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이 17%p 앞서지만 "트럼프 아웃" 말할 수 없는 이유

[2020 미 대선 읽기] '룰 브레이커' 트럼프와 혼돈의 미국 대선

"나는 사람들이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이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투표에서 300만 표 차이로 패했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 승리했고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해냈고, 또 다시 할 수 있다. 따라서 바이든 후보(이하 직함 생략)가 이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일 트럼프가 연임하는 날이 올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투표를 하는 것 만이 아니라 주변에 투표를 하지 않은 사람들을 하루에 5-10명씩 찾아내서 투표를 독려해야 한다."

미국의 진보적 다큐멘타리 감독이자 활동가인 마이클 무어가 지난 12일(현지시간) MSNBC와 인터뷰에서 2020년 대선을 20여일 앞둔 시점에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 말했다. 무어는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예상할 때 "트럼프가 이길 것"이라고 예측해 결과를 맞췄다.

지난 달 29일 1차 대선후보 TV토론, 2일 트럼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등을 이유로 최근 바이든과 트럼프 사이의 지지율 격차는 다시 두 자릿수로 벌어졌다. 지난 13일에는 바이든의 지지율이 57%, 트럼프가 40%로 두 후보간 격차가 17%포인트까지 벌어진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영국 <가디언> 보도) 지난 번 대선에서 근소한 표차로 트럼프가 클린턴을 이겨서 선거인단 선거를 이길 수 있는 발판이 됐던 아이오와,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니아, 플로리다, 노스캐롤라이나 등 주요 경합주의 여론조사에서도 바이든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만으로는 트럼프의 역전을 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현재 미국에서는 누구도 바이든의 승리를 자신있게 말하지 못한다.

'규칙 파괴자' 트럼프가 노리는 '붉은 신기루' 현상...대선 당일 플로리다 등 경합주 결과 중요

'룰 브레이커'인 현직 대통령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 때문이다. <가디언>은 13일 "대선 개표 초반에 트럼프 지지자들 표가 몰려 앞서가는 상황을 놓고 트럼프가 대선 승리를 선언하는 이른바 '붉은 신기루'(Red Mirage) 현상을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0%는 트럼프가 선거에서 져서 불복할 것이라고 답했다.

현재 바이든이 크게 앞서고 있지만, 바이든 지지자들은 우편투표를 선호하며 실제 우편투표를 통해 투표에 참여한 반면,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우편투표 사기론"을 주장하면서 직접 투표하라고 독려하기 때문에) 선거 당일 투표장을 찾아 직접 투표하는 것을 선호한다. 때문에 당일 개표 결과 트럼프가 앞서나갈 수 있고, 이를 근거로 트럼프가 승리를 선언한다. 그 이후 아직 개표하지 않은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하면서 개표를 중단시키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대선 당일(11월 3일) 밤 주요 경합주의 결과, 특히 선거인단 숫자가 많은 펜실베니아(20명)와 플로리다(29명)의 결과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이든은 민주당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워싱턴 등에서 이미 승리가 확정적이기 때문에 22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상태라고 <더 힐>이 13일 보도했다. 따라서 44명의 선거인단을 추가로 확보하면 대선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는 27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선거 당일 바이든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팬데믹 상황에 대규모 유세 재가동...경합주 들쑤시기

하지만 여기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다. 항생제 칵테일, 새로 개발된 치료제 등 수억원 어치의 '황제 치료'를 통해 코로나19를 조기에 치료한 트럼프는 이번주부터 플로리다, 펜실베니아, 아이오와 등 경합주를 종횡무진하며 대규모 유세를 벌이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확진 소식을 듣고 마스크도 쓰지 않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무시한 채 유세장에 몰려든 열성 지지자들은 "유에스에이", "4년 더"를 외치며 트럼프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는 "화상토론은 안한다"고 자기가 파토를 놓았던 2차 TV토론일인 15일 저녁에 NBC방송과 타운홀 방식의 토론회를 갖는다고 밝혔다. 당초 TV토론을 주최하기로 했던 ABC방송은 이날 토론 참석 의사를 밝힌 바이든과 타운홀 방식의 토론회를 갖기로 했는데, 트럼프가 일종의 '맞불'을 놓은 셈이다. 시청률이 조금이라도 높게 나오면 트럼프는 평소에 지지자들에게 주장하던 "여론조사 사기론"의 좋은 근거를 하나 얻게 되는 셈이다.

'트럼프 아웃'을 말하기 힘든 첫번째 이유 : "백인 무장세력들은 자신의 우두머리가 백악관에 있다는 걸 안다"

마이클 무어는 12일 인터뷰에서 미시간 주지사 납치와 살해를 모의하다 체포된 극우 성향의 무장조직과 관련해 "트럼프 정권이 이들의 세력 확장에 도움이 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무어는 과거에 극우 무장세력을 인터뷰한 바 있다.

"당연하다. 그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의 대장이 백악관에 앉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트럼프는 1차 TV토론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나 무장집단을 비난할 수 있냐"는 질문에 이 요구를 거부한 뒤 느닷없이 '프라우드 보이즈'를 거명했다. 트럼프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즈'를 향해 "물러나서 대기하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을 진의가 무엇인지 논란이 일어나는 동안 '프라우드 보이즈'의 가입자 수가 폭증했다고 한다. 트럼프 지지자 중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트럼프의 말을 듣고 움직인 것이다.

또 지난 8일에는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를 납치, 살해하는 것을 모의하던 '울버린 감시단' 소속의 13명의 용의자가 FBI에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이들은 휘트머 주지사의 코로나19 관련 봉쇄정책에 불만을 품고 납치,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또 이들은 마찬가지로 강력한 봉쇄정책을 폈던 랄프 노덤 버지니아 주지사도 납치할 계획이었다고 13일 FBI가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 4월 경제재개를 놓고 민주당 주지사들과 갈등을 빚을 때 트위터에 "미시간을 해방시켜라!", "버지니아를 해방시켜라!"라는 글을 올려 지지자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선거 불복 시나리오는 이들 무장세력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대선 직후 선거 불복을 선언하면 민주당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 뻔하고, 양측 지지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 경우를 대비해 무장세력을 향해 "대기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언론 등을 통해 언급되는 '최악의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트럼프 아웃'을 말하기 힘든 두번째 이유 : '트럼프 선거 불복'도 '트럼프 셀프 사면'도 "NO"라고 말하지 못하는 6번째 보수 대법관 지명자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경우 생각해볼 수 있는 선택지는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사망한 직후 빨리 공석을 채워하는 이유로 "선거 이후 소송 가능성"에 대해 직접 말했다.

현재 상원에서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지명자는 강경 보수성향의 판사다. 그가 대선 전에 임명되면 대법관 구성은 보수 6 대 진보 3으로 보수 절대 우위의 대법원이 된다.

미국 보수 법률계에서 칭송 받는 스칼리아 전 대법관의 재판연구원 출신이기도 한 배럿은 '문언(법전)주의자'임을 자처한다. 재판관은 어떤 정치적 성향도 가져서는 안되며 오로지 법전에 쓰여진 대로만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럿은 청문회에서 '문언주의자'임을 내세워 오바마케어(ACA), 낙태, 선거 등 온갖 민감한 질문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피해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법의 아주 근본적인 정신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 배럿은 자신을 지명한 트럼프의 위법 가능성에 대해서는 결코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평화적인 정권 이양을 하지 않을 경우, 대선 자체를 연기할 경우, 자기 자신의 과거 위법 행위에 대해 사면권을 발휘할 경우 등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배럿은 '법의 잣대'를 공정하게 들이대지 못했다.

대선이 불과 21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대법관 인사청문회를 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를 대선을 떼어놓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아웃'을 말하기 힘든 세번째 이유 : '샤이 트럼프'는 트럼프가 싫지만 바이든은 못 미더운 사람들이다

2016년 트럼프 당선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이들은 소위 '러스트벨트'라고 불리는 미시간,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등 공업지대에 밀집한 백인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기대와 달리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민주당(오바마) 정부에 실망해 '성공한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를 밀었다. 원래 민주당이 우세하던 이들 지역에서 트럼프가 1-2%의 아주 적은 표 차이로 승리한 것이 선거인단 선거에서 이기는 원동력이 됐다.

CBS는 14일 이들 지역 중 하나인 미시간에서 상당수의 유권자들이 아직 트럼프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이유를 분석했다. 광신도에 가까운 열성 지지자들과 달리 이 지역의 상당수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언행이 싫다"고 말한다. 2020년에도 트럼프를 찍을 것이라는 유권자들(전체 유권자의 46%) 중 34%는 "트럼프의 행동이 싫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은 "미국 경제가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66%)하기 때문에 "경제정책에 있어서 더 잘 할 것이라고 생각"(88%) 되는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이들 중 바이든이 경제적으로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은 1%에 불과했다.

결국 이들은 트럼프의 정치 행태에 대해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장 눈앞의 문제인 경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바이든(내지는 민주당)이 못 미덥기 때문에 트럼프를 다시 찍겠다는 생각이다.

▲ 트럼프 대통령이 14일 아이오와에서 유세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016년에 비해 희망적인 지표들 : 바이든의 신뢰도-호감도, 일부 백인 유권자들의 트럼프 이탈

2016년 상황과 매우 유사하지만 민주당 입장에서 그때에 비해 낙관할 만한 지점들도 분명히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사전투표에서 높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상황은 결과적으로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보여진다.

또 클린턴과 달리 바이든은 트럼프에 비해 훨씬 "신뢰할 수 있는 후보"로 유권자들에게 인식된다. 2016년 당시 클린턴을 신뢰할 수 있는 후보라는 답변은 41%로 트럼프(45%)에 비해 낮았지만 2020년 현재 바이든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58%로 트럼프(33%)에 비해 상당히 높다. 바이든의 호감도(53%)도 클린턴(42%)에 비해 훨씬 높다.

2016년 선거 당시 트럼프에게 쏠렸던 백인 유권자들 중 고학력자, 여성 등 일부 계층이 이번 선거에서는 바이든에게 돌아섰다. 트럼프는 2020년 현재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2%p, 대졸 미만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 18%p만 앞서고 있다. 2016년에 트럼프는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13%p, 대졸 미만 백인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30%p 앞서는 등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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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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