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장마당경제에 대한 오해와 실제

[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북한경제의 실태와 잠재력 (3)

"5개년계획의 성패는 경제관리 개선에 달려"

북한 지도부는 경제적 잠재력을 살리기 위해 산업구조 조정과 경제관리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김정은 총비서겸 국무위원장 자신이 "5개년계획의 성패는 경제관리 개선에 달려 있다"고 말할 정도다.

산업구조를 비롯한 전반적인 경제구조 조정과 경제관리 개선에 어느 정도 성공한다면 생산 정상화가 조기에 이뤄질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잡고 있는 듯하다. 올해 계획부터 수년간에 걸쳐 정비전략‧보강전략에서 성공한다면 다음 5개년계획에서는 경제적 잠재력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국가경제발전계획(5개년/7개년)에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2~3년의 완충기를 둔 적이 있었다. 당시의 완충기에는 이번처럼 구조조정과 경제관리 개선에 신경 쓰지는 않았다. 당시의 조정은 미진했던 분야의 생산계획 목표에 도달하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5개년계획 기간 동안에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 그리고 낡은 사업체계와 비효율적 사업방식을 뜯어고치는 데 집중하겠다는 생각을 북한의 당‧정 지도부가 갖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정책 방향에서 북한경제의 전환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지연시의 도심 재개발, 김화군의 지방공업공장 재건

국내의 북한전문가들은 북한 <로동신문> 등의 경제기사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세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정보, 한국은행 등의 각종 통계 등은 그것대로 가치가 있을지라도 이미 낡았거나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낡은 정보와 통계로는 평양의 재개발 바람과 스카이라인 변경을 해석하기가 어렵다.

김 위원장은 평양의 재개발 바람 속에서도 살림집(아파트) 5만 세대를 더 지어야 평양시민의 주택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며, 올해 1만 세대 건설은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고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강조한 바 있다.

외부인들은 평양의 새로 건설된 현대적 건축물들을 보면서 평양이니까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평양 재개발 붐은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삼지연시의 전면 재개발이나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평안남도 양덕군 온천관광지구 건설 등으로 이어지고 있고, 건설 붐은 지속될 전망이다.

북한은 올해 강원도 김화군의 지방공업공장들을 전국의 표준공장으로 건설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지방공업공장의 신규 및 리모델링 공사는 지방의 도심 재개발에 비해 외견상 표는 덜 나겠지만 인민생활의 향상에서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북한의 모든 군에는 20여 개의 지방공업공장들이 있고 주로 생필품 생산을 담당한다. 김화군에 현대화된 설비의 표준공장을 건설한 뒤 전국에 그 모델을 확산하려는 것이다. 지방공업공장들의 설비 현대화가 본격화되면 생필품 부족의 해소에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지난 10여 년간 경공업부문에서 중앙경공업공장들의 설비 현대화를 진행한 데 이어 이제는 지방공업공장들도 현대화함으로써 5개년계획 기간에 소비재 공급 부족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북한 경제당국이 인민들의 실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택공급과 생활필수품 공급에 적극 나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 위원장과 당‧정의 고위 간부들은 지방경제의 수준이 한심한 지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지방경제의 발전을 위해 다각적인 조치를 취하려고 한다. 김정은 당 총비서는 제8차 당대회의 결론에서 매년 시‧군에 시멘트 1만 톤씩 보장(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3월 3일 제1차 시‧군당 책임비서 강습회가 열린 자리에서 '전국의 균형적 동시발전' 추진이 주요 내용의 하나로 다뤄졌던 것도 이러한 흐름과 일치한다. 이렇게 볼 때 북한경제가 붕괴할 것이라는 가정의 근거를 어디에서도 찾기 어렵다.

소비에트 러시아와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의 갑작스런 붕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가 북한에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가정은 북한경제의 작동원리와 실물경제 및 잠재력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시장경제화' 통일론은 북한 시장에 대한 오해에서 출발

국내의 북한전문가들 가운데 이른바 '시장경제화' 통일론을 주장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 가설은 지나치게 관념적이거나 북한이탈주민들의 증언에 경도되어 있는 것 같다.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전체 경제의 70% 정도를 차지한다는 가정도 있는데 이는 북한의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인 것 같다.

북한 전역에 약 400개 이상의 종합시장과 농민시장‧장마당들이 존재하고 이곳에서는 제한된 품목의 공산품과 농산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곳들은 기본적으로 소비재시장이다.

일부 북한이탈주민들이 생산재시장, 금융시장, 노동시장 등 다양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고 증언하고 있지만 그 정황과 규모를 알기는 어렵다. '사회주의물자교류시장'이 아닌 생산재시장이라면 소비재와 연관이 있는 중앙경공업공장들과 지방공업공장들이 대상일 것이다.

이들 공장에서 생산 정상화를 위해 일부 생산재(원자재)를 시장을 통해 조달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지속성을 띤 것으로 보기 어렵고 부분적인 사례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한 면이 있다.

시장 등에서 돈벌이에 성공한 '돈주'로 불리는 자금주들이 있는데 북한 경제당국은 그들의 자금을 금융기관으로 흡수해 공장‧기업소에 대출해주는 구조로 전환하려고 하며, 상업은행이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공장‧기업소들의 생산 정상화 속도에 따라 노동력의 안정화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이어서 노동시장은 일시 출현했다고 해도 오래지 않아 줄어들 것이다. 이처럼 소비재시장이 아닌 생산재시장, 금융시장, 노동시장 등은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도 제도권으로 흡수되는 과정을 반복할 것이다.

북한 시장은 시장경제와 다르다

북한에서는 시장을 계획경제의 보완재로 이용하고 있다. 북한에서 시장은 확대-축소-확대-축소의 과정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시장관리의 측면, 시장 규모나 판매가능 품목의 측면에서). 북한의 계획당국과 가격제정부서는 '시장신호', 즉 전국 시장의 물가 동향을 보면서 국가의 공식가격을 조절하고 있다.

북한은 5개년계획 기간에 국영상업체계를 회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놓고 있다. 국영상점에서의 생필품 판매를 정상화하고 식료품 위주의 슈퍼마켓형 상점을 확대하는 과정을 통해 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것 같다.

다만 국영상업체계가 반듯이 서려면 국영상점의 상품을 빼돌려 시장에서 판매하는 행위 등을 단속해야 한다. 반(反)사회주의‧비(非)사회주의적 활동에 대한 '투쟁'은 시장을 일시적으로 경색시킬 수 있다.

북한 정부가 시장을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적 활동의 '온상'으로 본 지는 오래되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서 시장을 보아야 '시장화'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 줄어들 수 있다. 북한의 시장을 '시장경제'로 확대 해석하는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석과 북한 시장의 현실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음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북한은 개혁‧개방 담론에 대하여 자신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전략이라고 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99년 1월 1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에서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이 떠드는 개혁, 개방 바람에 끌려들어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개혁, 개방은 망국의 길입니다. 우리는 개혁, 개방을 추호도 허용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은 개혁‧개방을 반대하고 있고 대비약‧대혁신을 강조한다. 그들은 '경제혁신'을 내각에 의한 국가적 관리의 강화와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복원으로 이해한다. 국내의 일부 북한전문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개혁‧개방의 분석틀로는 북한의 혁신적 변화를 설명해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이 궤도에 오를 때 북한의 강한 반발에 부딪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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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중소(中蘇)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저서로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남북을 오고간 사람들 : 남의 조직사건과 북의 대남사업>, <박병엽 증언록 1- 조선민주주의인미공화국의 탄생>(공저), <박병엽 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스즈키 마사유키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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