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코로나 백신 시대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코로나 백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이제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코로나 백신 시대의 화두는 백신의 안전성과 접종 속도다. 최종 목표는 집단면역 확보다.
코로나 백신 시대에는 백신을 맞은 사람과 맞지 못하거나 맞지 않은 사람의 두 계층으로 나뉜다. 마스크 사회에서 조기에 벗어나느냐와 자유로운 이동과 외국 여행을 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오롯이 백신 접종 속도에 달려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백신의 안전성이 우선이냐, 접종 속도가 우선이냐의 논쟁과 여론조사가 잇따랐다. 이는 잘못된 논쟁이자 조사 질문이다.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백신 접종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안전하지 않은 백신을 국제사회와 국가가 유통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잘못된 프레임-백신 안전성 먼저냐, 접종 속도가 우선이냐?
100% 완벽하게 안전성을 지닌 백신은 지금까지 존재한 적이 없다. 다시 말해 그동안 인류가 감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 접종해온 백신은 아주 사소한 부작용이나 위험은 감수하면서 나온 것이다. 지금 세계 많은 나라가 접종을 시작한 화이자·모더나 백신뿐만 아니라 중국의 시노팜 백신과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백신, 그리고 앞으로 접종이 시작될 아스트라제네카·얀센 백신 등은 임상 3상 시험 내지는 이에 준하는 임상시험을 거쳐 어느 정도 안전성이 확인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안전성이 우선이라는 주장은 마치 코로나 백신 자체에 심각한 안전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면에서 잘못된 것이다. ‘안전성 우선’이라는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자국민이 원하는 백신을 접종하지 못하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책략’에서 궁리한 프레임이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 백신을 우리 국민에게 세계 최초로 맞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황당무계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올해 우리 사회에서 코로나 백신과 관련한 화두는 필요한 집단에게 얼마나 신속하게 접종해 집단면역을 달성하느냐가 되어야 한다. 최초 접종 시점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보다는 집단면역을 달성하거나 집단면역 효과를 어느 정도 볼 수 있는 시점이 언제가 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인구집단의 최소 60%, 바람직하게는 70~80%에서 코로나 항체가 형성되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는 백신을 접종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고 국가 차원이나 지구 차원에서는 국가 내 구성원 또는 지구촌 인류 다수가 집단면역을 언제 형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집단면역을 형성한다는 것은 코로나와의 전투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 인간과 미접종 인간 간 차별 시대 도래
개인의 백신 접종은 사회·경제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식당이나 카페를 이용할 때 개인 신상을 적거나 큐아르(QR)코드를 찍듯이 앞으로는 백신 접종 이력이 담긴 증명을 휴대폰 등에 담아 보여주는 시대가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비행기나 기차 등을 타고 국내·국외 여행할 때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누가 우선 접종 대상이 되어야 하느냐를 놓고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접종이 이루어질 경우 집단 간 갈등이 벌어질 위험성이 상존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우선 접종 순위를 놓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논거와 사고를 바탕으로 국민 설득과 소통을 충분히 한 뒤 대상자를 결정해야 한다.
백신은 감염을 막아 생명을 지켜내는 보건의학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치·사회·경제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코로나 방역의 성공이 곧 정치적 자산이 된다는 사실은 지난해 우리나라 총선과 미국 대선에서 이미 입증된 바 있다. 국가 지도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무한 책임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에 실패하면 그에게는 미래의 권력이 더는 주어지지 않는다.
백신 공방 2라운드는 집단면역 달성 시기, 대비책 미리 마련해야
우리 사회에서 백신 늑장 확보와 관련해 여야 간 공격과 방어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백신이 지닌 이런 정치적 위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말 정부가 5,600만 명분 확보와 상당히 구체성을 띤 접종 일정을 밝힘으로써 백신 공방 1라운드는 지나갔다. 하지만 현재의 여건으로 보면 상반기 중 집단면역 확보는 불가능하고 하반기 집단면역 확보도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따라서 백신 공방 2라운드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백신과 관련해 지나친 정치 공방과 갈등은 국론을 분열하고 코로나 방역에 대한 불신과 가짜뉴스 창궐 등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런 형국까지 가지 않으려면 정부가 백신 확보와 접종 등과 관련한 세세한 정보까지 최대한 미리 공개해야 한다. 또 만약에 하나 국민에게 약속한 일정대로 접종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로 인해 위기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위기가 불거지기 전에 이를 알리고 사과하며 대책을 이야기하는 위험(위기) 소통의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사회든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국가와 다른 국가, 특히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국가와 우열을 비교하기 마련이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 쇠고기 수입을 우려하는 광화문 촛불 시위 때도 그런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일본과 대만은 광우병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은 30개월 미만 연령의 도축 소고기만을 수입하기로 한 반면 우리나라는 30개월 이상의 연령의 도축 소고기를 수입키로 하자 시민들은 우리가 일본·대만 국민보다 못한 3등 국민이냐며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만일의 사태 대비하는 자세만이 위기 극복 가능케 해
코로나 백신 접종 때도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가 코로나 집단면역 확보를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올 여름에 설혹 신규 확진자 발생과 사망자가 심각하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경제력과 국력을 지닌 국가의 상황과 맞비교를 해 백신 접종을 하지 못한 집단을 중심으로 분노를 표출하며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가능성이 짙다.
이때쯤은 코로나 장기화로 구성원들의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르고 경제와 일자리 상황 등도 여전히 우려될 정도이거나 전망이 불투명할 가능성이 상당하다. 따라서 늑장 집단면역에 따른 각종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소통 매뉴얼과 전략을 꼼꼼하게 만들어 모의 실전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때와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최근 일어난 서울 동부구치소 무더기 감염·사망 사태만 해도 구치소가 집단 감염의 위험 시설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사전에 이에 대비한 충분한 교육과 훈련, 매뉴얼 준비 등을 게을리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선진국에 견줘 상당히 늦은 백신 접종 개시와 집단면역 확보는 분명 우리 사회의 잠재적 위기 요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이를 위기 같지 않은 위기로 넘길 수 있다. 코로나 시대에 생기는 위기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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