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2021년 새해 첫날부터 집단해고되었다. 차별 속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지만 '청소노동'에 대한 선입견, 동정적인 시선 속에 그 삶과 노동은 종종 단순화되고는 한다. 깨끗한 사무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청소노동자의 삶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세상에 전해지도록 인권활동가들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1월 중순,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LG 불매선언 기자회견'에 정치하는엄마들도 함께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를 외쳤다. 노조와해를 목적으로 한 LG 청소노동자의 집단해고로 헌법에 명시된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3권이 침해됐음에 함께 분노하자고. 그러나 이후 불매운동 독려와 투쟁을 알리는데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다. 워낙 내가 속한 단체 내 다뤄야 할 의제가 많기도 했고(정치하는엄마들은 회원들의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통해 성평등, 복지, 생태, 생태를 아우르는 다양한 의제를 다룬다) 감염병 대유행 속에 활동의 물리적·시간적 여건이 후퇴한 점은 있으나 이것은 한낱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 사회의 지독한 반노동 정서 속에 대기업과의 싸움에 자신이 없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치약 같은 생필품부터 코카콜라 등의 음료, 세탁기, 노트북등의 전자기기와 통신회사까지, 일상에서 마주한 LG제품에 불매딱지를 날릴 기세로 연대를 약속했건만 LG베스트샵만 보면 조용히 그 곁을 지나쳤다. 도대체 나의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 일까. 1,2월 내내 LG청소노동자 연대투쟁을 다음 날로 다음 날로 미룰수록 무거워진 마음을 안은 채, 기어코 LG청소노동자 릴레이 인터뷰·기고 순서가 돌아왔다. 더 이상 바쁜 척 하고 있을 수가 없다. LG트윈타워로 향했다. 인터뷰에 응한 조합원분도 현장에서 처음 뵙기로 했다. 질문지를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꼭 질문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한가지였다.
거대 대기업과의 싸움에 고령으로 접어든 여성 노동자들의 지치지 않는 투쟁의 힘과 당당함의 저력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인지. 그것은 인터뷰이의 삶속에서 노동자 주체로서의 자각을 새겨듣는 것이기도 했지만 나의 두려움을 직시하고자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필 날씨가 따듯하다.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에 봄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 2021년의 달력은 어느덧 3월을 가리켰다.
LG트윈타워 로비 회전문에서 용역업체 직원이 제지를 하며 LG 사원증을 보여 달라 한다. 로비에 조합원 면담을 하러 왔다고 하니 무전기로 어디론가 보고를 하고는 소속이 어디냐고 묻는다. "시민단체다. 어쩔래?"라는 눈빛을 쏘았다. '시민'이란 말에 위력이 발휘되었는지 더 이상 실랑이 없이 로비로 안내받았다. 보안직원으로도 불리는 용역이라는 직업인을 처음 마주했다. 채증경찰의 역할도 돈으로 살 수 있구나. 이들은 누굴 위해 싸우는가. 아마 LG가 아니라도 돈을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충성할 것이다. 쓸데없이 삼엄한 회전문 입구에서부터 대기업의 품격이 드러난다. 한없이 가벼운 1gram(그램)의 품격.
로비는 트윈타워 동관과 서관을 잇는 넓고 기다란 복도를 유리외관으로 덮고 인공정원의 컨셉으로 내부를 꾸민 모습이었다. 그 한쪽 귀퉁이에 빨간 조끼를 입은 공공운수노조 LG트윈타워지부 조합원들 30여명이 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조합원 한분이 "여기 인터뷰 하러 오셨데. 우리 누가 하기로 했죠?" 외치자, 맨끝에서 한분이 손을 번쩍 드신다. 그렇게 김영례(58년생) 조합원을 만났다. 마스크로 가려져있었지만 굵직한 광대뼈와 뺨의 불그레함이 그간 살아온 삶의 희노애락 가운데 켜켜이 쌓인 시간성과 청소노동자로서의 자부심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인터뷰를 시작했다. 시작이라고 했지만 김 조합원께서 어색할 틈도 없이 질문지 준비 없이 간 인터뷰임에도 안심시키듯 먼저 이야기를 술술 꺼내셨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이야기, 맨 처음 꺼낸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일터에서 받은 부당함에 대한 자각이었고, 차별이나 배제 등에 대한 인식이 집단행동의 계기를 만들어낸 경험이었다. 그는 노동자가 뭉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밥값 도둑과 트위터의 밥 연대
김 조합원은 2012년 8월1일에 입사한 이래 8년 5개월 동안 LG트윈타워의 청소를 담당했다. 듣자하니 그동안 관리자로 호명된 팀장의 갑질과 중간에서 수당을 갈취하는 페이백이 심했다. 밥값을 중간에서 떼인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존엄을 깎이고 부당한 착취를 견디면서도 묵묵히 견뎌내기만 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부당하다.
어느 날 한 명, 한 명 흩어져 있던 노동자들끼리 모여 생각을 나누니 공동의 문제의식이 생겼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의 노동을 통해 얻은 정당한 수당을 밥값도둑으로부터 돌려받자. 혼자서는 불가항력으로 느껴졌던 문제가 노조설립 이후 가능했다. 그리고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용기를 얻고 자긍심을 얻었다.
자본은 노동자들이 서로' 경쟁자'가 아닌 '동료'가 되는 것을 지독히도 경계한다. 노동자에게 동료가 있을 때 가지는 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LG는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청소노동자들을 집단 해고시켰다. 노동자가 뭉칠 수 있는 권리를 없애려는 자본 앞에 우리 어머니세대의 LG청소노동자들이 맞서고 있는 것 이다.
"그러면 현재 투쟁 중에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세요?"라고 묻자 김 조합원은 "본인이 써 붙였다"며 자랑스럽게 벽면에 붙은 손 피켓을 가리켰다.
트위터의 한 끼 연대. 그리고 인터뷰 중에 자주 언급한 연대라는 단어. 혹시 여기에 내가 듣고 싶어 했던 해답이 있을까. 놓치지 않고 준비한 질문을 했다. 거대대기업과 싸우는 저력은 어디서 비롯되는 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바로 대답을 하신다. 그 해답은 역시나.
그 저력은 연대였다.
투쟁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바뀐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김 조합원에게는 두 자녀가 있다. 그 중 둘째인 아들은 어머니의 노조활동을 지지한다. 남이 싫은 소리 할 때 내가 가만히 있으면 당하니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는 하지 말기를 당부한단다.
웃으면서 던진 이 말에 아파도 동료들과의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있음을 직감했다. 동료를 얻는 과정을 통해 비단 일터에서의 차별뿐만 아니라 세상이 이미 기울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터에서 받는 차별과 폭력이 사회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이해할 때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투쟁은 일터를 벗어난다. 이를 아는 순간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더 이상 부당함을 묵묵히 견뎌야했던 과거의 김영례가 아니다. 동료들이 있기에 조금의 불편함을 견디고 끝까지 싸워야한다. 노동조합의 활동이 일터에 갇힌다면 이익투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그 동료애와 투쟁은 문제의식을 넓혀 사회적으로 연대해가는 것으로 확장했다. LG청소노동자들은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 복직투쟁, 한진중공업 김진숙 노동자 복직투쟁에도 연대했다. 그리고 노조활동을 하면서 개인 삶의 가치관도 변화했다.
직장 내 차별 철폐를 외치듯이 가정 내 차별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믿는대로 행동하기, 생활민주주의 실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용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근로자', 내 권리를 찾는 '노동자'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학생들과 아이들에게 노동에 대해 어떻게 말해주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다. 역시나 막힘없는 답변이 돌아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로 살아가며 자본가와 함께 자본주의 사회의 양축을 이룬다. 근로자는 '근면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말로 박정희 정권이 노동자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만들어낸 말이다.
인간 김영례 조합원이 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 저력은 자신스스로가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 남기 위함이다. 그래서 동료들의 손을 잡고 서있는 것이다. 나는 노동자 김영례 동지의 손을 꽉 잡았다.
58년생 청소노동자 김영례의 눈부신 투쟁에 82년생 양육자 강미정의 연대를 보태면서.
어머니들 꼭 이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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