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의 'MB·朴 사면' 돌발 해프닝, 진짜 문제는…

[기자의 눈] 중도층 마음 모르고 '너희들은 이런 거 좋아하지?' 묻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년 언론 인터뷰에서 돌연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을 들고 나왔다가 3일 사실상 이를 철회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이 대표가 주재한 민주당 지도부 간담회 결론은 "이 문제는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 앞으로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한다"는 것이었다.

이 대표로서는 정치적으로 큰 상처를 입은 셈이 됐다. 여당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대표 불신임' 주장까지 나오는 등 등 거센 반발이 터져나온 것은 오히려 예측 가능했던 일이나, 사전에 어떤 정치세력과도 직간접적 교감이 없었던 제안을 무리하게 들고 나왔다는 비판은 뼈아픈 지점이다.

첫째, 여권 내 공감대가 없었다. 이 대표가 지난해 12월 12일과 26일 문 대통령과 2차례나 독대한 점에 비춰 이 대표와 문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게 아닌지 주목을 끌기도 했지만,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대표의 발언이 보도된 직후 "'적절한 시기에 건의하겠다'고 한 만큼 실제로 건의가 이뤄져야 논의할 수 있는 문제"라고만 했다.

그리고 3일 민주당 지도부는 사실상 사면 제안을 철회시켰고 이 대표는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와 공감,) 그런 일 없다"고 했다. 이 대표의 제안이 대통령과의 교감 끝에 나온 것이라면 이렇게 삼일천하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둘째, 야당 반응도 떨떠름했다. 일부 친이·친박계 인사들은 반색했고. 이른바 '태극기 세력'도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을 냈지만 정작 야당 지도부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일 현충원 참배 후 기자들이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묻자 "지금 처음 듣는 얘기"라며 "지난번에 만났을 때(12.30 여야 대표 회동 당시)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만 했다.

서울시장 보선 출마선언 이후 최근 여론조사에서 앞서가고 있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같은날 "(사면은) 전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며 "전직 대통령 사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경계심을 표했다.

셋째, 여야 지도부 또는 적극 지지층에 포섭되지 않는 부동층·중도층에 호소하는 효과 또한 불분명했다. 정치적 대표성이 낮은 특성상 이들 집단과의 '사전 교감'이야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코로나19 상황 악화 △부동산 가격 상승 △추미애-윤석열 사태 등의 와중에 정부·여당에 등을 돌린 이들의 지지를 되찾아올 카드가 과연 '전직 대통령 사면'이었을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전문가들이 많다.

특히 4.7 재보선을 앞두고 '중도 확장'을 절체절명의 과제로 내걸고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중도층의 대표를 자임해온 안철수 대표가 이 대표의 제안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진짜 문제는 이 지점에서, 이 대표와 그를 비롯한 민주당 일부 정치인들이 '중도층 민심'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사면 제안 자체는 사실상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면하면 중도층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민심 파악에 실패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사면론이 갖는 정치공학적 효과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먼저 아직도 다수 의원들이 친이·친박계 출신인 국민의힘으로서는 '김종인 지도부'가 좋든 싫든 간에 이 의제가 발휘하는 흡입력에 어느 정도 이끌려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원희룡 제주지사, 유승민 전 의원 등 국민의힘 내에서도 긍정적 반응이 없지 않았다. 제안자인 이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상대를 분열시키는 효과를 노려봄직했다.

또한 실제로 두 전직 대통령이 사면되고 이들이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면, 과거 보수정당과의 차별화를 통해 중도 확장을 시도한다는 이른바 '김종인 플랜'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을 것이다. '국민의힘=이명박·박근혜 당'이라는 유권자들의 인식을 강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상대의 핵심 선거전략을 무력화할 수 있는 셈이다.

여권 내부로 보면 이 대표 개인에게 기대되는 정치적 소득이 있었다. 물론 강성 지지층의 반발은 예측된 사실이지만, 이들은 본래부터 이 대표에 대한 선호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오히려 '중도층에 소구력을 가진 주자'의 이미지를 재강조하고, 현재는 사라지다시피 한 '여권 지지층 내 온건·중도파'를 재구축하는 효과를 노릴 수도 있었다.

이는 작년까지의 여야 극한 대결 구도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고전했던 '대선주자 이낙연'의 승부수로 해석할 수 있었다. 기존 판 자체를 흔들고, 여야 지지층을 모두 분화시켜 적의 일파로부터 우호적 평가를, 아군 일파로부터 적극적 지지를 끌어내 이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삼겠다는 구상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술적 차원에서는 유효성이 없지 않았을 사면론이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비판받을 소지도 많았다. 정치를 '정적과의 게임 : 경쟁'이 아니라 '유권자와의 게임 : 소통'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는 결코 고리타분한 도덕론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집권 5년차를 맞는 입장에서, 또 4.7 보궐선거를 앞둔 입장에서 정부·여당에 가장 절실한 것은 국정 동력의 확보다. 매주 발표되는 대통령 국정수행 평가 조사와 정당 지지율은 중요한 척도다. 최근, 이들 지표는 정부·여당 입장에서는 충분히 위기감을 느낄 만했다.

한때 무려 7~80%에 달하던 대통령 국정지지도. 압도적 1위를 굳건히 지키던 여당 지지율. 이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려면 중도층의 지지를 되찾아야 한다는 방향 자체는 틀린 데가 없다. '한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최근 1~2년새 이탈한 이들'의 마음을 찾아오는 것은 2021년 초 현재 여권에 매우 중요한 과제니까 말이다.

문제는 '중도'라는 목표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방법이었다. 한 정치 전문가는 "떠나간 중도층을 잡으려는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의 '사면 건의' 인터뷰를 처음 실었던 <연합뉴스>도 시론을 통해 "많은 시민은 손사래를 칠 가능성이 크고, 최근 세인의 관심에서 많이 멀어진 두 사람이 갑자기 국민통합의 중대 걸림돌로 부상한 것이냐고 의아해할 시민들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한때 문 대통령과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최근 이들로부터 마음이 떠난 이들'이 설마 '이명박·박근혜 지지자'이겠는가? 이 대표의 제안은, 그게 당 지지층의 정서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점이나 정치적 사전 정지작업이 없었다는 점보다도 '정부·여당에 비판적인 이들 = 이명박·박근혜 지지자'라는 그들 머릿속의 이분법적 사고를 드러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중도층의 지지를 회복할 방법은 그렇기에 사면론 따위 정치전술이 아니라 진솔한 반성이어야 한다. 중도층이 떠나가는 이유가 뭔지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이 당연히 선행돼야 한다. 박원석 전 의원은 SNS에 쓴 글에서 "어제까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정치를 하다가 갑자기 이명박·박근혜 사면 카드 꺼내든다고 그것이 '포용과 통합'으로 보이겠느냐"고 했다.

한 기초의원도 "(사면론은) 국민통합이 아니라 상대 진영의 혼란을 노리는 것"이라며 "진정 통합을 원한다면 이제 갓 재판이 끝난 이명박과 아직도 재판이 안 끝난 박근혜의 사면을 건의할 것이 아니라, 지난 1년여의 시간동안 두 법무장관이 불러온 혼돈과 분열에 대해 사과부터 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새겨 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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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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