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47명, 여성 29명 사망...이스라엘 15년 장수 총리의 피투성이 생존법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위기의 네타냐후, 전쟁이 사적 이익 챙기는 수단인가

해마다 봄이 오면 중동 요르단 강에 맞닿은 팔레스타인 서안(West Bank) 지구, 그리고 지중해변의 가자(Gaza) 지구에선 대규모 집회가 자주 열린다. 1년 가운데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기념일을 앞뒤로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이의 긴장도가 특히 높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건국선포 바로 다음날을 '나크바(Nakba, 대재앙)'의 날로 기린다. 1948년 당시 13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 가운데 약 75만 명이 살던 집과 땅을 잃고 쫓겨났었다.

이즈음 상황도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1주일 사이(5월 10일~5월 17일)에 많은 사상자들이 생겨났다. 이스라엘은 군인 1명을 포함해 10명이 사망했다. 늘 그렇듯이 팔레스타인 쪽 희생자가 훨씬 많다. 가자 지구에서만 사망자가 174명으로 집계됐다(부상자는 약 1200명). 죽은 이들 가운데 어린이 47명, 여성 29명이 포함돼 있다.

사망자 비율 10 대 1, "전쟁 아니라 일방적 학살"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유혈분쟁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을까. 이스라엘 정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또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해방구'로 삼고 있는 저항조직 하마스가 내는 집계가 모두 제각각이다.

한바탕 유혈의 회오리가 지나가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이에선 어김없이 '통계 전쟁'이 벌어진다. 민간인 희생자 통계를 자기 쪽에 유리하게 부풀리거나 줄이곤 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평화운동단체인 베첼렘(B'Tselem, 이스라엘 점령지역 인권정보센터)의 통계는 그나마 신뢰도가 높다. 베첼렘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제2차 인티파다(intifada, 저항 또는 봉기. 1차는 1989년 발발) 이래로 지금껏 20년 동안 유혈분쟁에서 죽은 사람은 1만 2000명에 이른다.

사망자 비율은 10 대 1로, 팔레스타인 쪽 사망자가 훨씬 많다. 팔레스타인 희생자들 가운데는 비무장 민간인이 전투원보다 훨씬 많고, 특히 어린이와 여성 희생자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그렇기에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학살'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 2009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침공으로 파괴된 팔레스타인 관공서 모습Ⓒ김재명

7년 만에 대규모 유혈 참극 벌어질까

올해 5월은 지난해와는 달리 긴장도가 높은 편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해방구'로 여기는 저항조직 하마스(Hamas)와 이스라엘 군 사이의 포격전으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최근 4000명 규모의 이스라엘 군 병력이 가자지구 접경에 배치된 점도 세계의 눈길을 끌었다. 이스라엘 군이 탱크를 앞세워 가자지구로 밀고 들어가는 전쟁을 벌이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는 중이다.

지난날 이스라엘 군은 3차에 걸쳐 가자지구를 침공해 많은 희생자를 낸 바 있다. 2009년, 2012년, 2014년이 그러했다. 특히 2014년 7~8월 사이에 벌어졌던 가자 침공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겐 악몽이었다. 그때 숨진 팔레스타인 사람이 2104명에 이른다(어린이 495명, 여성 253명 포함해 사망자의 70%가 비무장 민간인). 그에 비해 이스라엘 사망자는 71명에 그쳤다(군인 66명, 민간인 5명).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또다른 대규모 참극이 벌어질 것인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하는 대목이 지금의 긴장 상황이 이스라엘 정치 상황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이 긴장상황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 현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도 그런 부류의 하나로 꼽힌다.

정치적 술수와 군사적 강공책으로 15년 집권

1949년생인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2006년 6월부터 2009년 7월까지 3년 동안, 2009년 3월에 총리에 다시 올라 지금에 이르렀으니, 총리 재임 기간이 15년 넘는다. 하지만 그 15년 세월을 돌아보면, 팔레스타인을 겨냥한 정치적 술수와 강공책이 넘쳐난다.

네타냐후의 장기집권을 이끈 요소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전쟁을 정치에 이용했다는 점이다. 200년 전 <전쟁론>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이란 다른 수단(폭력)을 동원한 정치적 관계의 연장"이라 정의했듯이, 전쟁은 정치와 떼놓을 수 없다.

네타냐후야말로 전쟁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다름 아닌 그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쟁을 정치에 이용한다는 것이다. 안 일으켜도 될 전쟁을 일으킨다면, '평화를 깨트린 죄'로 법정에 서야할 전쟁범죄자가 된다.

네타냐후는 팔레스타인의 2대 정치세력 간의 분열과 불신을 일으키고, 두 세력이 함을 합치는 것을 막아온 정치공작의 달인이다. 여기서 2대 세력이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구성하는 온건파 세력으로 서안지구를 지배하는 파타(Fatah), 가자지구를 지배하는 강경파 하마스(Hamas)를 가리킨다.

파타와 하마스는 공동의 적 이스라엘과 맞서려면 힘을 합쳐야 한다. 따라서 총선거를 통해 연립정부를 구성하려는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파타-하마스 사이의 정치적 타결 조짐을 보이면, 네타냐후는 가자지구를 겨냥한 군사작전을 펴곤 했다.

그러면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하마스는 "우릴 도와주지 않고 구경만 한다"고 파타를 비난한다. 파타는 "왜 무리한 강공책으로 이스라엘을 자극하느냐. 투쟁만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하마스를 나무란다. 그러면서 둘 사이의 정치협상은 없던 일이 된다.

네타냐후는 긴장을 이용해 자신에 대한 지지율을 관리하는 달인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사이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이에 따른 유혈충돌이 이어지면, 네타냐후 지지율은 올라간다. 자살폭탄 공격 전술을 포함한 하마스의 극한 투쟁으로 이스라엘 시민들이 죽고 다치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유권자들의 마음은 강경 쪽으로 기울어진다.

정치적 위기에 몰릴 때마다 이스라엘 안보를 내세우며 긴장감을 높이는 네타냐후의 뻔한 속셈을 꿰뚫어 보는 이스라엘 유권자들도 있긴 하다. 이들은 거리 시위에서 "팔레스타인에겐 땅을!, 우리 이스라엘에겐 평화를!"이라 외치며,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의 정신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과의 유혈분쟁이 오래 끌면서 이들은 이스라엘 정치지형에서 소수파가 됐다.

▲ 지난 13일(현지 시각)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국경 수비 경찰대를 방문해 대원들과 만남 시간을 가진 뒤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위기의 네타냐후가 그리는 그림

정치적 술수와 군사적 강공책의 달인 네타냐후도 지금은 내리막길이다. 그 요인은 두 가지로 꼽힌다. 첫째는 장기집권에 따른 피로감이 이스라엘 유권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고, 둘째는 범죄 혐의(뇌물 수수, 배임, 사기)로 이스라엘 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비리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예전보다 커졌다. 올봄에 치른 3.23 총선에서 그의 소속당 리쿠드(Likud)의 의석수가 6석이 줄어들어 30석에 그친 것도 위의 두 요인 때문이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에선 대통령(명목상의 국가원수)이 지명하는 총리 후보 지명자가 42일 이내에 다른 정당들과 연립내각 구성에 합의하면 총리직에 오르게 된다. 3.23 총선 뒤 네타냐후는 여태껏 그래왔듯이 다른 우파-종교 정당들을 끌어 모아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전체 의석 120석 가운데 61석 이상을 채우고 새 연립내각의 총리에 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선거 뒤 한 달 반이 지나도록 네타냐후는 연립 여당 구성에 실패했다.

지난 5월 5일 차기 내각 구성 권한은 중도성향 정당인 '예시 아티드'의 지도자 야이르 라피드에게 넘어갔다. 라피드마저 42일 안에 연립내각 구성에 실패한다면? 이스라엘은 다시 총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높다. 2년 사이에 이미 4번의 총선거를 치를 정도로 이스라엘 정치권은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이 안개 속이다. 바로 여기서 네타냐후의 꼼수가 작동할 여지가 생겨난다.

더 많은 피를 흘려야 이롭다?

15년 장기집권의 내리막길에서 총리 직함이라는 보호막이 없어진다면 네타냐후는 법정에서 구속될 수도 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네타냐후는 머릿속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다름 아닌 팔레스타인 강경파 하마스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그림이다.

지난날 그랬듯이, 하마스에 대한 강공책을 펴 정치군사적 긴장감을 높이는 쪽이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더 많은 피를 흘리는 쪽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주판알을 튕겼을 게 뻔하다.

지금 차기 연립내각을 짜려고 물밑 협상에 바쁜 라피드가 최근에 높아진 긴장 국면 탓에 내각 구성에 실패한다면? 그래서 다시 총선이 치르게 된다면? 네타냐후는 지지율 상승과 더불어 총리 자리를 그대로 이어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개인 비리 재판에서도 이로울 수 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하지만, 네타냐후에겐 '권력은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하다. 분쟁지역의 '블러드 다이아몬드'처럼 그렇게 군사적 강공책으로 얻은 정치권력은 '피 묻은 권력'이다.

평화보다는 전쟁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여기는 네타냐후의 '피 묻은 생존법' 탓에 죽고 다치는 희생양들은? 팔레스타인 어린이를 포함한 다수의 비무장 민간인들이다. 팔레스타인에선 죽음이 휴지처럼 가볍다고 하지만, 2일장으로 짧게 치러지는 그곳 장례식에서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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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명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kimsphoto@hanmail.net)는 지난 20여 년간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의 분쟁 현장을 취재해 왔습니다.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중앙일보>를 비롯한 국내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국민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22년까지 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했습니다. 저서로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 <오늘의 세계 분쟁> <군대 없는 나라, 전쟁 없는 세상> <시리아전쟁>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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