 시책비 등의 일부 자금을 예산으로 충당하지 못하면 도 예산에서 필요한 자금을 받을 수는 있다(제35조). 그러나 모든 시‧군은 '국가에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시‧군 안의 인민생활을 향상시킨다는 목표를 달성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방공업이 중앙의 투자‧공급 없이 자체로 원료‧설비‧노동력을 해결하면 중앙은 중공업 건설에 국가투자를 집중할 수 있다. 북한에서 이 정책 담론은 1960년대 초부터 있어왔다. 1970~80년대에는 국가의 추가적인 지출 없이도 지방공업이 인민소비품 생산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담론이, 지도자에서 경제학자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 있었다.
지방공업은 생산과 소비가 근접 거리에서 이뤄지니까 원료 수송비를 비롯해 생산 지출을 절약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자금 회전속도를 높이고 노동생산능률을 높여 생산의 신속한 발전에 유리하다는 것이었다. 이 정책담론은 지금도 유효하고 반복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문제는 시‧군들 가운데 자체의 예산수입으로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는 점이다. 지역별로 생활수준의 차이가 발생한다. 김정은 집권기에 지역별 자력갱생이 강조되면서 지역 격차는 오히려 커졌을 개연성이 있다. 예산수입에서 가장 큰 부분인 지방공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해진다. 지방예산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이 과제는 겉으로는 안 보이지만 속앓이의 근원일 수 있다.
통일부의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18년 4월 30일 지방공업성을 신설했다고 한다. 이것은 지방공업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필요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지방공업성에는 지방공업관리국‧식료일용연구원 등이 있는데 지방공업관리국은 평양시를 비롯해 각도에 관리국 형태로 존재한다(통일부, <2020 북한 기관별 인명록>). 이 구조에서 유추한다면 시‧군 인민위원회에도 지방공업관리국이 있을 것 같다. 시‧군 지방공업관리국은 도‧중앙 지방공업관리국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북한 학자의 제안① '지방경제' 발전의 방도
한편, 지방경제 발전의 방도를 다룬 북한 학자의 글은 북한 현실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백금철, "지방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인민생활을 끊임없이 향상시키기 위한 방도" <경제연구>, 2019년 제2호/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북한농업동향>, 2020년 6월호, 113-114쪽 재인용).
필자의 생각을 덧붙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요약한다(이하 동일). 이것은 북한 학자들은 모두 '관변학자'이고 정책입안자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원문이 수록된 <경제연구>는 <김일성종합대학학보(철학, 경제학)>와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논문집이라는 점을 감안한 것이다.
북한 학자의 제안② '지방공업' 발전의 방도
지방공업 발전의 방도를 다룬 북한 학자의 글은 북한 현실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박춘화, "현 시기 지방공업 발전을 위한 몇 문제" <경제연구>, 2015년 제4호/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북한농업동향>, 2016년 1월호, 160-162쪽 재인용).
북한 학자의 제안③ 지방경제 계획과제의 수행방도
지방경제 계획과제의 수행방도를 다른 북한 학자의 글은 북한 현실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실순영, "군 경제발전계획의 본질적 내용과 특징" <경제연구>, 2015년 제4호/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북한농업동향>, 2016년 1월호, 157-159쪽 재인용).
시‧군의 자력갱생에서 중앙의 지원 강화로 유턴
1990년 중반 이래의 김정일 집권기에 시‧군은 자립성을 얻고 그 경험을 쌓아가면서 중앙의 일방통행에서 조금 벗어나는 분위기가 있었다. 당시에도 중앙집권적 통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국가가 지방경제 발전을 위해 자력갱생을 장려하면 중앙과 지방 사이에 원심력이 작동하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중앙은 구심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와서는 지방경제의 자립성 강화와 군 소재지의 개발에 집중하는 중이다. 자립성 강화는 지방예산제의 정착과 외화벌이사업의 권장 등으로 나타났다. 지방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으면 국가재정은 기간산업과 전략산업에 투자할 수 있어 중앙에 부담을 덜어준다.
지방의 경제자립도를 높이려면 지방공장들의 생산 정상화가 필요하고 시‧군의 독자적인 발전전략과 전문생산 특화시스템이 필요하다. 전자는 공장 설비의 개건 현대화와 투자를 필요로 한다. 후자는 다른 지방에서의 판매와 해외수출이 가능한 상품 생산이 필요하고 이 공정을 갖추려면 역시 투자가 필요하다.
지방 인민들에게 공급할 1차 소비품은 지방공장에서 생산해야 하고 그 소요자금도 시‧군에서 확보해야 한다. 결국 시‧군에서 진행하는 사업은 대부분 자금이 요구되고 이를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결론이 다다른다.
자금 부족에 처한 시‧군들에서 단기간에 이 과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순차적‧단계적으로 진행해 나갈 수밖에 없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 현재 군 소재지의 도심개발에 필요한 원자재‧자금은 중앙경제가 지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앙의 지원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일부 군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된다.
김정은 집권기의 지방경제 발전전략에서 중앙의 지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전환이 시작되고 있다. 지방의 자력갱생은 농업‧상업에 의존한 바가 크며 지방공업공장의 질적인 발전(개건 현대화)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중앙 당‧정부에서 보면 '지역격차'라는 원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지방경제에 대한 국가적 지원의 증가 현상은 '전환기' 북한경제의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줄이려면 시‧군 소재지의 적극적인 개발은 필요하고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면 지방 인민들의 생활체감은 나아질 것이다. 남는 문제는 자금 부족과 투자순서다. 국가예산을 지방경제 발전에 지출하려면 국가예산수입을 늘려야 하고 이것은 중앙 기업체들의 순소득 증가를 필요로 한다.
국가예산수입은 거래수입금, 국가기업이익금, 협동단체이익금, 봉사료수입금, 감가상각금, 부동산사용료 등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국가예산수입법 제2조). 지방공업공장들의 순소득 증가도 당연히 필요하다. 5개년계획 기간에 북한은 지방경제의 자력갱생 및 지방예산제 강조와 지방경제에 대한 국가적 투자의 증대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서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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