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백신연구소·과감한 투자' 통해 백신 주권 국가로 가야 한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한국은 지금 '백신 종속 국가'

대한민국은 백신 주권 국가가 아니다. 종속 국가다. 외국에서 개발해 제조한 코로나 백신에 전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맡기고 있다. 이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국민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에서부터 비과학적인 과도한 백신 접종 기피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코로나 확산을 지금보다 더 낮추고 백신 불안을 하루빨리 해소함으로써 정치·사회적 갈등을 끝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우리가 코로나 백신 주권 국가가 되지 못한 것은 코로나 백신을 단기간에 개발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이 약한데다 정부와 민간기업 등이 그 과정이 힘들고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은 백신 개발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한국이 미국이나 선진국 등에 견줘 방역에 성공한 대표적 국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자 이에 몰입돼 백신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도 한 요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반면 코로나 확산으로 엄청난 홍역을 잠시 또는 오랫동안 치른 미국, 영국, 독일, 중국, 러시아, 인도, 이란 등은 자체 코로나 백신 개발에 성공해 자국민 접종은 물론이고 다수 국가들은 코로나 백신을 무기화하거나 국력 과시 내지 국력 확대 수단으로 삼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강대국들이 최근 그런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대표적 국가들이다.

미국, 영국, 독일 등은 대표적 바이오제약 강국들이다. 인도는 백신 생산 세계 기지국으로서 힘을 축적해왔다. 중국과 러시아 등도 국가연구기관 내지 국영기업들이 지닌 백신 개발 능력이 코로나 시대를 맞아 입증됨으로써 강대국의 저력을 과시했다. 제약 강국이면서 코로나 백신 주권국가에 들지 못한 선진국으로는 프랑스, 스위스, 일본 등이 꼽히고 있다.

바이오제약 약국(弱國), 코로나 삼중고에 시달려

우리나라는 바이오 강국 내지는 바이오 강국 진입을 장담했지만 적어도 코로나 백신 개발과 관련해서는 앞서 언급한 국가들에 견줘 한 수 아니 두세 수 아래임이 드러났다. 우리가 세계 선두권의 코로나 진단 시약과 치료제 개발 성공 등으로 계속해서 코로나 방역 모범 선두 국가를 유지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허상임이 입증된 것이다.

백신 주권 국가 대열에 끼지 못하고 백신 확보도 시의적절 하게 하지도 못하자 내부 갈등이 불거져 계속 증폭되고 있다. 백신 접종이 선진국에 견줘 크게 뒤처지자 그 책임론을 두고 정치적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또 우리가 초기에 주로 접종하거나 상반기에 접종키로 돼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과잉 보도와 백신 불신 부추기기 공세로 코로나 전쟁의 심리전에서도 대표적 패배 국가로 낙인이 찍히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코로나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첫째가 백신 가뭄 내지 백신 보릿고개로 인한 국민 불안과 갈등 증폭이다. 백심 가뭄은 일시적인 현상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백신 접종 일정이 바뀌고 3분기 대상이 2분기로 갑자기 당겨지는가 하면 2분기 접종 대상 가운데 계획된 시기에 맞지 못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음을 미리 누차 강조했더라면 반발이 적었을 텐데 정부는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을 해온 터라 정부의 백신 전략과 백신 관련 메시지 전체가 통째로 불신을 사고 있다. 백신 주권 국가가 아닌 이상 자국의 백신 공급·확보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음에도 정부는 그런 메시지를 던질 경우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을 염려해 만약에 대비한 소통을 게을리 했다. 그리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문재인 정권의 악재가 되고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화이자사(社)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43만6천회분(21만8천명분)이 5일 국내에 들어왔다. 이날 새벽 인천국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관계자들이 UPS 화물항공기에서 백신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심리전 실패, 효과적 대응 매뉴얼 만들어야

대표적으로 최근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은 경찰관이 잇달아 접종 얼마 뒤 의식을 잃고 쓰러지거나 반신마비가 되는 사례가 나타나 경찰 집단의 불안과 불만, 나아가 일반 시민으로까지 그것이 증폭되고 있는 것을 꼽을 수 있다. 심지어는 백신 접종 일정이 바뀌어 시기가 앞당겨지지만 않았더라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접종 일정 변경이 그 사건. 즉 경찰관의 중증 마비 발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다. 경찰관의 사례는 현재로서는 그 인과관계가 확실히 밝혀진 바도 없다. 백신 접종과 중증 발생 내지 사망은 백신의 종류와 관계없이 매우 드문 희귀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신 접종 후 사망 또는 중증 증상이 생긴 사람과 그 가족들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있었던 일이 백신 접종이었기 때문에 그 원인을 오롯이 그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설혹 그것이 사실과 다르거나 사실일 가능성이 낮더라도 말이다.

따라서 이는 백신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과거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경우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사전·사후 소통을 강화하고 백신 접종과의 인과성이 확실치 않더라도 최대한 문제가 발생한 쪽에 대해 국가 보상 내지는 구제를 해주는 것이 갈등 해결에 도움을 준다. 이들의 아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져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고통은 심리전 실패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코로나 전쟁에서 심리전이 매우 중요함을 깨닫고 이를 위해 방역 당국뿐만 아니라 정치인, 언론 등이 불필요한 불안과 화를 돋우지 않도록 언행을 주의하고 효과적 대응 심리전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 언론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사실 또는 진실인지의 여부에 개의치 않고 일단 보도부터 하고 보는 행태이다. 지난해 가을 독감 백신 접종 때도 그 고질병이 도졌다.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보도를 수없이 했지만 실제 독감 백신 접종 때문에 숨진 이가 과연 있었는가.

백신 부작용 과잉 보도, 그래도 여당의 소화제 사망 비교는 '쫌'…

코로나 백신 접종이 지난 3월부터 본격화한 뒤에도 단절해야 할 우리 언론의 경마중계 식 고질병 보도가 계속되고 있다. 백신 접종 후 중증 반응 신고와 사망 신고를 시도 때도 없이 다룸으로써 여기에 매일 노출된 일반 국민은 은연중에 백신 부작용이 상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는 백신 불신으로 이어져 접종 기피 현상으로 나타난다. 최근 백신 접종을 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밝힌 사람이 줄어 들기는커녕 외려 늘고 있어 백신 접종 목표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여당 대변인이 백신 부작용이 언론에 의해 과도하게 증폭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백신 부작용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소화제 복용하고도 사망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말해 백신 심리전 실패로 생긴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소화제 사망은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니거니와 이러한 비교는 십중팔구 소통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삼가야 한다. 위험소통의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언론이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보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언론은 일어난 일 가운데 가치가 있고 방역에 도움이 되는 것을 잘 판단해 다루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야 언론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 언론도 백신 부작용 보도와 관련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방역 모범국 나르시시즘과 미래 통찰력 결핍으로 고초 겪어

끝으로 백신 주권 국가로 하루빨리 발돋움하기 위해 국가의 역랑을 총동원해야 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백신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 가운데 가장 큰 요인은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을 자체 개발하지 못한 데서 오고 있다.

백신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국면을 전환화고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란 점이 코로나 유행 초기부터 강조됐다. 하지만 우리는 방역 모범국가란 나르시시즘에 도취돼,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통찰력 결핍 때문에 지금의 고초를 겪고 있다.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반환점까지는 선두권을 잘 유지하다가 후반전 들어 급격히 체력이 달려 하위권으로 밀려난 것도 모자라 아예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일어나 뛰어야 한다. 여기에 국민이 응원하지 않고 야유를 보내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면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뛸 생각이 들지 않고 맥이 풀리게 된다. 대한민국이란 주자가 무사히 골인지점에 도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뒤처진 순위를 많이 회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박수를 보내야 한다.

국립백신연구소 세워 수조 원 쏟아부어 백신주권 국가 달성해야

백신 주권 국가의 목표를 세워 이를 이루는 것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 계속 나와 확산하고 있는 여러 종류의 변이형 바이러스는 앞으로 우리가 매년 새로운 코로나 백신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여기에다 백신의 효과가 1년을 넘지 못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는 백신 주권 국가가 지금, 그리고 최대한 이른 미래에 우리가 달성해야 할 목표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먼저 왜 우리는 코로나 백신 개발 국가 대열에 끼지 못했는가를 톺아보고 성찰해야 한다. 그리고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가 백신 주권 국가를 우리에게 안겨줄 수 있는가를 냉철하고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만약에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새로운 국립백신연구소를 만들어 여기에다 수조 원 내지 수십조 원을 퍼붓는 과감한 도전으로 대한민국이 백신주권국가임을 세계만방에 고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의 결단과 국민의 성원과 지지만이 대한민국을 백신주권 국가로 환골탈태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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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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