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6.11 전당대회에서 최종 당권 후보 5인을 가려내기 위한 예비경선(컷오프)이 막을 올렸다. 다음날부터 이틀간 시행될 컷오프 여론조사를 앞두고, 경선 후보 8인이 25일 오전 각자의 정견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웃음과 덕담이 오갔지만, 이면에는 경쟁 후보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숨긴 소리장도(笑裏藏刀)의 무대였다.
국민의힘 당권주자들은 이날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관위가 주관한 '비전 발표회'에서 모두 대선 승리를 통한 정권교체를 지상과제로 강조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다음 대표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정권교체"라며 "가장 아름답고 공정한 경선 관리와 (야권) 단일후보 선출로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나 전 원내대표는 "우리 당 안에도 훌륭한 후보가 많이 있지만 당 밖에도 뛰어난 주자가 많이 있다"며 "지난 대선처럼 표를 갉아먹거나 분열하면 패배를 넘어 궤멸하고 말 것"이라고 야권 통합 쪽에 방점을 둔 메시지를 내 눈길을 끌었다.
나 전 원내대표는 그러면서도 "지난 4년, (당의) 벽체가 무너지고 지붕이 날아갔을 때 당원들이 지켜 줬기에 당이 존재할 수 있었다"며 "저 나경원은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함께 당을 지켰다"고 경쟁자들에 대해 견제구를 던지기도 했다. 주호영 전 원내대표,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탄핵 사태 당시 탈당했다 복당한 이력이 있다.
또 "우리 당은 늘 약자와의 동행에 인색했다"며 "저 나경원의 삶이 약자와의 동행이었다. 우리 당에 부족한 점을 보충해 확장하겠다"고 말한 대목도 최근 여성 차별 자체를 부정하는 등의 안티페미니즘(反여성주의) 언행으로 논란을 일으킨 이 전 최고위원을 상기시킨다.
주 전 원내대표도 야권 통합을 강조했다. 그는 "누구나 통합을 주장하지만, (다른 후보들은) 한 번이라도 성공하거나 경험해본 적이 있느냐"며 "총선에서 참패해 당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 저는 미래한국당과의 통합을 완성했고, '김종인 비대위'를 출범시켜 마무리했다. 장외 집회 없이도 지지율 15%포인트를 올렸다. 국민의당과의 합당 준비도 거의 마무리했다"고 지난 1년 원내대표로서 거둔 성과를 강조했다.
주 전 원내대표는 "당선 즉시 대통합위원회를 발족시켜 야권 통합과 후보 단일화에 성공해 내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 당은 제가 봐도 매력이 없다", "우리 당원은 28만 명이고 민주당은 80만 명이다. 지도부가 당을 일방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라고 기존 당 운영을 비판하면서 당의 주요 사안을 전당원투표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주 전 원내대표는 그러면서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 어떤 장수를 선택하겠느냐. 전쟁 경험이 없는 장수, 패배를 반복한 장수를 선택하겠느냐"고 당권 경쟁자들을 간접 비판해 눈길을 끌었다.
'경험 없는 장수'는 이 전 최고위원을, '패배를 거듭한 장수'는 나 전 원내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됐다. 앞서 '나는 장외투쟁 없이 당 지지율을 올렸다'고 한 대목도 '강성 투쟁' 이미지가 있는 나 전 원내대표에 대한 견제로 풀이된다.
신진 돌풍을 이어가고 있는 초선·원외 후보들의 정견 발표도 주목을 받았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이날 정견발표에서는 반여성주의적 발언을 추가로 내놓지는 않았고, 대신 '총선 부정선거' 논란 등 극우 음모론과의 결별, '공직후보자 기초자격시험' 공약 등 신진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한껏 강조했다.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에서 2~3년 수험생활을 하는 청년들이 우리당 의원·당직자들은 MS오피스를 어디서 파는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표를 얻어올 방법이 없다"고 2016년 국정감사 당시 이은재 의원의 관련 논란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웅 의원은 "우리는 왜 정치를 합니까"라는 질문을 앞세웠다. 유승민 전 의원이 2015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던진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라는 질문을 연상시키는 말이었다. 김 의원은 유 전 의원에 의해 정치권에 영입된 인사다.
김웅 의원은 "당의 불가역적 변화"를 강조하면서 "빨리 중도로 뛰쳐나가 실용으로 국민 삶을 해결해주는 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 30% 공천 룰을 제가 반드시 만들겠다"고 한 대목은 여성·청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할당제를 반대하고 있는 이 전 최고위원과 대별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우리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노동자가 한 명이라도 덜 죽게 하기 위해, 고독사하는 노인을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해, 차별과 소외를 시정하고 청년에게 미래를 주기 위해 정치를 한다"고 말한 대목 역시 같은 맥락에서 눈길을 끌었다.
중진 후보들은 신진 후보들의 선전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 전 원내대표도 앞서 한 연설에서 "많은 젊은 후보가 나와 선전하는 것은 바림직한 일이지만 패기 하나만으로 선택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경륜과 패기의 조화"라고 했고, 홍문표 의원은 "요즘 새로운 인물 논의가 많지만 비닐우산으로 태풍과 폭우를 막을 수는 없다"고 했다.
홍 의원은 두 전직 원내대표를 겨냥해서도 "실패한 장수를 다시 쓰는 것은 전쟁 포기하는 것"이라거나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후보를 하기 위해 누구를 찾아가 교육을 받고, 같은 기차를 탔느니 무슨 아파트에 같이 있느니. 수권정당 대표가 되겠다는 사람이 이렇게 잔졸하게 정치를 해서 되겠다"고 날을 세웠다.
친박 표심에 대한 호소도 나왔다. 조경태 의원은 "통합·화합· 관용의 정치를 위해 대표가 되면 옥고를 치르는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운동에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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