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할 권리 막는 '후진적' 노동법, 한국 무역 발목 잡는다"

[토론회]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정부 노조법 개정안 평가와 한-EU FTA 분쟁 전망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보장, 강제노동과 아동노동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ILO(국제노동기구)의 8개 기본협약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최소한의 노동 기준이다. 이 중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노동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그 오명이 '세계 FTA 사상 최초로 노동 조항을 위반한 국가'라는 또 다른 불명예로 이어질지와 관련한 판단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ILO 기본협약 비준 지연이 한-EU FTA 노동 조항 위반인지에 대한 전문가 패널 보고서가 11월 하순경 나올 전망이기 때문이다. 한국, EU, 제3국 각 1명씩 3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의 심리는 무역 분쟁 해결 절차의 최종 단계다.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도 급하게 움직였다. 지난 7월에는 국무회의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안과 함께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노조법) 등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개정안은 두 달간 입법예고 기간을 거쳐 9월 정기국회에 제출됐다.

국회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정부 입장에 대한 여당의 동조는 물론이다. 지난 9일에는 국민의힘 환경노동위원회 간사인 임이자 의원도 "ILO 기본협약 비준을 더 늦추면 상당히 나쁜 국가라는 이미지가 남고, 무역 제재 압박도 심각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ILO 기본협약 비준 논의의 중요한 기준점이 될 정부의 노동관계법 개정안은 노동과 관련한 무역 분쟁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내용을 담고 있을까. 그리고 한국이 전문가 패널 심리에서 패소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를 짚어보는 자리가 열렸다. 15일 서울 종로 청년재단에서 열린 '노조 할 권리와 ILO 핵심협약 비준'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은 정부의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국제노동기준에 비춰볼 때 아쉬움이 남는다고 평했다. 11월 한-EU FTA 전문가 패널의 결정이 향후 한국의 무역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날 토론회는 양대노총과 ILO노동자활동지원국이 주최했다.

▲ 15일 서울 종로 청년재단에서 열린 '노조 할 권리와 ILO 핵심협약 비준' 토론회. ⓒ프레시안(최용락)

EU의 문제 제기에 비춰본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

이번 무역 분쟁에서 EU는 한국이 기본협약 비준을 지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 노동조합법(노조법) 일부가 한-EU FTA 노동 조항에 명시된 ILO의 '1998년 노동에서의 기본적 원리와 권리에 대한 선언(1998년 선언)' 준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8년 선언'은 ILO 회원국에 기본협약 비준 여부와 관계없이 결사의 자유 보장,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보장, 강제노동 금지, 차별 금지, 아동노동 금지 등을 존중하고 촉진하고 실현할 의무를 부과한 문서다.

구체적으로 EU가 전문가 패널에 심리를 요청한 한국 노조법 조항은 △ 노조법상 노동자를 좁게 정의해 해고자, 실업자, 특수고용(특고)노동자 등의 노조 할 권리를 막은 제2조 제1호 △ 해고자, 실업자 등의 가입을 허용한 노조를 불법노조로 규정한 제2조 제4호 라목 △ 조합원 중에서만 노조 임원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한 제23조 제1항 △ 노동조합 설립신고증 교부 과정에서 행정관청의 반려 권한 등을 규정한 제12조 제1항 내지 제3항 등이다.

EU가 문제 삼은 노조법 조항을 중심으로 정부 개정안을 보면, 우선 제2조 제1호와 관련해 특고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은 없다. ILO는 기본협약 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와 관련한 판정 해설에서 특고노동자의 노조 할 권리 보장을 명시했다.

'정부 노조법 개정안 평가'를 발제한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럽연합은 플랫폼 노동자와 같은 특고노동자의 단체교섭을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고 ILO는 이미 2012년에 화물차 기사와 같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단결권 보장을 권고했다"며 "한국 대법원도 특고노동자를 노동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정부도 특고노동자에게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발급하고 있지만 사용자가 특고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문제 삼아 소송을 하면서 장기간 교섭을 거부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입법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노조를 만들면 행정관청에 신고해야 하고 행정관청은 신고서의 보완을 요구하거나 이를 반려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노조법 제12조와 관련한 법 개정도 없다. ILO 기본협약 87호 2조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자유롭게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노조설립신고제도가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어온 점을 고려하면 신고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도 들지만 그래도 이 제도를 유지한다면 출샌신고제도나 혼인신고제도 수준으로 운영되는 게 본래 신고제도의 의미에 맞다"며 "적어도 반려제도라도 삭제하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 개정안이 EU의 문제 제기에 반응한 부분도 있다. 제2조 제4호 라목을 삭제하는 방식으로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것이다.

또, 정부 개정안은 제23조 제1항과 관련해 노조가 조합원 등 자격과 무관하게 스스로 정한 규약에 따라 노조 임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게 했다. 단, 이는 EU의 요구에 완전히 부응한 것은 아니다. 기업별 노조 임원은 해당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만 할 수 있도록 제한했기 때문이다.

EU의 문제 제기와는 별개로 정부 개정안에는 △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 생산시설 및 주요 업무시설에 대한 전부 또는 일부 점거 금지 등도 담겼다. 정부가 경영계의 요구를 반영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박 교수는 "개인적 견해로 볼 때 정부 개정안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최소한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럼에도 몇 가지 점과 관련해서는 ILO 기준과 맞지 않거나 후퇴하는 모습이 보이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했다.

전문가 패널이 EU 손 들어주면 한국 무역에 장기적 악영향 있을 수도

정부가 지난 7월 발표한 노조법 개정안은 EU의 문제 제기나 ILO가 제시하는 국제 노동기준에 비춰보면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럼 오는 11월 전문가 패널이 EU의 손을 들어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국제통상 전문가인 남궁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우선 "한-EU FTA 노동조항에는 조항을 어겼을 때의 구제수단으로서 무역제재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며 "한-EU FTA에 근거한 무역 제재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 위원은 EU의 무역 제재가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남 위원은 "EU는 노동기준, 환경기준과 경제적 사안 혹은 국제무역 제도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며 "예를 들어 EU는 임금 비용을 낮춰 정상가격을 상당히 왜곡한 국가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와 주요 국제조약을 준수하지 않는 경제적 주체를 공공조달에서 제외하는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 위원은 "한국이 한-EU FTA 노동조항을 지속적으로 위반하면, EU는 반덤핑, 공공조달 제도를 우리에게 부담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할 정치적 동기를 갖게 될 것"이라며 "한-EU FTA 노동조항 위반과 무역, 경제적 제재가 완전히 무관하다는 주장은 다소 단정적인 생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 위원은 이어 EU와의 무역 분쟁 결과가 다른 국가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남 위원은 "우리가 미국, 캐나다와 각각 체결한 FTA에서는 노동조항 위반이 궁극적으로 '특혜관세 철회' 혹은 (FTA 위반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한) '금전적 평가액' 부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번 전문가 패널의 심사결과는 다른 FTA 노동조항 관련 분쟁의 발생이나 결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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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락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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