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최대 수혜자 김종인의 '마크롱 모델', 한국판은 윤석열?

4.7 재보선 최대 수혜자, '윤석열 타임' 시작되나

정부여당의 참패로 끝난 4.7 재보궐선거 스포트라이트가 오세훈 서울시장, 박형준 부산시장 당선자를 비껴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당적이 없고, 재보선 전면에 나서지도 않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받는 이례적 선거 현상의 연속이다.

문재인 정부 검찰총장의 '계산된 반격'

이번 선거에서 윤 전 총장은 '저비용 고효율' 정치 행보로 몸값 높이기에 성공한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 2일 사전투표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처음으로 언론 앞에 선 자리에서조차 기자들 질문에 묵묵부답을 일관했다. 일정을 미리 알려 언론의 관심을 끌어모았음에도, 별도의 정치적 발언 대신 측근을 통해 "정당인도 아닌 일반인 입장에서 자제함이 상당하다"는 입장만 냈다.

선거라는 민주적 제도에 참여해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소양을 갖춘 '일반인' 모습이 그가 드러내고 싶었던 메시지로 봐도 무방하다.

정교하게 계산된 윤 전 총장의 정치적 행보는 언론 인터뷰 형식으로 주목을 끈 데에서도 확인된다. 지난달 29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4.7 재보선을 "상식과 정의를 되찾는 반격의 출발점"이라고 규정했다.

누가 읽더라도 '공정과 정의' 훼손에 홍역을 앓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대척점에 자신을 위치시킨 발언으로, "반격의 출발점"은 대선 출마에 강한 의지를 시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그를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했던 문 대통령의 언급은 유효성을 잃었다.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시점은 재보선 한 달 여 전인 지난달 4일이다. 그는 사퇴 이유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마지막 책무"를 들었다. 윤 전 총장이 '법치와 민주주의 회복', '상식과 정의'를 정치 브랜드로 내세우자 정치 지형이 요동쳤다.

윤 전 총장이 사퇴한 날, 오세훈 당선자는 국민의힘 내부 경선에서 나경원 대세론을 꺾었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고 오 당선자를 부양한 중도층에선 정권교체까지 내다볼 수 있는 정치적 구심점이 마련된 셈이다.

단일화 경쟁에서 오 당선자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제친 동력도 전통적 보수를 견인할 수 있는 제1야당 후보라는 점과 중도 확장성이 꼽혔다. 단일 후보로 선출된 직후, 오 당선자는 "삼고초려하겠다"며 윤 전 총장에 구애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일반인으로 돌아간 윤 전 총장의 대선후보 지지율은 급상승했다.

거대 양당 퇴행이 부른 '제3지대 훈풍', 선택의 기로에 선 윤석열

정치권은 4.7 재보선을 대선 전초전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국민의힘 압승 기세가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윤 전 총장이 유력 대선후보로서의 건재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지, '탄핵의 강'을 완전히 건너지 못한 국민의힘이 혁신의 동력을 끌어모을지가 당면한 관건이다.

앞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윤 전 총장이 별의 순간을 포착한 것 같다"고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며 "5월 중순쯤 의사 표시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후보 지지율 1위에 올라선 윤 전 총장을 중심으로 대선 정국의 서막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은 여야를 막론한다.

이에 따라 '윤석열의 시간'은 조만간 소용돌이가 시작될 야권 재편 과정에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특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자리를 8일 내려놓는 김종인 위원장과 윤 전 총장의 관계설정이 관심이다. 검찰총장 재임 시절 윤 총장이 직무배제 곤욕을 치를 때부터, 두 사람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회복"을 시대적 화두로 강조하며 싱크로율을 높여왔다.

김 위원장은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모델을 자주 언급한다. 올랑드 정부에서 장관으로 발탁됐으나 이후 사회당을 탈당해 신당 '앙 마르슈(전진)'를 창당하고, 2017년 대선에서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 마린 르펜을 결선투표에서 누르고 당선된 이가 마크롱 대통령이다.

당시 프랑스 정치를 양분했던 주류 정당 공화당과 사회당은 결선투표 진출에 실패하는 대이변을 맛봤다. 기성 정치에 실망한 프랑스 유권자들이 제3후보들을 밀어올린 결과다. 선거 뒤 '이단아 포퓰리즘의 자업자득'으로 해석됐던 르펜과 달리, 당시 마크롱의 당선은 '제3세력 집권 시나리오'의 정상적 경로로 주목받았다.

탄핵 정부가 쌓아올린 '적폐'와 집권여당의 '내로남불'에 염증이 난 유권자들이 거대 양당에 몸담지 않은 윤 전 총장을 대선후보 지지율 1위로 끌어올린 한국의 현실은 2017년 프랑스와 유사한 면이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윤 전 총장과 함께 신당을 창당하거나 제3지대에 남아 진영 정치에 함몰된 양당 기득권에 도전장을 던질지는 불투명하다.

오세훈-안철수 후보 단일화 국면에서 안 대표를 겨냥해 경멸적 표현까지 동원했던 김 위원장은 제1야당 후보의 승리를 "정치적 상식"이라고 했다. 재보선 과정에 대선을 대입하면, 국민의힘과 윤 전 총장이 어떤 식으로건 접촉면을 넓혀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1대1로 겨루는 수순을 김 위원장이 최종적 대선 대진표로 구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다만 김 위원장의 이 구상이 현실화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국민의힘의 변화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박근혜 정부의 권력농단 사건 수사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으로 발탁됐던 윤 전 총장으로선,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잔재가 남아있는 국민의힘에 몸을 담거나 엄호를 받는 행위가 자가당착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재보선을 승리로 이끈 김 위원장의 퇴임과 더불어, 국민의힘은 미완의 당 혁신을 이어갈 새로운 리더십 찾기에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윤 전 총장에게도 선택의 시간은 다가온다. 대선 출마를 선언해 검찰에서 정치로 무대를 옮길 것인지, 출마한다면 제3지대 단기필마인지 야권 재편의 구심점이 될 것인지, 현 정부 심판론을 넘어 견고한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마크롱 돌풍이 프랑스 대선을 달구던 당시, <가디언>은 '그가 이미지 정치에서 탈피해 국가를 통치할 역량을 실제로 갖췄으며, 프랑스 사회가 처한 대내외적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에게 증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현 권력으로부터 수난당한 '정의로운 검사' 이미지로 얻은 명성만으로 버티기엔, 11개월 남은 대선 길이 윤 전 총장에게도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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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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