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사위령탑'. 한 때 한국 석탄 생산의 메카였던 강원도 태백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탑이 하나 있다. 황지자유시장 건너편 산 쪽에 있는 이 탑은 나 역시 존재 자체를 몰랐다가, 1980년 봄에 있었던 광부들의 항쟁인 사북 사태 자료를 찾아 갔던 태백 석탄박물관의 전시물에서 그 존재를 알게 됐다. 60년대부터 탑이 만들어진 1975년까지 석탄 채굴 중 목숨을 잃은 1703명의 혼을 기리는 이 탑은 그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국립묘지도 아닌데, '전사'라니?
박정희 정부는 1973년 국제 석유 값이 급등한 오일쇼크로 어려움에 처하자,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석탄 증산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정부의 생산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무리하게 일하던 광부들의 희생이 늘어나자, 박정희는 태백을 방문했다. 그는 광부들을 산업전사라고 추서하고 채굴 중 사망한 광부들을 추모하는 탑을 세우라며 '산업전사위령탑'이라는 휘호를 써줬다.
깜깜한 갱도 속에서 죽어간 광부들을 위해 묵념을 드리고 탑의 뒷면으로 돌아가자, 이은상이 썼다는 비문이 나타났다. 아, 여기까지 와서 '친독재 어용지식인'으로 악명이 높은 이은상을 만나다니! 그는 4‧19혁명 직전 있었던 1960년 대통령선거에 이승만 지지연설을 하고 다녔고, 자신의 고향인 마산에서 이승만의 3‧15부정선거 반대 시위가 일어나자 "무모한 흥분"이리고 비판했다.
5‧16 쿠데타 이후에는 민주공화당 창당 선언문을 써줬고 10월 유신 지지선언을 발표했으며, 전두환이 광주학살로 대통령이 되자 이를 지지하는 글을 쓴 '곡학아세의 전형', 요새 표현으로 하면, '최고의 문레기(문필가 쓰레기)'이다. 그 결과, 마산역 앞 광장에 있는 그의 가고파 시비가 페인트 세례를 당하고 그 옆에 그를 규탄하는 대응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강원도는 (…) 석탄생산량이 전국의 70%를 점령하고 있어 국민경제의 보고가 되었다. 그러므로 4백 개 광산 5만 명을 헤아리는 종업원들은 영광된 사명을 어깨에 메고 있는 산업전사들이다. (…) 어두운 땅속 깊은 곳에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 피땀 흘려 일하는 이들이라 전쟁터에서 싸우는 전사들과 다를 것이 없다. 하물며 거기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이야 말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제물이라 순국의 뜻이 있는 것이니…"
역시 이은상답게 비문을 박정희 입맛에 딱 맞게 써줬지만, 그의 부끄러운 행각을 고려하면 그의 추모 글은 죽은 광부들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모독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이 이름 없는 탑은 한국 현대사의 두 측면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 번째 이유는 이 탑이 우리의 산업재해의 현실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 탑이 노동자들, 나아가 산업재해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 그리고 우리의 시각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탑을 관리하고 있는 폐광지역 순직 산업전사 유가족협의회에 따르면, 1973년의 307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기는 했지만, 연평균으로 1970년대는 148명이, 1980년대는 121명이, 석탄산업을 줄이기 시작한 1990년대에는 38명이, 2000년대는 6명이 죽어,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무려 4104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산업재해가 탄광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노동시간 1위에 산업재해사망율도 줄곧 1위를 차지해 왔다. 일하다 죽을 확률, 일하러 출근했다가 시체로 돌아올 확률이 제일 높은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문재인 정부 하인 2018년에도 2142명이 생산현장에서 목숨을 잃었다. 1년에 세월호 희생자의 7배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코로나19 희생자의 8배에 달하는 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죽어나가고 있다. 태백탄광은 '땅 속의 세월호'였고, 얼마 전 물류창고를 짓다가 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타죽은 이천의 건설현장 등 우리의 생산현장은 '땅 위의 세월호'다. 매년 작업현장에서 세월호 참사가 7건씩 일어나고 있다.
보수 세력은 "대한민국은 신생국 중 유일하게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룬 나라"라고 자랑한다. 맞다. 한국은 유일하지는 않지만 대만과 함께 신생국 중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모두 이룬 '유이국'이다. 그러나 경제발전 뒤에는 이 같은 최장의 근로시간과 산업재해 사망, 나아가 자살률 세계 1위, 청소년 행복지수 최하위 등의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다.
노동자들을 단순히 이윤의 수단으로 생각하며 이들의 안전을 경시하는 기업문화, 나아가 노동자들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장에 나온 한 인간이자 한 가족의 가장, 딸 아들로 보지 않고 경제 발전이라는 전쟁터에서 전투를 벌이는 '전사(산업전사)'로 생각하는 정부의 태도가 이 같은 부끄러운 기록을 만들어 온 것이다. 산업재해 희생자들 역시 전쟁을 하다보면 불가피하게 생길 수밖에 없는 '순국 전사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전사위령탑'이라는 탑의 이름이 이 같은 대한민국 정부의 노동자관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다.
정부가 할 일은 노동자들을 '산업전사'라고 부르고 산업재해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업으로 하여금 근무환경을 개선하도록 강제하여 산업재해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그간 박정희 정권 등 군사독재 정부는 이 같은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보다는 경제 발전이라는 전투에 승리해야 한다는 일념에서 광부들을 사지로 내보내고 목표량을 채우라고 압박만 했다. 따라서 채굴 중 목숨을 잃은 광부들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라는 폐광지역 순직 산업전사 유가족협의회의 요구는 상당한 타당성이 있다. 아니 국가는 이들에게 국가의 직무유기에 대해 손해배상을 지불해야 맞는 이야기이다.
안타까운 것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등 소위 '민주정부'(정확한 표현은 '자유주의정권')에서도 산업재해는 크게 줄어든 것 같지 않고,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에 그리 적극적이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아니, 이를 넘어서 일반 시민들도 동료시민들의 목숨을 중히 여기고 이들의 부당한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슬퍼하면서도 작업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들의 목숨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이들의 죽음에는 그리 분노하지 않는 것 같다.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어린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죽었다. '구의역 김군' 사건이다. 이로부터 2년 뒤인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24살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이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또 2년 뒤인 2020년, 전국이 코로나19로 난리가 난 가운데 이천의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건설현장에서 대형사고가 일어나 38명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 대처에 있어서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것 역시 반쪽 이야기일 따름이다. 세계가 우리의 방역을 칭송하고 문재인 정부가 이를 자랑하고 있을 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건설현장에 나왔다가 죽어간 이들 노동자에게 안전을 지켜줄 국가는 여전히 없었다.
2018년 비극적인 죽음을 택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촛불 승리 직후인 2017년 4월, 노동자들의 안전을 경시하는 우리의 기업과 정부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중대산업재해에 책임이 있는 기업과 정부 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얼마 뒤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됐지만, 줄곧 계류되다 20대 국회가 종료된 2020년 5월말 자동 폐기됐다.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김용균씨가 희생된 뒤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할 때도 이 부분은 빠졌고,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부가 건설안전을 총괄하는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나서면서도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침묵했다.
결국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2021년 1월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와 김용균의 어머니 등 산업재해희생자 유가족들의 생명을 건 단식농성에 드디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이 법은 5인 이하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한 '누더기법'으로 그 실효성이 의심받고 있다.
우리는 계속 물어야 한다. 노동자의 목숨은 시민의 목숨과 다른, 하찮은 것인가? 다른 건 몰라도, 생계를 벌기 위해 출근했다가 저녁에 싸늘한 시체로 돌아오는 일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라고 이야기하지만 자본이 먼저이고 사람은, 노동자는 먼지에 불과한 것 아닌가?
태백의 이름 없는 이 산업전사위령탑은 노동자들의 인권, 생명권을 생각하기 위해 한국의 기업인들, 정치인들, 노동자들이 한 번씩 들러야하는 중요한 인권 현장이다. 나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탄광으로 들어갔다가 칠흑같이 어두운 막장에서 쓰러져간 광부들의 한 많은 울음소리와 '순직산업전사를 국가유공자로 지정하라'는 현수막을 뒤로 하고 태백을 떠났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