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민 대 난민' 구도를 만드는가

[인권으로 읽는 세상] 예멘 난민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 이야기하자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거세다. 반대의 이유로 제기되는 불안이 어디에 기인해있나 이야기를 나누다 "'출처'가 불분명해서 그런 거 아니야?"란 말이 툭 튀어나왔다. 뜨끔했다. 그렇게 내뱉은 말로 난민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가 생각해봤다. 몇 년 전 터키 앞 바다에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어린이의 죽음은 전 세계를 울렸을 때도 한국에 난민은 있었지만, 난민 문제는 먼 나라의 사진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아왔음에도 늘 '없는' 존재 취급됐던 난민 문제가 이번 예멘 난민 논란으로 가시화됐다. 난민 문제가 전 세계적 문제로 제기돼도 한국의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는데, 그 지형이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있는' 존재로 등장하자마자 난민은 곧바로 '알 수 없는' 존재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가짜 난민, 잠재적 범죄자라는 잣대

예멘 난민을 둘러싼 논란에 정부가 가장 먼저 한 것은 문을 닫아버린 것이었다. 5월 21일 법무부는 "예멘이 무사증 입국 허가제도를 '악용'해 입국할 개연성이 상존"한다며 6월부터 무비자 대상국에서 예멘을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내전으로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라는 예멘에서 탈출해 이곳으로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분쟁과 박해, 폭력을 피해 '살기 위해' 떠나온 난민들의 트라우마는 난민 심사 과정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왜 왔는가라는 의심 속에서 '진짜 난민'임을 입증할 것을 요구받는다. 정부가 '악용' 가능성을 제기하며 이런 조치를 취한 것은 예외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마치 전체적인 문제처럼 왜곡한다. 난민에 대한 이해가 싹틀 여지는 사라지고, 진짜냐 가짜냐 끊임없이 의심만 제기되게 하는 것이다.

'제주 불법 난민 반대' 청원 참여가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세계 난민의 날이기도 했던 6월 20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난민 현황 파악 지시를 언급하며 제주 예멘 난민 대책을 밝혔다. 긴급한 인도적 필요성에 따른 지원과 더불어 '순찰을 강화하고 범죄 예방에 집중적으로 나서 불필요한 충돌이나 잡음을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이는 안전을 담보하지 못한다. 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인식하게 하면서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킨다. 주기적으로 경찰의 외국인 범죄 집중단속 소식을 접한다. '불법체류자가 늘어 범죄가 늘었다'거나, '외국인이 많은 지역이 우범지대'라는 이야기가 늘 있지만 실제 통계는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경찰의 이런 대응은 외국인에 의한 범죄가 특별히 더 많다는 착시를 일으킨다. 유럽에서 무슬림에 의한 성범죄가 늘어났다는 등 악의적인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가운데 정부의 대책은 위험한 존재로서 난민을 향한 불안을 실체화한다. 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삭제된 채 위험한 집단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굳건해진다.

이번 예멘 난민 소식에 혐오를 동력으로 삼아온 세력은 발 빠르게 모였다. 이들이 쏟아내는 난민 차별, 무슬림 혐오는 그 자체로 문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차별과 혐오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부적절한 관점과 태도다. 난민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가 오히려 난민에 대한 부적절한 관점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난민 제도와 난민 인권 현실 사이

2013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제정한 나라로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난민 인권 보호에 선진적인 것처럼 보여 왔다. 그러나 난민 제도와 난민 인권 현실 사이는 멀기만 하다. 국제 상황에 의해 난민 신청은 매년 늘고 있지만, 실제 난민 인정률은 턱없이 낮고, 난민 심사 절차는 더디기만 하다. 작년 한 해 9,942명의 난민 신청자 중 1.5%에 불과한 121명이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심사 담당 공무원이 전국 38명뿐인 상황에서 난민 신청자들은 1차 심사를 받기까지 평균 7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출입국항에서 난민 신청을 할 경우 신청 자격을 얻기 위한 회부 심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회부율은 10%에 불과해 10명 중 9명이 강제 송환되거나 난민 신청을 하기 위한 소송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난민 심사 기간 동안 생계비와 주거시설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지원책을 모르는 난민들이 대부분이며 난민 신청자가 늘어나도 지원 예산은 제자리인 상황에서 실제 지원은 매우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진다. 수개월의 심사 기간을 버티기 위해 난민 신청자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제주에서 지금 예멘 난민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 갈 곳 없는 예멘 난민들이 거리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다 민원으로 출입국관리소에서 철거명령을 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난민 제도의 운영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한국에서 난민은 그저 난민 신청을 할 권리만 앙상하게 있을 뿐 존엄을 지키기 위한 권리는 없다. 기약 없는 시간을 버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난민법 제정 5년차, 인적・물적 조건이 난민 제도를 뒷받침하지 못하면서 난민들의 인권은 유예된다. 난민 인정 여부가 결정되기까지 대기 상태로 부유할 수밖에 없는 난민들의 불안정한 조건은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맞물린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고착된 상태는 국민 대 난민 간 갈등 구도로 문제의 본질을 흩뜨린다.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를 이야기하자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말은 늘 있었지만 '없는' 것처럼 취급된 난민들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있는 존재'로서 가시화된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어떻게 난민들과 함께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우선적으로 난민을 왜곡하는 정부의 시선과 태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겠다. '알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면서 야기되는 불안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난민들이 떠나온 국가・지역의 상황이나 문화와 종교 등 잘 모르거나 왜곡된 것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것도 그런 일환일 수 있다. 더불어 오랜 시간 정체되어온 난민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어떻게 운영할지, 인적・물적 인프라가 어떻게 뒷받침되어야 할지 모색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에서 난민들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이야기가 시작되어 난민 문제에 대해 진전된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 이를 위해 난민 문제를 사회적 논의의 범주 바깥으로 밀어내며 논의 자체를 봉합시키는 차별과 혐오가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가 단호하게 대처하길 촉구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응답은 임시적 지원에 그치는 시혜 조치가 아닌, 난민들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인권에 기반한 접근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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