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보다 더 중요하다는 美대법관 청문회서 나온 '조지 부시'의 추억

배럿, '법전주의자' 방패로 오바마케어-낙태-선거 등 답변 거부...트럼프 "잘한다"

에이미 코니 배럿 연방대법관 지명자는 13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에서 진행된 인사청문회에서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논란과 관련해 자신은 백악관이나 상원으로부터 어떤 요구도 받지 않았다면서 법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념을 강조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 의심을 하고 있는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 의료보험 법안)나 임신 6개월 이전의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배럿 대법관 지명자(이하 직함 생략)는 "법관은 개인적인 입장을 말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면서 법에 쓰인 대로 법을 해석하는 '법전(문언)주의자' 입장임을 내세워 답변을 회피했다.

배럿은 전날 청문회 모두 발언에서도 "법원은 대중의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거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고안된 것이 아니다"라면서 "정책결정과 가치 판단은 선출된 정치권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정치적 중립' 입장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에서 12일 배럿이 결국 대법원 판결로 승패가 갈린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공화당 후보였던 조시 W. 부시 대통령 측에서 플로리다주로 파견했던 법조인 중 한명이라며 '전력'을 문제 삼고 나섰다.

"케이크는 이미 구워졌다"...공화당 입장에선 대선보다 중요한 배럿 인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대선이 불과 3주 밖에 안 남은 시점에서 인사청문회를 강행하면서까지 배럿 인준을 밀어붙이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서는 이길 가능성이 희박해진 대선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트럼프는 이미 지난 5월부터 '우편투표 사기론'을 주장하며 선거 불복 가능성을 시사했고, 최근에는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선거 패배시 '평화적 정권 이양'에 대해 거부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이길 경우 선거 불복을 선언하고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고, 트럼프가 직접 이를 거론하기도 했다.

둘째, 배럿이 트럼프와 공화당의 계획대로 대선 전인 10월 29일께 상원 본회의 인준표결을 통과해 대법관으로 임명되면 연방대법원 구성은 '보수 6 대 진보 3'으로 보수 절대 우위가 된다. 그러면 앞서 거론한 오바마케어, 낙태, 총기 소유, 이민, 동성애자 등 소수자 인권 문제 등 진보와 보수가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이슈에 있어 보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 보수 입장에서 어쩌면 11월 대선보다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또 인사청문회를 통해 보수적 유권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공화당의 벤 사스 상원의원은 <애틀랜틱>과 인터뷰에서 배럿 인준이 대선 못지 않게 보수진영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공화당 관계자는 "케이크는 이미 구워졌다"며 공화당은 대선 전 배럿 임명을 무슨 일이 있어도 성사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배럿, 로버츠, 캐버노...대법관 3명이 2000년 대선에 개입했다"

배럿은 청문회에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에 대해선 '법전주의자'임을 강조하며 명확한 답변을 안했지만, 배럿은 앤터닌 스칼리아 전 연방대법관의 재판연구원을 지내는 등 보수 법조계의 지원을 받고 성장한 인물이다. 배럿은 청문회에서도 자신이 스칼리아의 가르침인 '법전주의'를 따르고 있다고 강조했고, 스칼리아는 배럿에 대해 "가장 영특한 제자"라는 평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칼리아는 유명한 낙태 반대론자이기도 하다.

배럿은 선거 관련한 질문에 '법관의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2일 배럿이 2000년 대선에서 공화당 부시 법무팀의 일원으로 플로리다주에 파견됐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28세였던 배럿은 대선에서 결정적인 역사의 현장인 플로리다주에서 양당 후보들간에 불거진 소송에서 부시 후보쪽 법률가로 일했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엘 고어가 맞붙었던 2000년 대선은 고어가 부시에게 대중투표에서 54만여 표 이겼지만, 선거인단 선거에서 고어가 패배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선거 결과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일었다. 고어 쪽에선 플로리다주 일부 지역의 재검표를 요구했고, 부시 측은 재검표를 막으려고 지지자들을 동원해 난동을 부리는 등 선거 이후 한달 동안 승자를 확정짓지 못하고 혼란이 계속 됐다. 결국 대법원에서 재검표 불가 결정을 내리면서 부시 쪽 손을 들어줬고, 고어는 패배를 인정했다. 이처럼 미국에서 '최악의 선거'로 평가받았던 2000년 대선 당시 배럿은 플로리다주 마틴 카운티 공화당 부재자투표를 둘러싼 소송에 파견됐으며, 이 사건에서 관련 변호사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다고 WP는 보도했다. 배럿은 청문회를 앞두고 상원에 보낸 답변서에 2000년 대선 관련 연구와 브리핑 지원을 위해 1주일을 보냈다고만 답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2000년 대선을 둘러싼 법적 소송에 현재 대법원장인 존 로버츠 대법관, 브렛 캐버노 대법관도 부시 법률팀으로 관여했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대선 전에 배럿이 임명되고 트럼프가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승복하지 않고 대법원으로 들고 갈 경우, 9명의 재판관 중 3명이 2000년 대선 때 이미 개입했던 재판관으로 채워진다는 의미다.

한편, 트럼프는 이날 펜실베이나로 유세를 떠나기 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배럿 청문회와 관련해 "배럿이 놀라울 정도로 잘하고 있다"며 매우 흡족함을 표했다고 <더힐>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배럿 대법관 지명자ⓒ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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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홍기혜

프레시안 편집·발행인. 2001년 공채 1기로 입사한 뒤 편집국장, 워싱턴 특파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한국의 워킹푸어>, <안철수를 생각한다>, <아이들 파는 나라>, <아노크라시> 등 책을 썼습니다. 국제엠네스티 언론상(2017년), 인권보도상(2018년), 대통령표창(2018년) 등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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