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순종 한국인"이란 말이 버젓이...혼혈 한국인, 그 차별과 배제의 역사

[프레시안 Books] <인종주의의 덫을 넘어서: 혼혈 한국인, 혼혈 입양인 이야기>

#1

2017년 한국의 국제입양에 대해 6개월에 걸친 심층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 등 외국 군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의 절대 다수가 "아버지의 나라로 보낸다"는 명분으로 국제입양 보내졌다.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전국적으로 조사된 혼혈아동은 5485명인데, 이들 중 4185명이 국제입양됐다.

특히 국제입양된 혼혈아동 중 입양 당시 '고아'(시설 수용)인 아동은 전체의 약 3분의 1 수준인 1396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2789명의 아동은 어머니나 친인척에 의해 가정에서 양육되던 아동들이었다. 홀트아동복지회를 만든 해리 홀트가 당시 부인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 아동들과 생모의 '이별'이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 불쌍한 생모는 사무실에서 발작을 일으켰다오. 아이 엄마는 아이가 미국으로 간 뒤에도 만날 수 있을 것을 기대했으나 인연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는 말에 절망했다오. 참으로 불쌍한 여인이오. 아기는 아직 젖도 못 뗀 상태인데 그 어린 것을 단념해야 한다는 생각에 울고 또 울었소."

'일국일민(一國一民)주의'를 정치적 신념으로 내세운 이승만 정권은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혼혈아동을 국제입양 보내기 위한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아동양호회(대한사회복지회 전신)'를 만들었다. 이승만 정권은 국가정책 차원에서 집집마다 방문하며 혼혈아동을 입양 보내라고 설득했다. 부모와 자식을 억지로 갈라 놓아 국외로 내보낸 뒤 한국은 '단일 민족'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했다. 2007년이 돼서야 교과서에서 '단일 민족'이라는 표현이 사라졌다고 한다. 당시 일반 가정에서 자라던 2789명의 혼혈 아동들이 한국에 남았다면 지금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1950년대 샌프란시스코로 입양된 아동 97명이 특별기를 통해 이송되는 장면. 비행기 좌석을 치운 자리에 종이로 만든 박스를 배치하고 아이들을 눕히고 중간 중간 아이들을 돌보는 위탁모들이 앉았다. ⓒ중앙입양원(홀트아동복지회 제공)

#2

적어도 2020년에 이르러서까지 TV 인터뷰에서 "100% 순종 한국인"이라는 말이 거침 없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올해 11월 3일 치러진 미국 하원의원 선거를 통해 미국 역사상 첫 한국계 여성 연방 하원의원이 탄생했다. 민주당의 메릴린 스트릭랜드(워싱턴 10지구), 공화당의 영 김(캘리포니아 39지구), 미셸 박 스틸(캘리포니아 48지구) 등 3명이다. 이들 중 가장 먼저 당선이 확정된 스트릭랜드 의원은 아버지가 흑인, 어머니가 한국인인 혼혈인이다.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가 항상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르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가 스트릭랜드에 대해 쓴 기사에 달린 댓글의 상당 수는 이름이나 얼굴을 봤을 때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선거 직후 S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김창준 전 연방 하원의원(공화당)은 스트릭랜드 의원에 대해 "외모가 한국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다. 저처럼 100% 한국 사람, 순종이면 더욱 좋겠다"고 말해 비난이 일었다.

#3

스트릭랜드 의원에 대한 일화는 2020년에도 여전히 혼혈 한국인들은 '한국인'으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경계인' 문제에 관심이 많아 탈북자, 조선족, 결혼 이주자, 이주 노동자, 입양인 등 문제를 연구하거나 취재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여행이나 취재를 위한 짧은 기간을 빼고는 한번도 '국외자'가 된 적이 없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에 머물게 된 지난 1년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길게 '국가'라는 경계를 벗어난 기간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경계 밖'의 삶이 주는 불안감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느끼게 됐다. 이민으로 성립된 국가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기대만큼 다양성이 존중 받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2020년 5월부터 미국 전역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인종차별 항의시위는 역설적으로 여전히 인종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이 살지만 섞이기 보다는 인종별로 따로 모여 살아 왔다. 백인이 지배적인 미국(혹은 유럽국가)에서 혼혈 한국인은 '국외자' 취급을 받는다. 한국에서 혼혈 한국인은 백인 혹은 흑인 취급을 받지만, 백인들이 지배적인 미국이나 유럽국가에서 이들은 동양인으로 여겨진다.

혼혈 한국인, 혼혈 입양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인 <인종주의의 덫을 넘어서>는 한국과 미국(유럽) 사회의 시스템화된 인종주의와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혼혈인들의 삶을 증언한다. 이 책은 영문본 <Mixed Korean : Our Stories>를 번역한 책이다.

▲<인종주의의 덫을 넘어서 : 혼혈 한국인, 혼혈 입양인 이야기>, 캐서린 김.체리사 김.소라 김 러셀. 메리김 아날드 엮음, 강미경 옮김, 뿌리의 집 펴냄. ⓒ 뿌리의 집 제공

책 서문(수-지-게이지)에서도 지적했듯이 "혼혈 한국인들의 이야기가 활자화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귀중한 책이다.

"나는 혼혈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공동체 의식을 찾을 수 있겠거니, 한국에 사는 혼혈 한국인들의 경험 중 많은 부분이 서로 비슷하겠거니 기대했다. 하지만 두 가지 추측 다 틀렸다. 특히 인종차별 같은 차별과 관련해서는 비슷한 점이 꽤 있었지만, 폭력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은 매우 다를 때가 많았다."

이 책에 담긴 개인적인 서사는 매우 다양하다. 책을 다 읽고 나는 깊은 슬픔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꼈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수사지만 혈통주의를 강조하는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환영' 받지 못했던, 그래서 오랜 시간 지워졌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슬프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동안 내가 들어온 이야기들과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에는 두 가지가 특히 두드러진다. 다름 아니라 인간의 회복력이 지니는 힘과 지금의 우리를 빚어내기까지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해온 사랑의 기억이다."

#4

한국 사회가 지난 70년 동안 외면했던 또 하나의 한국인들의 '역사'를 어떻게 복원할지, 밀어냈던 과제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아직 확신을 갖고 말하기 어렵다.

2020년 전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인들을 또 하나의 집단적 정체성을 체득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은 그동안 깊이 동경해오던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진국들보다 한발 앞선 대응을 해왔다. 한국이 과학과 정치에 대한 신뢰, 개인주의를 뛰어 넘는 공동체 의식 등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대응을 해오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BTS, 블랙핑크 등 한국 대중가수들의 세계 무대 석권,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등 몇년 전부터 본격화된 'K-컬처'의 성장도 한국인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지점이다.

한국은 20세기에 내전과 냉전을 겪어야만 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에 한국은 '빠른 길'을 택했다. 많은 이들을 '국외자'로 만드는 방식으로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했다.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정체성을 체득해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혈통도 인종도 아닌 근.현대 한반도의 경험에 뿌리를 둔 공동의 역사라고 주장한다...혼혈 한국인들의 이야기는 종종 그 사실이 잊히긴 해도 본질적으로 한국인들의 이야기다. 누구든 한반도를-일부든 전부든-자기 고향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공유된 역사에 대한 교훈을 주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방향성을 제시해줄 것이다.(유리 둘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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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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