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을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면 '북한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이 아니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월의 제8차 당대회에서 한 발언, 즉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은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에서 출발해보자.
이 발언은 국내 언론에 의해 거듭 재생산되어 상당히 알려져 있다. 북한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어떤 기준에서 볼 것이냐, '미달'은 어떤 기준에서 말한 것이냐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식량사정을 기준으로 삼을 때 북한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생필품 공급은 상당히 나아지고 있어 어렵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주택은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나 군소재지에서 모두 부족하다.
지난 1월 17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2차 회의에서 임명된 내각부총리 7명의 면면은 내각이 주력하는 경제부문을 보여준다. 박정근 부총리는 국가경제계획, 양승호 부총리는 기간산업, 전현철 부총리는 경제정책 및 당과의 연계, 김성룡 부총리는 경제발전연구, 리성학 부총리는 경공업, 박훈 부총리는 건설건재, 주철규 부총리는 농업 등을 각각 맡고 있다.
제8차 당대회에서는 경제부(김두일 부장은 임명 한 달 만에 오수용으로 교체), 농업부(리철만), 경공업부(박명순), 과학교육부(최상건) 등 4명의 부장을 임명했다. 분야별로 보면 기간산업 등 여러 경제부문은 오수용(당)-박정근‧양승호‧전현철‧김성룡‧박훈(내각) 팀, 농업은 리철만(당)-주철규(내각) 팀, 경공업은 박명순(당)-리성학(내각) 팀이 담당한다. 여기서 당은 해당 부문에 대한 정책적 지도를 하고 내각은 경제실무를 담당한다.
'중후장대형' 산업구조에서의 탈출
인민경제 선행부문과 중요 공업부문 가운데 기계공업은 좋아지고 있고(이것은 국방공업과의 연계‧제휴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화학‧금속공업은 중요성(화학비료, 공장‧기업소의 설비제작 등)에 비추어볼 때 국가투자가 더 집중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첫해 계획에서는 화학‧금속공업을 중시하고 있다. 전력‧석탄공업은 기존의 정책을 유지하고 있고 철도운수의 인프라에 투자할 여력은 없다. 다만 통신인프라 건설은 계속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전력과소비의 '중후장대형(重厚長大型)' 산업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대 과제로 삼고 있다. 북한이 에너지의 자력 해결을 추구하며, 석유화학 중심의 산업구조가 아닌 석탄화학 중심의 산업구조를 유지해왔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북한은 석탄가스화라든가 탄소하나 화학공업의 신기술의 물결에 올라탈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 생각할 것이다.
탄소하나(C1) 화학공업은 석탄가스화와 제철소 폐가스 등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촉매로 반응시켜 메탄올을 얻은 후 이를 유기합성화학의 출발물질로 삼는 화학공업을 말한다.
북한의 기존 석탄화학공업은 석탄을 카바이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전력소비가 많은 데 비해 탄소하나화학공업에서는 카바이드 단계를 생략하기 때문에 전력소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 석탄을 채굴하지 않고 석탄 지하가스화 공법을 이용하거나 제철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산화탄소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메탄올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체철‧주체섬유‧주체비료 등의 이용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주체철은 철광석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에 필요한 코크스(전량 수입) 대신에 무연탄을 사용해 철강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북한은 주체철 생산을 위해 철광석에 무연탄과 산소, 석회석을 혼합해 선철을 뽑아내는 산소열법용광로를 개발했고, 황해제철연합기업소, 김책제철연합기업소 등에서 주체철 생산공정을 운영하고 있다.
주체섬유는 리승기 박사가 발명한 폴리비닐알콜(PVA)계 합성섬유 '비날론'을 말한다. 비날론은 1956년에 시제품을 생산하고 1961년에 함흥에 연 2만 톤 생산규모의 2.8비날론공장을 완공해 본격 양산에 들어갔다.
비날론은 면의 성질에 가장 가깝고 질기며 흡습성이 좋다. 또 보온성이 좋고 양털 등 자연섬유와 혼직하면 고품질의 외투천, 양복천을 만들 수 있으며 각종 어업용구, 벨트 등을 만드는 공업용 섬유로도 사용되고 있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나일론과 달리 북한에 풍부한 석회석과 무연탄을 원료로 한다. 다만 생산과정에서 전력 소모가 많다는 흠이 있다.
주체비료는 석탄가스화 공정에서 나프타 대신 무연탄의 가스화를 이용해 생산한 요소비료이다. 주체비료는 2010년 4월에 출하를 시작했으며 흥남비료연합기업소,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 등에서 생산된다. 흥남비료에서는 갈탄을 원료로 사용하고 남흥화학에서는 무연탄을 원료로 사용해 비료를 생산한다.
그러나 전력과소비의 주범인 화학공업, 모든 산업의 기초인 금속공업에서 일대 전환기를 마련해야 경제전환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이 부문에 대한 국가투자의 집중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북한은 현재 가동 불가능한 공장‧기업소들의 정리정돈(폐쇄)을 피할 수 없다. 낡은 설비 때문에 생산성을 높일 수 없는 공장‧기업소의 설비를 대대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공장‧기업소에서 기존의 낡은 설비를 최첨단설비로 갱신하면 낡은 설비들은 산업폐기물이 되고 이를 금속공장들에서 리사이클링(recycling)해야 하기 때문에 금속공업에 대한 투자는 뜨거운 이슈다.
협동품(군수용 부속품) 생산능력의 민간 지원 전환
이 어려운 과정에서도 기회요인은 있다. 북한의 거의 모든 중공업부문 공장‧기업소들이 재래식 병기생산을 위한 협동품(군수용 부속품)을 생산하는데 이 흐름을 반대로 바꾸면 된다. 협동품 생산의 능력을 민간 공장‧기업소 지원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가능성은 높다.
북한의 경제구조는 민간경제와 군수경제의 양대 부문으로 이뤄져 있고 민간경제는 내각이, 군수경제는 제2경제위원회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양대 경제부문은 엄격히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는데 일부 병진공장들(민수품‧군수품 동시 생산)과 수많은 민수공장 협동품생산직장들(군수용 부속품 등 생산담당)이 존재한다.
군수경제는 첨단전략무기를 포함한 병기생산을 담당하는 국방공업(제2경제위원회)과 각종 군수용품을 생산하는 후방공업(국방성)으로 나눠진다. 군수경제는 당경제‧수령경제와 같은 '특수부문'과는 성격이나 규모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최첨단 전략무기 생산에 성공한 북한으로서는 군수공업의 재래식 병기생산을 위한 갖가지 협동품 공급을 줄일 수 있다. 더욱이 현대적인 병기체계에서 쓸모가 없어진 낡은 군수공장들의 문을 닫거나 이 공장들을 민수공장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병행할 수 있다. 북한에서 군수품과 민수품을 모두 생산하는 '병진공장'을 민수 전용으로 전환하는 과정도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산업 전반에 과학기술을 장착하는 방식으로의 일대 전환에 나서고 있다. 산학연(産學硏)의 협력구조의 바탕 위에서 어떻게 그 효과를 올릴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다. 북한의 공장‧기업소에서 공장 기술자들과 대학 및 연구기관의 과학자들이 협업하는 사례는 모든 산업부문‧단위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동향을 고려할 때 '북한경제는 망해가고 있다'는 단정은 현실의 과녁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지도부는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자력갱생으로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가능한 경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 반대투쟁으로 경제 건전성 회복
김정은 지도부는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 문제(기관 대상),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문제(개인 대상) 등을 해결하면 경제의 건전성이 회복되는 한편, 내각책임제에 의한 경제관리가 '지속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는 일부 권력기관들이 수익성 좋은 알짜배기 국영기업소를 보유하면서 내각의 관할 밖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해 수익을 챙기는 현상을 말한다.
김정은 당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은 단위특수화와 본위주의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당권‧군권‧법권을 총동원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에서 강조한 바 있다. 내각책임제 하에서 경제를 정상화하려는 조치이다.
아울러 반(反)사회주의‧비(非)사회주의적 활동에 대한 반대투쟁을 선언했는데, 이것을 경제적 측면에 한정시켜 본다면 시장에서의 매점매석 같은 투기행위를 억제시킴으로써 가격 및 상품공급의 안정화를 도모하려는 것이다. 경제전환에서 반(反)특권‧반(反)부패 투쟁이 필요하고 반(反)사회주의 현상을 타파하는 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는 인식을 보여준 것이었다.
무엇이 미달됐고 무엇 때문이었나?
다시 '미달'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무엇이 미달인가?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2016~20년)의 목표에 대한 미달이다. 2018년 남북한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과 6월 싱가포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을 기화로 북한은 2018년 후반 계획과 2019년 연간 계획에 유리한 환경을 기대했던 것 같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의 북미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끝나자 북한은 2019년에 자력갱생을 바탕으로 계획 전반을 재정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2019년 계획과는 상당히 떨어진 결과를 보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그해 12월 말에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그는 전원회의에서 현실을 종합적으로 다시 진단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새 방향의 핵심은 경제구조 조정과 경제관리 개선에 있었다. 경제부문별 현황과 과업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지만 그것보다는 구조조정이라는 근본적인 고민에 빠졌던 것으로 보인다.
2020년은 5개년전략의 마지막 해였고 북한의 모든 경제 관료들은 자기 부문‧단위의 경제성과를 거둬야 했으며 김 위원장이 지시한 경제구조 조정과 경제관리 개선에서 뭔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그러나 북한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를 만나 2020년 1월부터 국경을 폐쇄해야 했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때문에 적은 규모로 유지해오던 중국과의 무역조차 거의 중지해야 했다. 결국 5개년전략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되는 것으로 끝났다.
그 미달로 인해 북한경제가 총체적으로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식량과 생필품 공급에 어려움이 초래되었을 것이지만, 또한 '국가경제발전 5개년전략'에서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북한이 올해부터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시작한 것을 보면 신발 끈을 다시 매고 스타트라인에 설 정도는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5개년계획 :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모든 것'과의 결별
북한은 새로운 5개년계획(2021~25년)을 시작하면서 정비전략과 보강전략, 정리정돈에 나설 것이라고 솔직히 시인했다. 김 위원장은 기관이나 개인의 특권층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민간경제는 무조건 내각이 책임지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낡은 사업체계와 비효율적 사업방법을 제거할 것과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모든 것'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특히 경제관리 시스템의 변화를 예고했고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 하에서 기업전략‧경영전략을 실행하는데 장애가 되는 제도와 법령을 고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북한경제가 대외관계의 회복을 통해서만 재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것은 일면적인 시각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코로나19, 자연재해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지만 외부의 지원을 바라면서 한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올해 들어 제8차 당대회와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 내각전원회의 확대회의 등에서 북한 당‧정의 생각은 뚜렷이 드러났다.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객관' 요소에서 유리한 상황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아예 접었다. '주관' 요소를 중심에 놓고 무엇을 할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이민위천(인민대중제일주의)‧일심단결‧자력갱생 3가지를 경제적 사유와 실천행동에서 중심으로 삼았다.
이 바탕 위에서 새로운 혁신, 담대한 창조, 부단한 전진을 변화의 모티브로 삼고 있다. 5개년전략이 '미달'이었다고 주저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두려움 없이 새로운 5개년계획으로 전진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국가에서나 경제성장에서 국민들의 심리적 요인을 중시하듯이 북한에서도 5개년계획에서 인민들의 심리를 중시한다는 점을 새로운 혁신, 담대한 창조, 부단한 전진에서 읽을 수 있다.
이민위천‧일심단결‧자력갱생의 길
그리고 '미달' 발언도 실제로는 당 간부들과 경제 관료들에게 '깊이 있는 분석 총화'와 '단호한 대책 수립'을 요구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의미도 있었다. 지도자의 솔직한 표현이 국내외에 미칠 영향도 고려했을 것이다.
김정은 당총비서는 제8차 당대회에 참석한 7000명(대표 5000명, 방청 2000명)에게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 죽기 살기로 자력갱생이다, 단, 과학기술발전에 의거한 자력갱생이다, 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었다.
이민위천을 위해서는 모두 일심단결해야 하며 간부들이나 특권기관들이 자기 한 몸, 자기 가족을 위해 국가 전체를 배반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도 던졌다. 이민위천과 일심단결의 경제학은 공급파이는 계속 늘리고 '함께 공정하게 나눠먹자'는 것이고, 이를 지도층부터 솔선수범하자는 것이 김 총비서의 생각이다.
그러면 '미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초점이 된다. 금속‧화학공업의 국가투자 증대,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의 생산 정상화, 농업과 경공업 발전 등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6년에 시작된 5개년전략의 중반 시점인 2018년 4월에 경제발전총력집중노선을 발표했을 때 북한은 경공업‧농업 중시의 방향을 정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을 예고했다.
인민경제 모든 부문에서의 생산 정상화는 경제건설에서 언제나 첫째가는 목표였지만 올해 진정성 있는 실제 목표인지도 모른다. 다만 북한이 '생산 정상화'를 이룰 때까지 험난한 시간을 견뎌내야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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