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영국과 중국의 "황금시대"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순조롭던 양국 관계, 어쩌다 이렇게 됐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영국은 최근까지 서구권의 그 어느 국가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2015년에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태평양 기반 개발은행인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 (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에 G7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참여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국빈 자격으로 영국을 방문하여 영국 고속철도 HS2 및 민수용 원전 건설 등 총 460억 달러(한화 약 50조 원)에 달하는 투자계약을 체결하며 경제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기도 했다.

특히 2019년 7월에 새로 취임한 보리스 존슨 총리는 취임 이전부터 본인이 친중파임을 밝히며, 중국이 주도하는 유라시아 경제벨트 개발계획인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BRI)에 영국 정부와 기업이 참여할 기회를 얻길 바란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정도로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이같은 양국의 행보 때문에 "황금시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양국 관계였지만, 2020년에 들어서면서 이들 관계는 극도로 악화되어 영국 정부가 대중국 제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중국이 그에 대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경고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홍콩을 둘러싼 영국과 중국의 갈등

최근 양국 관계 악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2019년 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홍콩 시위다.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1984년 홍콩반환협정에 따라 고유의 정치체제를 50년간 유지한다는 '일국양제'를 조건으로 1997년 7월 1일 중국에 이양됐다. 영국은 반환협정의 서명국으로서, 그리고 홍콩 내 30만명의 재외영국인(British National Overseas, BNO여권 소지자)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에서 홍콩 문제에 대해 계속 주시해왔다.

이 때문에 2019년 초 중국으로의 범죄인 인도를 가능하게 하는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인들의 시위가 시작되고 홍콩 당국이 이를 물리적으로 진압하자, 같은 해 7월부터 영국이 중국의 홍콩정책을 비난하고 중국은 영국의 내정간섭이라고 맞받아치는 등 설전이 오가며 양국의 관계도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하였다.

홍콩 시위 문제로 이미 긴장 상태이던 양국관계는 중국이 홍콩 보안법을 도입하겠다고 공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2019년 11월 홍콩 구의회 선거에서 민주파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반중 시위가 2020년까지 이어지자, 2020년 4월부터 중국 정부는 중국이 홍콩 치안 및 안보 문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는 국가보안법을 홍콩 정부가 통과시키도록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중국이 홍콩의 치안 문제에 간섭하게 된다면 이는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조건이었던 일국양제를 사실상 부정하고 홍콩 반환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라며 강력하게 비난했으며, 보리스 존슨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2020년 7월 1일 홍콩 내 재외영국인(BNO) 여권 소지자 30만 명과 BNO여권 신청 가능자 260만 명에 대해 영국시민권 취득 자격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11월에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킨 데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을 포함한 중국 주요 인사들에 대한 제재를 고려한다는 발표가 나오는 등 홍콩 문제에 관해 영국은 대중 공세 수위를 계속 높이고 있다.

영국에서 주목하는 위구르족 집단 수용소 문제

영국과 중국간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사건은 홍콩 시위만이 아니다. 2018년 중국이 신장위구르자치구 일대에 다수의 집단수용소를 건설하고 위구르족을 감금시켜 강제로 개종을 시도하면서 중국 국가주의 사상을 주입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영국은 인권을 대외정책의 주요 아젠다로 삼고 있는 국가이고, NATO 일원으로 코소보 전쟁 등 인도적 위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한 역사가 있는 나라인 만큼 중국의 인권 학대 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었다.

영국은 인권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공유하는 서구권 주요 국가들과 함께 이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해왔다. 2019년 7월 영국은 22개국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유엔인권위원회(UNHCR)에 중국의 위구르족 학대를 비난하며 "재교육 캠프" 폐쇄를 촉구하는 항의 서한을 보냈으며, 2020년 10월 6일에는 미국,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함께 중국의 홍콩과 위구르족 탄압을 규탄하는 공동 성명을 발의하기도 하였다.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로 양국간 대립이 극심하던 2020년 7월 20일에는 위구르족 학대를 이유로 홍콩과의 범죄인 인도협약을 중단하는 등, 영국은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중국의 인권 학대 문제에 대한 비난하고 있다. 영국 의원들 중 일부는 영국 내 위구르족 단체가 대법원에 청원을 하여 중국이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판결을 얻을 경우 중국과의 교역을 중단하도록 하는 법안을 논의하는 수준에 이를 정도로 영국 내 중국에 대한 여론은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영국의 대중국 노선 전환과 한국의 과제

홍콩 시위와 위구르족 강제수용 문제가 영국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면, 영국이 화웨이의 5G 통신망 참여를 전면 배제하고 2027년까지 모든 화웨이 장비를 철거하기로 한 결정은 영국의 대중국 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영국이 2020년 1월 자국 5G 통신망 구축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기 전부터, 미국은 영국의 화웨이 도입 결정이 미영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강하게 압박해왔었다.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가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지만,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상승하고 국가사이버안보센터가 5월에 화웨이 장비가 안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7월 화웨이 장비 도입 철회로 선회하게 되었다.

영국이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로 강도높은 대응을 하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정보당국인 MI5, MI6는 올해 4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건의를 한 상태이고, 실제 정책에 반영되기 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영국 도미니크 랍 외무부 장관이 6월 2일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첩보동맹)보다 더 확대된 반중국 동맹이 필요하다"라고 한 발언을 볼 때 영국은 주요 민주주의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대중국 견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구상이 국제사회에서 지지를 얻게 된다면 한국 역시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11월 21일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에게 필요한 중국 전략"이라는 기사를 통해 기존 파이브 아이즈에 유럽연합, 일본, 한국이 참여하는 반중국 동맹 구상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새로운 행정부가 출범하는 동맹국 미국과 최대 교역국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균형외교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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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중국문제특성화' 대학을 지향하면서 2013년 3월 설립된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처하고, 바람직한 한중관계와 양국의 공동발전을 위한 실질적 방안의 연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산하에 한중법률, 한중역사문화, 한중정치외교, 한중통상산업 분야의 전문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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