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이미 경제적 '전환기'로...남북 모두 변해야 하는 이유

[북한경제 '전환기' 읽기] 북한경제의 특징과 역사적 변화 (3)

경제의 균형적 발전의 법칙 추구

북한경제는 인민경제의 계획적, 균형적 발전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균형적 발전은 계획경제에서 확대재생산과 고축적을 지속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고, 자립적 민족경제건설의 기초인 자기완결적 경제구조를 갖추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경제계획의 수립에서 가장 중시되는 것 중의 하나가 인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의 법칙에 의거하는 것이다.

인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은 부문별의 균형(예를 들어 중공업과 경공업‧농업 간의 균형적 발전, 중공업 내에서의 기계‧화학‧금속 등 간의 균형적 발전 등)과 지역별 균형(도시와 농촌의 균형적 발전, 도‧시‧군 간의 균형적 발전 등)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고속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들은 불균형 발전전략을 채택해 성공한 경우가 많았다. 남한은 반도체산업과 자동차산업, 조선업, 일부 중화학공업 등의 집중 성장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불균형 발전에 따라 부족해진 부분에 대해서는 수입에 의존했다. 불균형 발전전략이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북한이 인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의 법칙에 의거하려는 것은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려는 오랜 염원과 맞물려 있다. 균형적 발전에서는 다양한 경제부문의 '균형'에 따라 확대재쟁산에 유리한 면이 있지만 계획경제의 수급이나 부문‧지역의 균형이 깨지는 경우 확대재생산에 역효과를 자초할 수 있고, 산업구조 조정과 경제관리 전반에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북한은 균형적 발전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고 해왔지만 실제로는 '불균형 발전'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일이 잦았다.

중공업 우선발전과 국방력 강화

대표적인 예는 1960년대의 4대 군사노선(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노선에 따라 국방력을 강화한다는 근본문제가 제기되면서 국방공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국방공업은 중공업의 우선발전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1950년대 초반 전후복구 건설 시기에 이미 중공업 우선발전에 나선 것을 여러 자료로 확인할 수 있다.

국방력 강화에 필수적인 병기 생산은 기계공업을 비롯한 중공업의 우선발전을 요구했고 경공업을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북한은 중공업의 우선발전과 경공업‧농업의 동시발전을 추구하려고 했지만 1960년대의 군사적 위기는 경공업의 '우선발전'을 용인하지 않았다.

북한경제의 역사에서 제8차 당대회에서 제기된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은 특별한 것이었다. 당대회에서 통과된 5개년계획에서 화학‧금속공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 확대, 인민경제 전반의 생산 정상화, 경공업과 농업 발전 등을 통해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 나서기로 한 것, 그 자체로는 그다지 특이한 점이 없어 보일 수 있다.

핵무력건설 이전과 이후

그러나 이것을 핵무력건설의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르다는 시선에서 보아야 한다. 즉 국방공업의 급속한 발전의 성과에 기초해 지금부터는 인민생활 향상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는 문제의식이 5개년계획에 반영되어 있다.

화학공업은 비료생산 등에, 금속공업은 경공업공장들의 설비제작에 필요한 금속 생산 등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화학‧금속공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확대의 내적인 목표는 경공업‧농업 발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민경제 전반의 생산 정상화도 생산재‧중간재 공급과 함께 소비재 증산을 위한 것이었다. 경제의 정상화에서 가장 걸림돌이었던 전력부문에 대해서는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투자해왔기 때문에 국가 투자의 집중대상을 화학‧금속공업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제8차 당대회의 기본정신의 하나는 이민위천이었고, 당대회에서 개정된 당 규약에서 '선군정치'에 대체해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를 기본정치방식으로 규정한 것에서 확인되듯이 올해부터 당과 국가가 인민대중제일주의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지난 1월 9일 북한 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지난 5~7일 8차 당 대회 기간 동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보고한 사업 총화 내용을 보도했다. ⓒ로동신문

'경제판' 인민대중제일주의

북한의 전략적 노선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현재를 중심으로 해서 뒤로 소급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김정은시대의 인민대중제일주의 정치는 '경제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필요로 한다. '경제판' 인민대중제일주의는 먹는 문제 해결과 인민생활 향상에 중점이 있다. 경제성장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먹는 문제 해결과 인민생활 향상이 안정적 궤도에 오를 수 있다.

북한 정부가 '경제판'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결심하기까지는 장장 70여 년이 걸렸다. '전쟁국가' 미국과 정전(停戰)한 뒤 북한은 '전쟁의 공포'에 시달렸다(반면 남한은 북한의 '남침 공포'에 시달렸다). 그 공포에서 벗어나려니 군사력에서 획기적인, 질적인 전환이 요구되었고 그것이 종국에는 핵무력건설에 나서게 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핵무력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고(그 이전에 국제사회에 포착되지 않은 채 1970년대에 핵무력건설에 착수했다는 정보도 있다), 이로부터 30여 년이 지나기 전에 핵무력건설에 성공하는 한편, 장거리 미사일을 비롯한 최첨단 전략무기 개발에 잇따라 성공했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등의 개발은 미국을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북한은 국방력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 나설 계획이다.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의 진정성

그 계획은 2018년 4월에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으로 정리됐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남북 정상회담 직전,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이 논의되던 때였다. 이 당시에 이미 새로운 5개년 계획(2021~25년)에서 제시된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의 핵심과업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당시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을 발표하면서 상세한 과업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2013년 3월'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이 발표된 당시의 경제 과업들을 계승함이 분명했다.

그리고 2018년 4월 이후 남북한 정상의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공동선언이 있었고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렸지만 북한은 자신이 기대하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9년 12월에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어 '정면돌파전'에 나선 것은 북미 담판 결렬, 그리고 5개년 전략의 성과 미달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한 적대시정책에서 변화가 있기를 기대했으며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의 폐기 여부를 그 판단의 척도로 삼았는데 미국은 북한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2019년 12월에 '정면돌파전'을 내건 배경에는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을 누구의 지원을 받아 해결할 일은 아니었고, 오직 자력갱생으로 돌파해야 하겠다는 결심이 작용했다.

5개년계획의 정비전략‧보강전략은 경제건설 총역집중노선의 연장

그러나 2020년 이후 북한은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고통을 받았던 코로나19 팬데믹과 뜻밖의 자연재해로 인해 '수세적 대응'으로 돌아서야 했다. 5개년전략(2016~20년)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될 수밖에 없었다. 2021년에 새로운 5개년계획의 새 출발선에 서게 되었고, 정비전략‧보강전략과 정리정돈을 내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올해의 경제정책은 2018년 4월의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의 연장이고, 또 2013년 3월의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이 변화과정을 알아야 올해의 '전환기'적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핵무력건설을 사활적인 요구로 인식하고 있었고 미국과의 군사적 대립상황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경제건설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017년 11월 화성 15호 성공으로 핵무력 건설에 일정 정도 성공했으므로, 즉 대미 전쟁억지력을 확보했다고 판단되는 만큼 이후로는 경제건설에 일로매진 하겠다는 것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7년 11월 28일 화성-15형 시험 발사 명령을 내렸다. ⓒ로동신문

인민경제의 주체화‧현대화‧정보화‧과학화

김정은 정권의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에서 놓치기 쉬운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니라 인민경제의 주체화‧현대화‧정보화‧과학화 노선이다. 경제의 주체화는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과 직결되는 것이고 북한경제의 독자성은 1950년대 이래의 요구였다. 주체화는 북한이 앞으로도 포기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볼 수 있다.

인민경제의 현대화‧과학화는 주체화와 함께 1978년에 시작된 제2차 7개년계획에서 기본노선으로 천명된 바 있다. 산업현장에서 설비‧장비를 현대화하는 과정은 '산학연(産學硏) 협력에 의한 과학화'에 달려 있다.

김정은시대에 인민경제의 '정보화'가 추가된 점이 중요하다. 기계공업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산업현장의 설비‧장비에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자는 것이었고 이것은 김정일시대부터 중요한 과업으로 부상했으며 김정은 집권기에 와서는 '당연한 일'이 되었다.

현대화‧과학화도 20년 전과 지식경제시대인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지식경제시대의 흐름에 맞춰 인민경제의 주체화‧현대화‧정보화‧과학화는 재해석되고 산업현장에서 실천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변화된 흐름 때문에 '과학기술발전에 의거한 자력갱생' 전략이 5개년계획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력갱생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인한 수세적 측면이 있지만, 과학기술발전에 초점을 둔 공세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북한의 전략적 대응이 보다 잘 이해될 수 있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지 1년 만인 2013년 3월에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내걸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정일시대의 전략적 노선에 그 해답이 있다. 김정일시대인 2003년에 북한은 '선군시대 경제건설'을 채택한 바 있는데 이 노선은 국방공업의 우선발전과 경공업‧농업의 동시발전을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북한 사회는 '우선발전'과 '동시발전'에 매우 익숙하다. 경제 간부들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전대미문의 국가적 위기를 맞이한 뒤 1998년부터 경제 회복세가 시작되자 2003년에 이르러 '국방공업의 우선발전'을 내세웠다. 국방건설에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동원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 방식의 논거'였다.

북한은 1950년대 전후 복구건설시기에 이미 중공업의 우선발전과 경공업‧농업의 동시발전 노선을 채택한 바 있고, 당시에 '중공업의 우선발전'에 사력을 다했다. 북한은 1962년 12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국방건설을 병진한다는 선언은 자원배분에서 군수산업 편중을 가져올 수밖에 없음을 의미했다.

김정은시대에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채택한 것은 1962년의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의 병진노선을 상기시킨다. 국방건설을 '핵무력건설'로 대체하는데 약 50년이 걸렸던 것이다. 국방건설이든 핵무력건설이든 상당한 자금과 자원을 집중하게 만들며, 두 가지의 근본적인 차이는 핵무력건설은 핵억지력을 갖게 한다는 점에 있다.

더군다나 북한이 최첨단 전략무기의 개발에 따라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준의 병기체계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것은 북한의 군사적, 전략적 지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뜻한다.

북한경제의 '역사적 전환기'

북한 정부는 이제 국방공업의 성과를 넘어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 모든 것을 쏟아야 하는 '역사적 전환기'에 처해 있다. 그들의 정책의지와 경제성장의 능력‧조건은 서로 다른 것인 만큼 2021년부터의 5개년계획과 2026년부터의 다음 5개년계획으로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국방공업에 투입하던 자금‧자원‧인력, 특히 과학자‧기술자들을 민간경제에 투입할 수 있다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성과와 결실에 근접할 수는 있을 것이다.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현재 대략 1250~1350달러로 추정되고 남한의 27분의 1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1970년대 초반까지는(일부 학자는 '1960년대 후반으로' 주장) 남한보다 경제력에서 앞섰다. 남한경제가 1인당 GNI 3만 1700달러 수준인데 이에 기여하는 산업분야가 반도체와 전자산업, 자동차산언, 조선업 등 몇 가지 산업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은 북한경제에도 시사점을 준다.

북한경제는 대외지향적이 아니기 때문에 고속성장의 기회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대비약‧대혁신'을 위해서라면 '불균형 발전' 과정을 겪더라도 '세계적인 산업'을 발전시키는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인공지능(AI)과 관련된 소프트웨어의 개발능력을 키우고 세계적인 AI업체들이나 빅데이타업체들과 협력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반도체와 전기자동차의 하드웨어는 후발주자가 따라잡기 어렵지만 전기자동차의 빅데이타산업과 AI 부문은 소프트웨어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영재 개발자들의 중국 등지의 수출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절대 시간'이 소요되기는 하겠지만, 북한은 생명공학도 자국에 적절한 사업으로 판단하고 있고 그 전문인력의 양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금 세계는 산업의 격변기를 맞이하고 있고, 기업 부침이 격심한 사이클에 들어간 만큼 북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절대 절명의 과제를 앞에 두고 있어 그 무거움이 한량없지만, 남북한 정부는 지금이야말로 공존과 상생의 경제번영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고 전면적으로 실행해 나가야 할 때다. 북한이 경제성장과 인민생활 향상에 주력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 정부도 그에 조응하는 대북정책을 전개해야 하고, 남북 경협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그 방법론과 해법을 찾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남북 경협은 이와 차원이 다른 문제이고 단기간에 윈-윈이 가능하다. 남한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파묻혀 그 장애물을 뛰어넘을 엄두를 내지 않는다면 북한은 자신의 길을 갈 것이다.

하나는 '과학기술발전에 의거한 자력갱생'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과의 '전통적 혈맹'을 강화하고 전략적 협력 속에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길이다. 남북한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변화의 압력'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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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구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해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양대학교 중소(中蘇)연구소 연구원, 중앙일보 북한문제 전문기자, 월간 <민족21> 편집기획위원, 사단법인 현대사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저서로 <김정은의 경제발전전략>, <남북을 오고간 사람들 : 남의 조직사건과 북의 대남사업>, <박병엽 증언록 1- 조선민주주의인미공화국의 탄생>(공저), <박병엽 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김정일과 수령제 사회주의>(스즈키 마사유키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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