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 후쿠야마가 사회주의 몰락으로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한 뒤로 자본주의는 진격의 거인이 되어 거침없이 달렸다. 체제경쟁의 승리자는 올림픽 구호처럼 더 멀리, 더 많이, 더 빠르게 생산하고 부를 축적했다. 최후의 역사 단계인 자본주의 유토피아는 성장의 거대 용광로가 되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제학자들은 사회주의가 실패한 원인은 인간의 본성인 욕망을 억제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끊임없이 부를 축적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와 딱 들어맞았기에 자본주의의 승리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기업가 정신은 혁신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지속적으로 충족시킨다. 무한생산, 무한소비라는 한 쌍의 바퀴는 늘 전년 회계연도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승자의 저주라는 그림자가 질주하는 자본주의 위에 덮였다.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한 것은 무너진 사회주의가 아니라 지구였다.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 변화하거나 최소한 견제되지 않으면 인류의 미래가 없다는 경고를 지구는 계속해서 인간에게 보내고 있다. 무한 생산, 무한 소비라는 무한궤도는 유한한 지구 생태 자원을 바탕으로 한다. 또 이 무한궤도 속에 은폐된 축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무한 폐기이다. 무한 폐기야 말로 인간 욕망의 결정체다.
새로운 기능과 사양이 매력적으로 보여서, 디자인이 죽여줘서, 멀쩡한 차나 스마트 폰을 바꾼다. 이런 행위는 지구 자원 낭비가 아니라 현대인의 미덕이다. 지적인 이미지의, 딱 봐도 성공한 주인공이 새 상품에 만족하는 이미지가 넘쳐나는 광고 스크린의 뒤에는 폐기물의 거대한 산이 있다.
전기자동차가 친환경 대안 모빌리티로 떠올랐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만들어 내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찬사 속에 매끈한 전기자동차가 도로를 질주한다. 전기자동차 덕분에 온난화의 파국으로 달려가는 지구에 브레이크가 걸릴 것인가? 출퇴근 길 도로를 가득 메우는 내연 자동차들을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면 친환경 녹색혁명이 완수되는 것일까?
이미 한국의 많은 도시들은 특정 지역에서 소화 가능한 차량 대수가 한계에 이르렀음을 말하는 피크 카(Peak Car)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TV 프로그램의 황금시간대 광고는 자동차 소개로 이어지고 있다. 거대 자동차 산업과 도로 인프라 숭배가 결합 된 세계적 현상의 한 단면이다. 인류가 지구를 위하는 길은 내연차로부터 전기차로의 이행이 아니라 자동차 숭배 사회로부터의 탈출이다.
물론 화석연료를 태우는 내연 자동차를 전기자동차로 대체하는 것은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동차의 총 통행량을 줄이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전기자동차를 환경개선의 절대 반지로 여기기도 하는데 드러나지 않은 문제들이 적지 않다. 2020년 12월 8일자 가디언엔 "하얀 기름의 저주; 전기자동자의 더러운 비밀"이란 제목의 글이 실렸다. 기사는 전기자동차의 배터리로 쓰이는 리튬을 채취하기 위해 파괴되는 환경을 고발하고 있다. 전기자동차를 구동하는 이차전지의 핵심 활성 물질인 리튬은 밀도가 낮은 금속이면서 무게 대비 많은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어 전기자동차 산업에 없어서는 안 될 광물이다. 은백색 알칼리 금속으로 하얀 기름이란 별명이 붙은 리튬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2019년 전 세계 리튬 생산량의 절반 이상(55%)이 호주에서 채굴되었다. 칠레(23%), 중국 (10%), 아르헨티나 (8%)가 뒤를 잇고 있다. 모든 생산 국가들이 리튬배터리의 주 수요처인 유럽으로부터 떨어져 있어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이 만만치 않다. 리튬배터리가 각광 받자 유럽에서는 가까운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한 리튬 광산 개발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은 중북부에 향후 10년 동안 채굴 가능한 매장량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대표적 개발지가 되었다. 그러나 리튬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환경파괴는 내연차 대체라는 더 큰 환경적 목적으로 무시되고 있다.
리튬 채굴 문제를 제기하는 미국 로드 아일랜드 프로비던스 대학 리오프란코스((Riofrancos) 박사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비 및 생산 모델이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전기 자동차는 엄청난 양의 채굴, 정제 및 그와 함께 제공되는 모든 오염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인류의 새로운 도약을 약속하는 4차 산업혁명이나 내연 자동차 생산의 중단 같은 아젠다가 지금까지 세계체제를 유지해온 성장 일변도의 자본주의적 생산을 기반으로 한다면 인류는 불꽃을 향해 돌진하는 거대 나방 무리와 다를 바 없는 운명을 마주할 것이다.
모빌리티 연구분야의 대표적 학자인 미미 셸러(Mimi Sheller)는 현대 인류는 일상생활과 상식에 자동차화된 자아에 단단하게 연결된 자동차 감성이 깊게 침투해 있다고 말한다. 거대 자동차 산업, 인프라를 끊임없이 공급함은 물론 각종 제도로 이를 뒷받침 하는 행정부, 광고, 스포츠, 할부금융까지 자동차를 위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협업체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이 자동차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만큼 인간이 자동차에 중독된 사회를 탈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때문에 보통의 노력으로는 탈 자동차 사회로 나아 갈 수 없다.
모빌리티 차원에서 본다면 인간의 이동을 사회 유지에 필요한 필수 이동이나 사회적 이동과 사적 필요에 의한 개별 이동으로 나눌 수 있다. 가능하다면 개별 이동 분야는 자원 소비나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주가 되어야 한다. 또한 집단적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공공교통이 개별 이동 수요의 상당수를 흡수해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설계는 위기가 눈 앞에 펼쳐질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하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모빌리티는 무한정 확대될 수 없다. 도로 공간, 혼잡, 에너지 비용 같은 교통자원의 제약과 서로 다른 모빌리티가 같는 특성의 충돌로 인해 모빌리티를 최대한 확장하는 길로 내달리면 거대한 낭비의 늪에 빠지게 된다. 또 그 대가로 교통혼잡과 온실가스, 환경파괴라는 달갑지 않은 선물을 받게 된다.
한국 사회는 자동차 운행 감축을 위한 계획이 보이지 않는다. 그린뉴딜이 선포되었지만 방점은 온실가스 감축이 아니라 경제성장에 찍혔다. 정치인들은 다가오는 선거를 위해서도 그래프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화살표야 말로 확실한 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 사회는 보아왔다. 성장의 단 열매는 소수에게만 전유 됐다. 대다수 민중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이제는 성장의 떡고물조차 서민들의 몸에는 달라붙지 않는다. 노동을 비웃는 불로소득이 성능 좋은 진공청소기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깨끗이 털어낸다.
성장 이데올로기의 쳇바퀴에서 빠져나올 때 비로소 희망은 보일지 모른다. 자본의 큰 그림을 해체하고 그 계획 속에 줄 섰던 사회적 자본과 사람들을 재 구성 할 때 비로소 21세기의 공리주의가 뿌리 내릴 수 있다. 모빌리티 부분에서의 과제는 분명하다. 자동차 중독에서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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