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에서 트럼프를 이긴 여성,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흑인들의 열망이 백인들의 분노를 이겼다"...조지아 승리를 이끈 풀뿌리 민주주의

미국 민주당이 5일(현지시간) 치러진 조지아주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예상보다 큰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 11월 3일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28년 만에 조지아주에서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0.2%p의 근소한 차이였다. 전통적인 남부의 '레드 스테이트(공화당 우세 지역)'로 분류되는 조지아주가 '블루 스테이트'로 넘어갔다는 평가를 하기엔 힘든 결과였다.

그로부터 두달 뒤 치러진 상원의원 결선투표(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는 특정 후보가 과반 이상을 득표하지 못할 경우 최다 득표자 2명을 놓고 결선투표를 한다)에서 민주당은 공화당이 확보하고 있던 두 개의 의석 모두를 빼앗아 왔다.

6일 오전 민주당 래피얼 워녹 후보가 공화당 켈리 레플러 후보를 누르고 승리를 확정지었고, 이날 오후 민주당 존 오서프 후보도 공화당 데이비드 퍼듀 후보를 상대로 승리했다.

이로써 조지아주는 2020년에 치러진 대선과 상원의원 선거에서 모두 민주당이 승리한 지역이 됐다. '레드 스테이트' 조지아에 '블루 웨이브(파란 물결)'를 가져온 힘은 무엇일까?

에이브럼스 등 흑인 여성들이 주도한 풀뿌리 유권자 운동

미국 언론들은 조지아 상원선거 승리의 일등공신 중 한명으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46세) 전 민주당 조지아 주지사 후보를 꼽는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 후보로 2018년 조지아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던 에이브럼스는 데이비드 캠프 주지사를 상대로 5만5000표 차이로 석패했다. 당시 주지사 선거는 선거 전날 30만 명의 유권자를 투표 부적격자로 처리해 혼선을 초래하는 등 불공정 시비가 일었다.

에이브럼스는 이 패배를 교훈 삼아 본격적으로 풀뿌리 유권자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는 투표독려단체 '페어파이트액션'과 '뉴조지아프로젝트'를 설립해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계 유권자들을 상대로 유권자 등록 운동을 벌였다.(미국에서는 시민권자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데 직접 유권자 등록을 해야지만 투표를 할 수 있다.) 그와 뜻을 같이 하는 흑인, 여성, 청년층 풀뿌리 운동가들이 직접 발품을 팔아 한명 한명 찾아낸 유권자들은 80만 명이 달했다.

대거 유입된 신규 유권자들은 상당수 민주당 지지자들이었고, 이들의 표가 대선과 상원의원 선거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지었다는 것이 미국 언론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CNN의 정치평론가 벤 존스는 조지아주 결선투표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것에 대해 "에이브럼스가 트럼프를 이겼다"면서 "흑인들의 열망이 백인들의 분노를 이겼다"고 평가했다.

▲조지아주의 정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CNN 화면 갈무리

공화당과 동시에 민주당에서 충격을 주는 에이브럼스+풀뿌리 운동가들의 승리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는 오는 20일 출범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앞날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선거였다. 앞서 오바마 정부 하반기 상원 다수당이 공화당으로 넘어가면서 연방 대법관 임명 등 인사 문제에서부터 의료보험 등 정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가 발목 잡혔던 경험이 있다. 바이든 정부도 똑같은 어려움에 처할 뻔한 상황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하지만 이번 승리는 바이든이 대표하는 민주당 주류 입장에서 마냥 기뻐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다. 조지아에서 '파란 물결'을 이끈 힘은 기존 민주당 세력이 아니다. 바이든 정부와 민주당이 좀더 '왼쪽'으로 이동하기를, 좀더 '아래'로 내려오기를 요구하는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들, 여성, 청년 등 풀뿌리 운동가들이다.

이들이 당선시킨 조지아주 상원의원들의 면모를 봐도 '파란 물결'이 원하는 바가 뚜렷하다. 워녹 후보는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목사 출신이다. 오서프 후보는 진보 성향의 매체를 운영하던 30대의 젊은 정치인이다. 워녹은 조지아주의 첫 흑인 상원의원이라는 기록을, 오서프는 최연소 상원의원이라는 기록을 갖게 됐다.

따라서 대통령과 부통령을 배출한 민주당 주류인 중도파는 당내에서는 진보진영의 정책적 요구를 반영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이번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코로나19 부양책을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이 입장 차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각종 지원 정책에 소극적인 공화당에 비해 적극적인 민주당의 입장이 유권자들에게 어필했다.

이날 조지아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완패함에 따라 '트럼피즘'의 정치적 한계가 명확해졌다. 트럼프가 동원하는 광적인 지지자들이 결코 선거 승리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이 2020년 대선에 이어 이번 결선투표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이들의 정치적 목소리는 크지만 다수를 대변하지 못한다. 중도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트럼프와 결별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이 공화당의 미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 선거에서 확인됐다. 공교롭게 같은 날 발생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난입 및 폭거 사태는 '트럼피즘'과 민주주의의 공존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