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권력기관'의 이권 독점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2021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3)

단위특수화‧본위주의와의 전쟁

김정은 총비서는 제8차 당대회에 이어 전원회의에서도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 문제를 다뤘다. 그는 전당적‧전국가적‧전사회적으로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투쟁을 강도 높게 전개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가 '개인'들이 저지르는 반당적‧반인민적 행위인데 비해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는 '부문‧단체'의 모자를 쓰고 자행되는 더 엄중한 '반당적‧반국가적‧반인민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당의 결정지시 집행을 태공하는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 현상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으며 당권, 법권, 군권을 발동하여 단호히 쳐갈겨야 한다"고 거친 언사를 사용했다.

당권(黨權)을 발동하는 주체로 추정되는 부서는 △당원들의 조직생활을 관장하는 조직지도부 △국가기관들인 국방성‧국가보위성‧사회안전성을 지도하는 군정지도부 △당규율 위반을 담당하는 규율조사부 △사법‧검찰부문(중앙검찰소, 중앙재판소,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을 지도하는 법무부 등이다(이상 당중앙위원회 소속).

또한 제8차 당대회의 개정 규약을 통해 권능이 높아진 당중앙검사위원회도 당권 발동의 주체로서, 당중앙의 유일적 영도 실현에 장애를 주는 당규율 위반행위들에 대한 감독조사, 당규율문제 심의, 신소청원처리사업 등의 업무를 수행해나갈 것이다.

법권(法權)을 실행하는 국가기관들에는 중앙검찰소와 도‧시 검찰소들,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내각 국가검열위원회 등이 있다. 국가보위성과 사회안전성의 경우 법권을 행사하는 국가기관이면서 동시에 '단위특수화'의 위험이 있는 투쟁대상이 될 수 있다. 과거에 존재한 적이 있는 '사회주의법무생활지도위원회'와 유사하지만 범법행위에 대한 범국가적 통제기관의 성격을 지닌 새로운 기구를 국무위원회 직속기관으로 설치할 가능성도 있다.

군권(軍權)을 발동하는 주체로는 △군인들의 조직정치생활을 담당하는 인민군 총정치국 및 그 산하의 검열부 △인민군 총참모부의 정치국 △보위국 △국방성의 군사검찰국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당권‧법권‧군권이 일시에 발동된 것은 북한의 당‧국가‧군대의 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나흘간의 일정 끝에 지난 2월 11일 종료됐다고 조선중앙TV가 12일 보도했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이번 전원회의에서 내각이 설정한 올해 경제목표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당 경제부장을 한달 만에 교체했다. 연단에 선 김 총비서가 힘주어 이야기하듯이 몸을 편 채로 오른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와의 전쟁의 배경

북한에서 '본위주의(本位主義)'는 오랜 정치적 기원을 갖고 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이던 김일성은 1946년 7월 7일 「철도종업원들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서 철도종업원들이 '노동생산능률을 높이기 위한 경쟁운동'을 전개하지 않는 것을 거론하며 "기관본위주의적 경향과 관료주의적 잔재가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기관본위주의에 대한 첫 언급이었다. <김일성저작집>에 관료주의와 본위주의에 대한 비판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러한 폐단은 질긴 것이었다.

조선로동당과 북한 정부는 수십 년간 관료주의와 기관‧지방 본위주의를 청산하려고 노력해왔지만, 본위주의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옛말처럼 거의 사회적 본성으로 굳어져 내려왔다. 그러던 중 1995년부터의 '고난의 행군'은 본위주의를 심화시켰다.

처절한 경제난 속에서 인민들은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로 내몰렸고 각 부문‧단위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어야 했다. '고난의 행군'은 1997년에 끝났지만 일심단결은 하루아침에 회복되지 못했고 각자도생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기관‧기업소들의 본위주의는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지금 시기에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가 크게 문제시된 것은 이것이 전반적인 국가이익에 심각한 해가 되고 있으며, 특히 그 기관‧기업소들의 연관단위와의 '유기적 연계와 협동'에 장애를 조성하기 있기 때문이다. 특수기관들이 운영하는 공장‧기업소와 무역회사들이 내각의 관할 범위를 벗어난 것도 화근거리였다.

<로동신문>은 지난 2020년 2월 11일자 '오늘의 정면돌파전에서 주되는 투쟁대상'이라는 기사에서 "본위주의와 특수화가 나라의 전반적 이익을 해치고 국력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며 "개별적인 단위들이 국가 앞에 지닌 임무에 성실하지 못하면 연관단위들이 주저앉게 되고 나중에는 나라가 쇠약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만일 특수화의 모자를 쓰고 국가적 이익은 안중에 없이 자기 단위의 협소한 당면이익만을 추구한다면 나라의 전반적이며 정상적인 발전에 엄중한 후과를 미치게 된다"고 덧붙였다(<통일뉴스>, 같은 일자).

이 무렵부터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의 문제점에 관한 보고가 중앙당에 쇄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가운데는 이를 그냥 두고서는 내각책임제‧내각중심제가 실질적으로 실행되기 어렵다는 보고도 있었을 것이다.

김 총비서에 따르면 당중앙위원회는 단위특수화‧본위주의에 대하여 세도와 관료주의, 부정부패행위와 다를 바 없는 '혁명의 원수', '국가의 적'으로 엄중시하고 '전면적인 전쟁'을 벌리기로 했다고 한다. 엄청난 사정(司正) 바람을 예고했던 것이다.

그는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를 쓸어버리기 위한 전쟁에서 모든 당조직들과 정치기관들, 국가기관들과 전체 인민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투쟁에서의 '인민주체론'은 사회주의헌법에 규정된 신소권과 청원권(제69조), 혁명적 경각성 제고와 국가안전을 위한 투쟁 의무(제85조) 등을 활용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위특수화‧본위주의의 혐의를 받고 있는 기관들은 지금 폭풍우가 밀려들기 시작한 해안가의 모습 같을 것이다.

조용원 조직비서의 서릿발 비판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는 김정은 총비서의 보고에 이어 김덕훈 내각총리, 마종선 화학공업상, 우상철 중앙검찰소장, 조용원 당 비서가 토론에 나섰다.

김덕훈 내각총리는 토론에서 "당이 제시한 정비, 보강전략과 자력갱생을 경제사업의 주선으로 확고히 틀어쥐고 올해 경제사업계획부터 혁신적으로 세우며 경제관리방법을 개선하는데서 나서는 중심고리들을 적극적으로 대담하게 해결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김 총리는 또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를 실현해나가면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정확히 실시하여 근로자들이 경제관리의 실제적인 주인이 되게 하기 위한 현실성 있는 방법론을 완성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내용상 김 총비서의 보고를 되풀이하고 있지만 내각의 수행 과업을 요약한 것이었다. 마종선 화학공업상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탄소하나화학공업을 비롯한 화학공업 전반을 높은 과학기술적 토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확고한 담보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우상철 중앙검찰소장은 "모든 부문, 모든 기업체들이 당의 경제정책을 철저히 집행하도록 법적 대책을 세울 것"이라면서 "내각의 주도적 역할에 제동을 거는 일체 행위들을 철저히 제어 제압하고 금속, 화학, 전력, 석탄공업부문을 비롯한 중요 공업부문들을 정비 보강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모든 요소들을 찾아 강하게 대책하며 연관단위들에서 협동품 생산보장을 책임적으로 하지 않고서는 배겨내지 못하게 법적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이 '내각의 주도적 역할에 제동을 모든 일체 행위들'에 대하여 통제하겠다는 것이나 생산부문에 대한 법적 통제에 나선다는 것은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상정하기 어렵지만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는 가능한 일로 여겨진다.

조용원 당 조직비서는 그간 나타난 '대표적인 결함'을 열거했다. △경공업부문에서 조건타발을 내세우며 소비품 생산계획을 전반적으로 낮추어 놓은 문제 △건설부문에서 당중앙이 수도 시민들과 약속한 올해 1만세대 살림집 건설목표를 낮추어놓은 문제 △전력공업부문에서 경제건설과 인민생활의 절실한 요구를 외면하고 전력생산계획을 인위적으로 떨구어놓은 문제 △수산부문에서 어로활동을 적극화하여 인민들에게 물고기를 보내줄 잡도리도 하지 않은 문제 등이 그것이었다.

조 비서는 "나타난 결함은 일군들이 극도의 소극성과 보신주의에 사로잡혀 당대회의 결정도, 인민들 앞에 한 서약도 서슴없이 저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절대로 묵과할 수 없는 총비서동지의 사상과 의도를 반대해 나선 반당적, 반인민적 행위로 보아야 한다"고 서릿발처럼 비판했다.

당대회 결정과 인민들과의 서약을 저버린 '경제사업 상의 결함'에 대해 '총비서동지의 사상과 의도를 반대해 나선 반당적, 반인민적 행위'라고까지 했으니 전원회의 참석자들과 화상 방청자들이 얼마나 놀랐을지를 짐작할 수 있다. 당 조직비서의 지위를 이용해 경제사업 상의 규율을 잡으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책임정치'

전원회의에서는 당대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김정은 총비서의 보고가 있은 뒤에 분과별 협의회가 있었다. 공업분과는 조용원 당비서와 김덕훈 내각총리가, 농업분과는 김재룡 당 조직지도부장(전 내각총리)과 리철만 당 농업부장, 주철규 내각부총리 겸 농업상이 지도했다. 경공업분과는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박태성 당비서, 박명순 당 경공업부장, 리성학 내각부총리가, 건설분과는 정상학 당비서와 박훈 내각부총리, 서종진 건설건재공업상이 지도했다.

각 분과에 정치국 상무위원들(최룡해, 조용원, 김국훈)을 배치한 점이 특징적이었다. 전반적으로 '책임정치'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로동신문>은 전원회의 보도(2월 12일자)에서 "초기에 제출되었던 목표들이 전반적으로 갱신되었다"고 밝혔다. 목표의 갱신은 '상향 조정'이 대부분이었고 '허풍' 때문에 비판받은 농업부문은 '하향조정'되었을 것이다.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는 다른 전원회의에 비해 구체적인 결함이 거론되고 개선 방안이 제시된 회의였다. 이후 제1차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를 시발로 북한 전역에서 강습회가 조직되고 있으며 강습회에서는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경제과업에 대한 학습열풍이 불 것이다.

제8차 당대회의 공식문헌을 '당내본'으로 제한한 데 따라 과거의 당대회에 비해 분석에 제한성이 있었는데 북한경제의 '전환기' 방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번 전원회의가 도움이 되었다. 전원회의의 보고와 토론의 공개된 내용을 보면 이번 전원회의 직전까지 올해의 여러 가지 계획숫자들이 검토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통계를 공개하지 않은 데 따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전환기' 경제의 주요 방향과 과업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상당히 공개된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로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의 경제기사들에서 내각의 '경제조정자'로서의 역할 수행, 성‧중앙기관들의 다양한 성과, 공장‧기업소‧협동농장 같은 생산현장에서의 구체적인 성과와 통계숫자 등에 집중하다보면 실물경제의 이해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전환기 북한경제에 대한 이해는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큰 강을 건너는 징검다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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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중소(中蘇)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저서로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남북을 오고간 사람들 : 남의 조직사건과 북의 대남사업>, <박병엽 증언록 1- 조선민주주의인미공화국의 탄생>(공저), <박병엽 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스즈키 마사유키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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