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혁신국가를 지향하다

[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8차대회 (2)

세 가지 지향 2 : 새로운 혁신, 대담한 창조, 부단한 전진

김 총비서는 사업총화보고에서 새로운 방향을 두 가지 제시했다. 하나는 당‧국가의 전반 사업을 △새로운 혁신 △대담한 창조 △부단한 전진을 지향하고 장려하는 쪽으로 확고히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낡은 사업체계와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사업방식‧장애물들을 단호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당중앙위원회 제8기의 중대한 지향은 이민위천‧일심단결‧자력갱생인데 제8기 기간의 또 하나의 지향은 새로운 혁신, 대담한 창조, 부단한 전진이라 할 수 있다. 이 정책 코드들은 따로따로이면서 뒤섞이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혁신'은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 도움이 될 실리주의적인 길을 찾는 일이다. 기존의 것이라도 혁신하면 새 것이 된다. 이를테면 내각책임제는 오래 된 정책 방향이지만 내각이 국가경제의 진정한 '조직자(관리자)'가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하의 기업체의 전략적 기업경영과 협동농장 분조관리제 하의 포전담당책임제에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다. 상업은행의 활성화와 같은 재정은행제도의 혁신은 현재 진행 중이다.

최첨단과학기술의 발전과 산학연 협동의 혁신도 추진 중이다. 국방공업 능력을 민간경제로 전환하는 모티브가 다양한 방법으로 실행된다면 그것은 혁신의 큰 걸음이 될 것이다. 김정은시대의 북한이 '혁신국가'를 지향한다는 것이 외부에서 볼 때 언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지만, 지난 10여 년의 북한동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엄연한 실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대담한 창조'는 계획경제에서 전에 없던 방법론을 찾아내 실행한다거나 산업현장에서 과학기술을 과감하게 도입해 생산성을 급격히 향상시키는 것 등을 포함할 것이다. 세상에 없던 것을 창조하는 일은 첨단과학부문에 집중될 것이지만, 국가적으로 '비상설경제발전위원회'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면 경제발전과 관련한 '창조적' 방안들이 도출될 수도 있다. '부단한 전진'은 '200일전투'나 '만리마속도창조운동' 같은 대중운동을 계속해나가되 실리(實利)주의를 모색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특히 전진은 생산현장에서 계획된 목표의 '추가 달성'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혁신, 대담한 창조, 부단한 전진의 지향은 5개년계획의 수행에 나서는 당‧정 간부들과 생산자대중의 새로운 정신자세를 호소하는 것이기도 하다.

낡은 사업체계와 비효율적 사업방식의 제거

제8차 당대회의 사업총화보고에서 제시된 방향은 북한의 당‧국가‧군대의 모든 간부들에게 현실적인 행동을 요구한다. ①낡은 사업체계의 제거는 경제관리 개선을 비롯한 경제사업체계에 대한 구조 조정을 예고한다. ②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사업방식의 제거는 사업방식과 태도에서 효율과 비효율이 핵심적인 잣대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③장애물의 제거에서는 북한의 지도자들이 여러 장애물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보신주의, 기관본위주의, 관료주의 같은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정치캠페인은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월 12일 8차 당 대회에서 폐회사를 하고 있다. ⓒ로동신문

김 총비서는 사업총화보고에서 위에서 제시한 새로운 방향을 두 가지 실천해야만 '인민들에게 실제적인 복리'를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인민들에게 실제적인 복리'는 말할 것도 없이 이민위천의 과녁이고. '경제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향한다. 이것은 김정일시대에 거둔 정치‧사상강국과 군사강국의 성과에 머물지 말고 경제강국에 진입하려면 무엇보다 인민생활의 '실질적인' 향상을 실현해야 한다는 김정은시대의 '바람'을 보여준다.

그의 발언 가운데 △낡은 사업체계의 제거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사업방식의 제거 △장애물 제거 등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이 '경제개혁'의 움직임으로 설명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개혁'을 거부해왔다는 상식을 받아들이는 게 나을지 모른다. 북한은 '대혁신‧대비약' 같은 표현을 앞세우면서 사회주의적,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에 나서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비전략‧보강전략, 정리정돈과 재편성

김정은 총비서는 제8차 당대회에서 현 단계 당의 경제전략을 '정비전략과 보강전략, 정리정돈과 재편성'으로 집약했다. 경제사업체계와 부문들 사이의 '유기적 연계'를 복구 정비함으로써 자립적 토대를 다지겠다는 것이다. 그는 당대회의 결론에서 '내부적 힘의 전면적 정리정돈과 재편성', 이것에 토대하여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하면서 새로운 전진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것은 2019년 12월 말의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정면돌파전'을 계승하면서도 정비전략과 보강전략, 전면적 정리정돈과 재편성을 정책적 기조로 채택했던 것이다.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과 정면돌파전은 옳았으며 그것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현 시기에 정비전략과 보강전략, 정리정돈과 재편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올해 시작한 5개년계획의 목표는 "국가경제의 현황과 잠재력에 기초하여 지속적인 경제상승과 인민생활의 뚜렷한 개선 향상에로 나아가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포인트는 경제상승과 인민생활 개선이다.

김 총비서는 5개년계획의 중심과업으로 (1)금속‧화학공업을 관건적 고리로 틀어쥐고 투자를 집중할 것 (2)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 생산을 정상화할 것 (3)농업부문의 물질기술적 토대를 강화할 것 (4)경공업부문에 원료‧자재를 원만히 보장해 인민소비품 생산을 늘릴 것 등 네 가지를 제시했다. 중점과업을 이처럼 선명하게 제시한 경우는 드문 일이었다. 북한경제의 '전환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상업부문의 특별한 언급

김 총비서는 사업총화보고에서 주요 경제부문별 현황과 정비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 순서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금속‧화학공업이 첫째였다. 그 뒤를 전력‧석탄‧기계‧채취공업이 이었다. 그 다음으로 임업, 교통운수부문, 건설부문과 건재공업, 체신부문, 상업부문, 국토관리‧생태환경보호‧도시경영사업, 대외경제사업, 관광사업 등의 방향이 제시되었다.

상업부문이 포함된 것이 주목된다. "상업봉사활동 전반에서 국가의 주도적 역할, 조절통제력을 회복하고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사회주의상업의 본태를 살려나간다"는 구절이 나온다. 국가의 조절통제력이 회복되면 국영상점들이 활성화되면서 시장은 상대적으로 일정 기간 축소될 수 있다. 국가의 조절통제력이 회복되지 못하면 국영상점들의 상품이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잘못된 관행은 지속될 우려가 있다.

후자의 경우 시장가격의 폭등을 제어하지 못하는 한편, 반(反)사회주의‧비(非)사회주의적 활동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한 투쟁이 반(反)특권‧반(反)부패 전쟁과 함께 올 한해 북한을 요동치게 할 것이다.

지난해 7월에 상업성 상업과학연구소의 간부들과 연구사들이 "슈퍼마켓 식을 비롯한 소비자들의 편의를 중시하는 선진적이며 다양한 상업활동을 장려하고 인민들이 문명한 상업문화를 누리게 할 데 대해" 간부들과 연구사들이 밤낮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조선중앙방송 2020년 7월 12일자, 통일부, <월간북한동향> 2020년 7월호).

평양아동백화점, 평천구역 미래공업품상점, 서성구역 장경식료품상점, 사동구역 장천상점 등 평양시 안의 상업망들을 전형단위로 꾸리는 사업에서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연구소는 진열대 형상안의 작성과 설비 제작에 나서고 있고 상점설비형태자료집 등을 보급하고 있다. 슈퍼마켓형 상점의 확대를 통해 국영상점에 대한 관심을 높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경제관리 개선'에 5개년계획의 성패 달려

북한의 5개년계획 수행에서 '경제관리 개선'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실제로 경제관리에서 뚜렷한 개선 양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생산자대중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날들의 반복이라고 생각하고 변화를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제8차 당대회의 결론에서 "국가경제발전의 새로운 5개년계획 수행의 성패는 경제관리를 어떻게 개선하는가 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라고 말했던 것에 경제 간부들이나 생산자대중 모두가 귀를 세웠을 것이다.

김 총비서는 2019년 12월 말에 소집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이미 경제관리의 문제점을 매우 심각한 어조로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제사업에 대한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를 실현하고 기업체들의 경영관리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에서 뚜렷한 전진이 없다보니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역할이 강화되지 못하였으며 경제 전반을 정비 보강하고 활성화하여 장성단계로 이행하기 위한 사업에서 심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경제조직자적 역할이 강화되지 못한 것은 내각책임제가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이유를 △경제사업에 대한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의 실현 △기업체들의 경영관리방법의 개선 양 측면에서 '진전이 없다'는 점에서 찾았다. 당시에 이미 '경제 전반의 정비 보강과 활성화'가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것이다.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기억해야

그는 당시에 "선차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는 경제사업체계와 질서를 합리적으로 정돈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다음 과업을 제시했다(이 과업들에는 제8차 당대회의 '원형적인'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내각 차원의 과업>

△경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통일적 지도와 전략적 관리를 실현하기 위한 강한 대책을 세울 것.

△내각은 현존 경제토대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국가재정을 강화하고 생산단위들도 활성화할수 있게 경제작전을 올바로 하고 치밀하게 조직사업을 할 것.

△내각의 통일적 지도와 지휘에서 국가경제의 명맥과 전일성을 고수하기 위한 사업부터 보장할 것.

<경제관리 개선의 과업>

△전반적인 기구체계를 정비하기 위한 혁신적인 대책과 구체적인 방안들에 토대하여 경제관리를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강하게 밀고나갈 것.

△세계가 분초를 다투며 새 기술, 새 제품 개발경쟁을 벌리고 있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경제관리를 개선하는 데서 불필요한 절차와 제도를 정리할 것.

△국가상업체계‧사회주의상업을 시급히 복원하여 사회주의상업의 본태를 고수하면서도 국가의 이익과 인민들의 편리를 다 같이 보장할 수 있게 상업봉사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론을 연구하고 대책을 세울 것.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현실성 있게 실시하는 사업을 잘해나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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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중소(中蘇)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저서로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남북을 오고간 사람들 : 남의 조직사건과 북의 대남사업>, <박병엽 증언록 1- 조선민주주의인미공화국의 탄생>(공저), <박병엽 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스즈키 마사유키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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