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나-삼성 협약만으론 안돼...백신 주권 위해 '국가백신연구소' 만들자

[안종주의 안전 사회] 한국의 백신 주권 전략은? 도우미가 아닌 주도자가 되어야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과 한미 간 정상회담에 국민의 눈귀가 쏠린 까닭 가운데 하나가 방미를 계기로 화이자 백신 등 미국이 생산하고 있는 안전하고 효과가 높은 백신을 우리가 추가로 확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결과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가 전령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와 위탁 생산 계약을 맺고 한국군 55만 명에게 접종할 수 있는 백신을 지원받기로 합의한 정도였다. 국민의 기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성과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가 하루빨리 자체 백신을 개발·생산하는 이른바 백신 주권 확보가 다시금 매우 중요한 의제가 됐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삼성바이오의 모더나 백신 위탁 생산 계약을 두고 한국이 백신 생산 허브국가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방미 성과에 박수를 보내거나 자화자찬하고 있다. 강도태 보건복지부 2차관(보건의료 부문 차관)은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미 백신 협력’ 관련 브리핑을 갖고 “이번 (한미 간) 파트너십으로 양국이 글로벌 보건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동시에 한국이 백신 부족 상황을 타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며 “글로벌 백신 허브 국가로 발전하는 데에도 새로운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백신 생산 허브 국가는 원천적 한계가 있는 목표

일부 언론은 이번 계약으로 우리의 백신 생산 역량이 국제공인을 받았고 국내 백신 공급난도 해소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고 분석·평가했다. 하지만 이는 냉정하고 적확한 평가는 아니다. 국제공인은 백신 생산 역량을 국제공인 해주는 기관이나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사실과 거리가 있고 백신 공급난 해소는 이번 계약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 비판적 언론도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모더나와 삼성바이오 간 이번 계약은 백신 개발 기술을 지닌 모더나와 백신 원료액을 모더나에서 받아 국내에 들여온 뒤 소분(小分)하여, 즉 조금씩 나눠 접종용 백신 용기(바이알)에 무균 상태에서 담을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삼성바이오의 상호 이익이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일어났다. 그리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극대화해 선전할 필요가 있는 한국과 미국, 그리고 두 회사가 두 나라 정상 간 만남을 통해 발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전령리보핵산 방식의 백신 제조 기술을 전수받거나 삼성바이오 위탁 생산 백신 가운데 일정 비율을 국내에 우선공급 받기로 했다면 이는 상호 이익을 위한 계약을 넘어 한국이 실질적 백신 생산 국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또 그렇게만 됐다면 그동안 마음 졸이며 백신 수급 상황을 살필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현실에 크게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할 터인데 이번에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비록 위탁으로 국내에서 모더니 백신을 생산하고 현재로서는 전량 외국으로 보내는 조건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노력해 일부 물량을 국내에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게 한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인 결과라고는 할 수 있다.

백신 주권 국가는 모든 갈등과 불신 해소하는 열쇠

백신 생산 허브 국가는 한계가 있다. 만약에 하나 국내에서 위탁 생산한 백신을 우리의 뜻대로 국내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사용하려 할 경우 개발 회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백신 생산 허브 국가에서 우리 기업들이 상당한 돈을 벌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국민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백신 주권국가는 못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표는 백신 허브 국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백신 주권 국가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백신 주권 국가로 가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먼저 빠르게 전 국민 집단면역을 달성할 수 있고 백신 수급의 불안을 덜 수 있다. 백신 수급과 관련한 정치적 공방도 원천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가 세계 많은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자체 생산한 백신을 무상 또는 저렴하게 공급함으로써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이들과 외교·경제적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 수 있다. 이미 러시아와 중국, 미국 등이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 백신이 차고 넘치는 미국은 우리에게 군사동맹의 관계를 고려해 55만 명분을 공급해주기로 한 것이 단적인 예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 등에 손을 벌려야 하는가.

최근 전문가들은 코로나의 완전 종식보다는 독감처럼 코로나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고 있다. 또 지금의 코로나 백신이 지닌 효용성, 즉 면역 지속성이 1년을 넘기지 못한다면 매년 추가 접종을 해야 한다. 세계는 일상적으로 백신 확보 전쟁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새로운 팬데믹 유행에 대비 위해서라도 백신 주권 필요

이뿐만 아니라 기존 백신으로 잘 듣지 않는 변이바이러스가 확산할 경우에 대비해 변이주에 도 잘 듣는 새로운 백신 개발이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백신 주권을 갖지 못해 백신 개발 국가와 개발 회사에 갑을 관계로 묶여 있다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백신 수급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자체 백신 개발이 필요한 까닭은 당장은 코로나 유행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언제 우리를 괴롭힐지 모르는 신종 감염병에 근본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것도 있다. 코로나19 유행 때와 같은 혼란과 불안 등을 우리 국민이 더는 겪지 않도록 할 책무가 국가에 있기 때문이다.

백신 주권은 곧 안보라고 한다. 감염병 대응은 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는 말은 코로나 유행 초기인 지난해 봄부터 줄곧 나왔다. 이 말이 맞는다면 백신 주권이 곧 안보라는 말이 타당성을 지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더 이상 톺아볼 필요도 없다.

백신 주권은 지금 당장의 문제이며 동시에 매우 가까운 미래의 현안이기도 하다.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이루어내야 할 중대 사안이며 비전이다. 국가가 민간기업과 손잡고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효과적 전략을 세워 백신 주권 고지를 점령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새로운 코로나 백신 개발에 미국이 수조 원 내지 수십조 원을 퍼부어 성과를 냈다는 점을 들어 우리가 그 대열에 끼기 쉽지 않다는 비관적 분석을 한다. 우리 정부가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해 민간 기업에 지원하는 규모는 수백억 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 위험 크고 막대한 연구비 투입 필요한 부분은 국가가 맡아야

하지만 막대한 개발 비용을 퍼부어야만 백신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바이오벤처인 바이오앤테크 등 이번에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백신 개발에 성공한 사례를 톺아보면 한 우물을 파고 효과적인 전략을 잘 구사하면 미국이 투자한 규모의 10분의 1 내지 100분의 1을 투입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우리 바이오제약기업들이 mRNA와 같은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것은 당장에는 쉽지 않다. 따라서 개발 실패 위험이 크고 많은 투자비가 들어가는 기초 연구 등은 국가가 책임지고 하고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역량이 쌓아온 백신 개발 기술 부문은 민간이 더 힘을 키우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2021 세계 임상시험의 날 기념행사'에서 “정부는 국산 백신 개발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다. 기업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백신 주권 확립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얼핏 보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이 지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가백신연구소도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국가가 백신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고 결코 말하기 어렵다. 백신 주권 확립에 국가가 도우미가 아닌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 형편에 맞는 백신 주권 국가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구단주와 감독, 선수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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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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