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내각 국장 조용덕의 반성이었다. 그는 "본위주의를 철저히 타파"하고 "주먹구구식으로, 되는대로 사업하던 그릇된 일 본새와 완전히 결별"하겠다며 철저한 계획에 따라 경제정책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로동신문> 3월 9일).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지상연단' 코너에 경제 간부들의 '반성과 각오' 릴레이를 싣고 있다. 이 릴레이는 제8차 당대회,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 등에 이은 것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의 내각은 성‧중앙기관들 외에 내각 직속기관인 '내각사무국'을 두고 있다. 내각 사무장 김금철(相級) 밑에 제1~3사무국, 대외복무국, 정치국(당기관), 참사실 등이 있다. 내각사무국에서 내각의 당사업을 담당하는 정치국장 이외의 국장들은 총리와 부총리들의 업무를 보좌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용덕은 직무 미상의 국장이다.
내각의 지휘‧통제력 복원으로 계획경제의 잠재력 회복 지향
같은 시기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했다(3월 17일 자). 제8차 당대회에서 강조된 '경제혁신' 과업은 국가의 통일적 지도‧관리의 체계와 질서를 복원해 계획경제의 발전 잠재력을 되찾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조선신보>가 북한 정부의 견해를 대변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국가의 통일적 지도‧관리 체계와 질서의 복원'은 다시 말하면 내각의 지휘‧통제력의 복원이다. 그렇게 하면 계획경제의 '발전 잠재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북한 지도부의 시각을 재삼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시점에서 내각의 지휘‧통제력의 복원을 '경제혁신'의 길로 인식한다는 것은 인상적이다.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북한의 '경제혁신'이라면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로 대표되는 '우리식 경제관리방법' 등에 주목해왔다. 거의 예외없이 경제관리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증후는 2020년 12월 5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제14기 제12차 전원회의에서 수정 보충된 《기업소법》에서 예측됐던 일이다. 수정 보충에 두 가지가 반영됐다. 하나는 국가의 통일적 지도이다.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 밑에 생산과 경영활동을 사회주의적 원칙에 맞게 진행"해야 하는 문제가 명시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의 경영자율권이 커지는 방향에 '전복(顚覆)'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기업의 경영자율권이 커지더라도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와 '사회주의원칙'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절약의 문제다. "기업소를 노력(노동력)절약형, 에네르기(에너지)절약형, 원가절약형, 부지절약형으로 전환시키며 종업원들이 절약정신을 체질화한 애국적 근로자가 되도록" 하는 방향이 명시된 것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내각의 지휘‧통제력의 복원을 '혁신'으로 인식하는 발상에는 계획경제를 견지해야 한다는 원칙적 자세와 이를 정상적으로 운영한다면 '지속가능한' 경제,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이 가능하다는 관점이 내재되어 있다.
필자는 이번 연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제8차 당대회의 사업총화보고에서 경제관리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실에 주목하고 많은 설명을 했는데, 이것은 내각의 지휘‧통제력의 복원을 전제로 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정치담론에서 자주 나타나는 '결합의 원리' '배합의 원리'가 여기에서도 확인된다.
'전환기' 북한경제의 관찰에서 내각 국장 등의 '반성과 각오' 릴레이와 함께 내각의 지휘‧통제력의 복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향후 전개될 북한경제의 다양한 행보 가운데 내각책임제의 강화는 과연 '신의 한수'가 될 것인지가 주목된다.
화상회의로 진행된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
제8차 당대회(1월 5~12일)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2월 8~11일)의 결정 관철을 위한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는 지난 2월 25일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내각전원회의는 "행정경제사업에서 나서는 새롭고 중요한 문제들을 토의 결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사회주의헌법 제127조). 내각전원회의는 지난 2019년에 4차례, 2020년에 3차례 열렸고,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2020년부터 화상회의로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2019년 1월 23일 회의는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에서 제시된 '강령적 과업'과 그 관철을 위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결정'을 토의했다. 같은 해 10월 20일 회의는 김정은 위원장의 저작 《교원들은 당의 교육혁명 방침 관철에서 직업적 혁명가의 본분을 다해나가야 한다》에 제시된 과업 관철, 신년사과업 관철을 위한 3~4분기 사업진행 정형총화와 대책 등을 토의했다.
2020년 2월 1일 회의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2019년 12월 28~31일)에서 제시된 강령적 과업의 관철을 토의했다. 같은 해 6월 27일 회의는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13차 정치국회의 결정(화학공업과 평양시 인민생활 문제) 관철을 토의했다. 10월 19일 회의는 '80일전투'의 부문별 과업을 토의했다.
이번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는 예년의 내각전원회의와는 그 의미가 달랐다. 계획경제의 잠재력을 되살리기 위해 내각의 지휘‧통제력을 복원시켜야 한다는 당의 구상에는 절박함이 있었고, 이제까지 내각책임제‧내각중심제를 강조하던 것과는 총체적으로 달라보였다.
관행에 따라 내각총리 김덕훈이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지도했고 박정근‧전현철 부총리 등 내각 간부들이 참석했다. 내각 직속기관과 성(省)기관 간부들, 도‧시‧군 인민위원장들, 농업지도기관과 중요 공장‧기업소 간부들이 회의를 방청했다(이하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에 관한 내용은 <조선중앙통신> 2월 26일 자를 인용 보도한 <연합뉴스>‧<통일뉴스> 같은 일자, <로동신문> 2월 26일 자를 인용 보도한 <자주시보> 같은 일자 등 참조).
계획 작성에서 소극적, 보신주의적 경향 극복
내각전원회의의 보고자는 박정근 내각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이었다. 그의 보고는 다섯 가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첫째, 올해 계획 작성에서 벌어진 '소극적‧보신주의적인 경향'의 원인을 분석 총화 했다. '소극적‧보신주의적인 경향'은 제8차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이미 집중적으로 성토(聲討)된 바 있다.
당대회에서 채택된 새로운 5개년계획(2021~25년)은 대북제재, 코로나19 등의 어려운 외부환경 하에서 수행된다. 어려움을 돌파하려면 첫해부터 자력갱생의 주체역량으로 무장해야 했는데 그 첫 단추인 계획 작성에서 안이했다는 것이다.
정치담론으로서의 보신주의는 1960년대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김일성 당위원장은 1965년 9월 23일 국가계획위원회 당총회에서 한 연설에서 "국가계획위원회 일군들에게는 혁명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 책임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 현상유지나 하려는 보신주의적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계획일군들 속에 아직 남아있는 당 정책 집행에서의 형식주의적이고 무책임한 태도와 보신주의와 같은 온갖 낡은 사상의 표현을 반대하여 강하게 투쟁하여야 하겠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1968년 6월 14일 함경북도 인텔리들 앞에서 한 연설에서 인텔리들의 보신주의를 비판했고, 보신주의 담론은 그 뒤에 경제부문에서 자주 등장했다.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에 앞서 <로동신문>은 2월 20일 자 사설에서 패배주의‧보신주의에서 벗어나 실무력을 갖출 것을 경제 간부들에게 촉구했다. 사설은 "경제법칙과 원리를 무시하는 현상, 역량을 집중하지 않고 여기저기 널어놓는 현상, 과학적 분석에 기초하지 않고 낭비와 혼란을 가져오는 현상 등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연합뉴스>, 2월 27일자). 즉 경제법칙과 원리의 무시, 역량 분산, 비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낭비와 혼란 등이 경제 간부들의 당면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계획경제에서는 내각 등에서 일하는 경제 간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간부들의 책임감과 열정, 업무장악력과 추진력 등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에서도 정부 관료들은 중요하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는 이들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경제관리와 경영의 세계에서는 '집행력'이 중요하다. 집행력을 발휘하려면 경제법칙과 원리에 대한 이해, 역량 집중, 과학적인 분석 등 기본실력이 뒤따라줘야 한다. <로동신문> 사설은 이 점을 지적했던 것이었다. 박 부총리가 지적한 '소극적‧보신주의적인 경향'은 실제로 기본실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현상일 수 있다.
올해 계획의 무조건 수행 대책, '느슨해진 시스템' 바로잡기
둘째, 올해 경제계획을 무조건 수행하기 위한 대책들을 제기했다. 키워드는 '무조건 수행'과 '대책'이었다. 박 부총리는 "성, 중앙기관들과 도, 시, 군 인민위원회, 기업체들이 내각책임제, 내각중심제의 요구에 맞게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체계를 확립하며 자기의 임무와 권한, 사업한계를 명백히 하고 사업하는 제도와 질서를 세울 데 대한 문제"를 강조했다.
이 한 문장에 경제주체들(성‧중앙기관들과 도‧시‧군 인민위원회, 기업체)의 과업이 집중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①내각책임제‧내각중심제를 확고하게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근간이다. ②는 앞에서 보았듯이 현 시기에 '경제혁신' 과업으로 이해된다. ③각 부문‧단위에서 임무와 권한, 사업한계를 명백히 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느슨해진 시스템'을 바로 잡는 것이 긴급한 현안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첫해 계획의 '무조건 수행'과 '대책'은 여의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 박 부총리의 문제의식이었다. '느슨해진 시스템'은 1995년부터 3년간 지속된 '고난의 행군'의 후유증이 오래 남아 있음을 말해준다. 화상회의에 참가한 모든 관계자들이 '척 그러면 울 너머 호박 떨어지는 줄 알라'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것은 '고난의 행군' 이래로 일부 부문‧단위들이 자생력(자력갱생)의 확대과정에서 본연의 임무에 소홀히 하고, 권한(자율성)을 제멋대로 확대하여 사업 한계를 넘나드는 오류가 있었음을 문제 삼은 것이었다.
공장‧기업소 등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자체로 근로자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경제질서에 혼란이 생겼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북한 경제당국은 이를 '제도와 질서'의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올해부터 '느슨해진 시스템'을 다잡기 위한 여러 가지 변화가 예견된다.
경제혁신을 위한 간부들의 재교육 붐
박정근 부총리는 계획 수행을 위해서는 경제 간부들이 경제사업에서 새로운 혁신을 가져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변화된 여건을 따라잡을 수 있는 기본실력이 있어야 한다. 금년 들어 경제 간부들을 위한 제1기 원격재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재교육은 김책공업종합대학이 운영하는 원격교육 홈페이지 '리상'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간부들은 6개월간 강의를 듣고 시험도 보며 그 결과를 평가받게 된다.
경제 간부들의 재교육 내용에 △과학기술발전 추세, 변화하는 주‧객관적 조건에 맞는 '경제관리방법 개선'에 필요한 지식 △경제실무 자질 향상 프로그램 △생산‧건설에서의 혁신과 창조력 배양 교육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인민경제대학‧김책공업종합대학‧정준택원산경제대학의 교육자들이 재교육 강의안을 구성했다고 한다. 이 강의안은 당의 경제정책 방향과 현실적 조건, 세계 경제발전 추세를 반영하여 필요할 때마다 갱신된다고 한다(경제 간부들에 대한 원격재교육은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 2월 27일 자, <연합뉴스> 같은 일자).
계획 수행의 강력한 수단은 과학기술발전
셋째, 올해 계획 수행을 위한 강력한 수단은 과학기술발전이라는 것이다. 박 부총리는 "5개년 계획 기간에 달성하여야 할 각 부문의 과학기술발전 목표들을 전략적 집중성의 원칙에서 현실성 있게 세우고 그 수행을 완강하게 추진하며 과학기술의 위력으로 생산 정상화와 개건 현대화, 원료, 자재의 국산화, 재자원화를 적극 실현할 것"을 언급했다. 과학기술에 의한 자력갱생의 실천을 거듭 촉구한 것이었다.
이 발언에 몇 가지 메시지가 녹아 있다. ①5개년계획의 첫해에 각 부문의 과학기술발전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②각 부문의 목표 수립에서 '전략적 집중성'의 원칙과 '현실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략적 집중성은 국가적 투자를 화학‧금속공업에 집중하는 동시에 농업과 경공업의 발전에 주력하기로 한 제8차 당대회의 전략적 방향에 맞게 이 부문의 과학기술발전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현실성은 각 부문의 과학기술발전 목표야말로 '허풍'(과장과 허위)이 있어서는 안 되고 현실여건에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③과학기술발전 목표가 수립되면 첫해부터 그 실행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④생산 정상화와 개건(改建) 현대화가 중요하며, 그 과업을 과학기술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발전에 의한 생산 정상화와 개건 현대화는 김정일시대부터 강조되었던 북한경제의 재건을 향한 기본과제이다. 박 부총리는 보고에서 기업체에서 생산 정상화, 협동농장에서 생산토대 구축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과업을 제시했다.
⑤원료‧자재의 국산화‧재자원화가 중요하며, 그 과업을 과학기술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부총리의 보고에서는 원료‧자재 국산화를 위한 '연차별 계획'을 확정해야 한다는 과업이 제시됐다. 기업체에서의 생산 정상화, 협동농장에서의 생산토대 구축, 원료‧자재 국산화를 위한 '연차별 계획' 계획 등은 북한경제가 당면한 긴급 현안이라 할 수 있다.
원료‧자재의 재(再)자원화와 관련하여 <조선신보>는 지난 2월 28일 국가과학원 환경공학연구소, 김일성종합대학 화학부, 김책공업종합대학 열공학부, 경공업성 등에서 폐기폐설물의 새로운 가공처리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재자원화 방법으로 △파철, 파고무, 파지, 파유리 등을 재생하여 새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 △회수해 가공 처리한 물질을 원료로 하여 새로운 종류의 제품을 개발하는 방법 △전기‧메탄가스와 같이 에너지 형태로 전환하는 방법 등을 중시하고 있다.
북한은 《재자원화법》을 제정했고(2020년 4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3차 회의), 내각 경공업성에 재자원화국을 신설했다(이상 <통일뉴스> 2021년 3월 2일 자). 이에 따라 원료‧자재의 재자원화가 적극적인 실행 단계에 접어들게 된 것으로 관측된다.
단위특수화‧본위주의와 투쟁하는 한해
넷째, 단위특수화‧본위주의와 투쟁하는 한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부총리는 "국가의 법과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는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투쟁을 강도 높이 벌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이 '전쟁'에 당권‧법권‧군권을 총동원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특수기관들의 노른자위 기업들이 내각 관리 아래로 들어가면 '지속가능한' 경제의 실행에 상당히 도움될 것으로 북한 지도부는 판단한 것 같다(단위특수화‧본위주의와의 전쟁에 대해서는 앞에서 다루었다).
계획화 방법의 완성, 기업체의 생산‧경영활동의 여건 보장
다섯째, 계획화 방법을 끊임없이 완성해야 하며 기업체들의 생산‧경영활동에 도움이 되는 조건과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박 부총리는 "변천되는 현실과 생산력 발전수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르는 계획화 방법을 부단히 완성하며 기업체들이 생산과 경영활동을 독자적으로, 주동적으로 진행하면서 창발성을 최대한 발휘하고 환경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경제적 조건과 법률적 환경을 보장하기 위한 대책을 보다 강력하게 세울 데 대한 과업들"을 보고에서 제기했다.
이 발언에는 경제관리 개선과 사업체계 변화의 의지가 전반적으로 담겨 있다. ①계획화 방법을 지속적으로 완성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②변천되는 현실, 생산력 발전수준, 과학기술의 발전 등에 따라 계획화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변천되는 현실과 생산력 발전수준 등을 강조한 것은 계획화에서 이를 무시하고 '주관주의적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생산력 발전수준이야말로 계획경제의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척도라 할 수 있다.
생산력 발전수준도 시시각각 변화하며, 이 변화를 계획화 방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읽을 수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서 해결하는 다기(多岐)하고 다양(多樣)한 변수를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는 계획화 방법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③기업체들은 생산‧경영활동을 독자적으로, 주동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자율경영). ④기업체들의 창의성 발휘와 환경변화 대응을 위해 경제적 조건과 법률적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적 환경'의 보장은 기업소법 등 관련 법령의 수정 보충으로 나타날 것이다.
'경제적 조건'은 국가-기업체, 기업체-기업체, 기업체 내부 등의 관계라든가 원자재 공급조건, 생산재‧중간재‧상품의 가격조건 등에서 기업체들의 생산‧경영활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다양한 변화를 모색할 것이다. ⑤강력한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책 수립과 집행은 5개년계획 기간 내내 지속될 것이다.
토론자들: 금속‧화학공업 지원 강화, 경영관리‧기업관리 개선 등 강조
박정근 부총리의 보고에 이어 토론이 있었다. 토론에는 김광남 김책제철연합기업소 지배인, 마종선 화학공업상, 리성학 내각부총리, 최룡길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주철규 내각부총리 겸 농업상 등이 나섰다. 이들의 토론을 간추리면 이런 내용이었다.
△금속‧화학공업 부문의 공장‧기업소들에게 필요한 노동력‧설비‧자재‧자금을 집중적으로 대준다. △국내 연료로 철강재(주체철)를 생산하기 위한 기술적 문제들을 해결한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의 요구에 맞게 경영관리‧기업관리를 개선한다. △유휴 자재와 부산물‧폐기물을 재자원화한다.
토론은 박정근 부총리의 보고를 보충하는 성격이었다. 토론의 방향은 제8차 당대회 이전에도 있었던 주제들이지만 해당 부문의 책임자들이 언급한 것이므로 주목을 요한다. 금속공업 부문에서 산업현장(김책제철)의 지배인이 토론자로 나섰고, 화학공업 부문과 경공업‧농업 부문, 국가계획 부문 등은 내각 관료들이 토론했다. 경공업(리성학 부총리)과 농업(주철규 부총리)의 토론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데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는 행사를 마치기 전에 △내각이 나라의 경제사령부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점 △모든 경제 간부들이 새로운 5개년계획 수행에서 사회주의경제관리 개선과 과학기술발전의 촉진을 근본 방도로 삼을 것이라는 점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투쟁에서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갈 것이라는 점 등을 재확인했다. 세 가지에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의 기본 방향이 함축되어 있다.
북한의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를 다루면서 그들이 디지털 전환을 비롯한 세계경제의 구조 조정에 속도감 있게, 순발력 있게, 탄력성 있게 대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경제에서는 일단 수립된 계획은 변경되기 어려운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며, 계획경제로 굳어진 정부‧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기 어려우며, 한 부문‧단위에서의 조정(구조 조정 등)이 다른 부문‧단위에 곧바로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내각 성‧중앙기관들과 기관‧기업소‧단체들이 서로 책임을 떠밀고 그 결과 내각책임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소지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계획경제는 전략적 노선과 정책의 통일, 명령에 의한 일사불란한 움직임, 국가투자의 집중에 의한 확대재생산 등의 장점을 갖고 있다. 북한이 산업구조 조정과 경제사업 체계 및 사업방식의 전환, 재정‧금융‧가격‧원가‧수익성 등 경제적 공간(槓杆, 경제단위의 경영활동을 계산‧통제‧자극하기 위한 수단)들의 효율적 운영 등 전반적인 경제관리 개선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또한 사회주의적 분배제도가 잘 운영됨으로써 생산자대중이 생산력 증대를 자신의 일로 여기게 된다면 각 부문‧단위들에서 생산력은 증대되고 분배 몫은 커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을 고려한다면 '전환기' 북한경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계획경제의 일반적 측면과 계획화사업에서의 변화를 함께 읽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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