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배달 노동자, 중국도 다르지 않다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보이지 않는 노동'의 죽음

디지털 경제의 발전과 플랫폼 노동의 확산

지난 12월 1일, '노사발전재단'에서 주최하는 한·중 온라인 학술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세미나의 큰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중 디지털 전환과 노동'이었다. 주제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코로나 19라는 비상시기가 맞물린 한국과 중국에서 디지털 경제의 발전 현황과 이로 인한 노동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온갖 비대면(un-tact) 생활양식이 확산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 노동인 '플랫폼 노동' 문제가 한국과 중국에서 가장 시급한 노동관계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 2020년 7월에 발표된 국가통계국 자료에 의하면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삼신'(三新, 신산업, 신업종형태, 신사업모델) 경제의 부가가치 규모가 2019년 기준으로 16조 1927억 위안(한화 약 2759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중국 총 GDP에서 16.3%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비중이며, 이와 연관된 플랫폼 회사 직원의 규모도 623만 명에 달한다.

일례로 전자상거래 분야의 대표기업인 알리바바와 중국판 우버(Uber)인 디디추싱((滴滴出行)에서 2019년에 창출한 일자리는 8261만 개로, 이미 플랫폼 관련 노동이 신규 일자리 창출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라 중국에서도 플랫폼 노동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노동관계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도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2017년 3-5월에 북경시 총공회의 '노동운동사와 노동보호연구실'(北京市总工会工运史和劳动保护研究室) 및 '북경시 인터넷업종 공회연합회'(北京市互联网行业工会联合会) 등이 플랫폼 노동자의 권익 현황에 대해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수입의 불안정과 안전문제, 사회보험 미가입 문제, 직업의 불안정성 등이 중요한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새로운 노동형태에 대한 법제도 및 권익보호 시스템 구축, 플랫폼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사회보험 체계의 수립, 플랫폼 노동에 대한 노동감독과 쟁의 조정 및 중재 정책의 개선 등이 노동정책 관련 핵심 현안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 누가 어떤 노동으로부터?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좀 더 본질적인 측면에서 우리에게 오늘날 과연 '노동'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새롭게 요구되는 노동관계와 노동윤리는 어떠해야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한다.

일찍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특히 자동화는 인간을 가장 자연적이고 오래된 '노동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로서는 현실화할 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였겠지만, 20세기 후반 이후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의 확산과 정보처리 능력의 획기적인 발전에 의해 이미 '실현된 미래'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특히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Big Data) 등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명명되는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 진입하면서, 산업구조(경쟁의 원천 및 방식의 변화)와 고용구조(일자리의 양적·질적 변화, 고용형태의 변화), 그리고 생활세계(산업노동과 삶의 균형)가 근본적으로 뒤바뀌고 있다.

그러나 첨단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누구에게나 저절로 공평하게 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더구나 디지털 기술이 장착된 자본의 논리는 단순한 의미로서의 '노동의 종말'이 아닌, '정상적인 고용관계'와 '안정적인 일자리', '임노동에 기초한 사회안전망'의 소멸만을 예고하고 있다.

그렇기에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노동자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착취구조와 노동과정에서의 통제와 감시 및 규율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는 또 다른 형태로 노동자를 속박하는 굴레가 되고 있다. 즉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 노동형태인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힘과 의지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독립계약자 혹은 개인사업자라는 미명하에 노동자성이 제거되는 '탈노동자화'의 벼랑에 내몰린 것이다.

플랫폼 배달업, '보이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의 질주

이 벼랑 끝에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더욱 수요가 증폭된 배달 플랫폼 종사자, 즉 '배달 노동자' 혹은 '호출 노동자'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일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일하고, 일한 만큼 수입을 보장'받는다고 선전되는 배달 플랫폼 노동자들은 오늘도 일감(call)을 얻기 위해 죽음의 질주를 한다. 이들은 임금이 아닌 건당 수수료(전국 평균 2960.6원)를 받기 때문에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일한다.

실제로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노조위원장에 의하면 2016부터 2018년까지 산재 사망사고 1위가 배달 노동자였다고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배달대행 플랫폼 기업과 배달대행사가 맺는 계약서에 콜을 받은 후 음식점까지 15분 이내에 도착하고, 손님에게는 20분 이내에 도착해야 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일도 허다하다고 말한다.

중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7년 상반기 상하이에서는 2.5일마다 한명씩 배달 노동자가 교통사고로 숨졌고, 교통법규 위반 사례도 1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들의 '예정된 사고'를 책임져주는 법률도 기업도 존재하지 않는다. 플랫폼 기술과 자본의 결합으로 포장된 '자율적인 독립계약자'인 배달 노동자들에게 '노동자로서의 권리'는 거세되었으며, 기업의 사용자로서의 책임도 이와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한국비정규노동단체네트워크(의장 이남신)가 실시한 배달 노동자 실태조사에 의하면 배달 노동자의 전국 평균 근무 일수는 5.7일이고, 평균 배달 시간은 9.6시간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콜을 받기까지 기다리는 대기시간과 이동시간은 어디에서도 보상받지 못하는 그림자 노동(shadow labor), 즉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취급된다.

또한 배달 노동자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디지털화된 알고리즘에 의해 통제 및 감시를 당하면서도 이러한 착취구조는 철저히 은폐되어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근대의 노동규율은 '테일러주의', 즉 노동자의 움직임, 동선, 작업 범위 등을 표준화하여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다시 말해 측정가능한 단위로 노동을 세분화하여, 고용주가 노동과정을 과학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규율 체제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배달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아닌,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해 출퇴근 시간 및 휴게시간, 대기지역, 배송시간, 근무태도 등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디지털 판옵티콘'에 갇혀있다. 그리고 이 자료가 빅데이터로 저장되어 점수화되기 때문에, 배달 노동자들은 호출 배제나 감소 등의 각종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비대면 형태의 착취구조와 노동과정에서의 통제 및 규율화에 잠식되고 있다.

이처럼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장밋빛 환상은 이미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핏빛 죽음으로 더욱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보이지 않는 노동의 죽음'을 막기 위한 사회적 대안 마련에 우리 삶과 노동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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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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