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일침 "생명 앞에서 가운 벗는 것은 이기주의의 극치"

[안종주의 안전사회] 의사 파업, 지금 당장 멈춰야 할 이유

대한민국은 지금 코로나 전쟁 중이다.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를 즉각 시행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경제와 대량 실업, 시민 불편 등을 걱정해온 정부는 2.5단계란 중간 지점을 선택해 30일부터 한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카페, 식당 등 직격탄을 맞은 곳에서 아우성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죽을 지경인데 의사들은 오는 7일부터 전면 파업을 벌이겠다고 정부를 향해 으름장을 놓고 있다. 지켜보는 국민은 불안하다. 의사 파업은 국민의 건강과 생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증 환자와 암환자 등을 비롯해 건강 상태가 심각한 환자와 그 가족들의 불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부 병원노조를 비롯해 여당과 일부 의료인, 환자단체 등 각계각층에서 파업을 벌이고 있는 전공의와 파업을 예고한 의사집단에 대해 이들이 실제로 파업을 벌인다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의사들이 정치적 파업을 중지할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은 사람을 살려야 할 때" 각계 파업 철회 요구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31일 "지금은 사람을 살려야 할 때"라며 의사들의 파업 중단을 호소했다. 미래통합당도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집단 휴진 중인 의사들에게 파업 중단을 권고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충북대학교병원지부는 "(의사 파업은) 밥그릇 싸움일 뿐"이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며 강하게 전공의 파업을 비판했다. 16개 농민단체로 이뤄진 한국농업인단체연합은 31일 성명서를 내어 "의료계는 파업을 철회하고 열악한 의료 서비스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농촌 주민들의 고통을 해소하는데 함께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공의가 벌이고 있는 파업과 의사들이 하려고 하는 전면파업은 노조를 결성한 노동자들의 파업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해 "의사파업은 노동쟁의조정법상 법적인 요건을 충족한 파업으로 볼 수 없다"고 명토 박았다. 정부 정책에 대한 항의 표시 성격의 '정치적 파업'이라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다.

우리 사회는 20년 전인 2000년에도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의 정치적 전면 파업을 장기간 겪은 바 있다. 당시 의원과 병원, 대학병원 등 전국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일하던 의사들이 몇 달씩 세 차례에 걸쳐 무기한 파업을 벌였다. 당시 국민은 엄청난 불편을 겪었고 불안을 경험했다. 이번 의사파업 소식을 듣고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분명 제법 있을 터이다.

2000년 파업 의사 달래려 의료수가 대폭 인상, 건보 부도

IMF를 힘들게 빠져나온 직후의 김대중 정부는 파업 의사들을 달래면서 의약분업을 추진하기 위해 건강보험수가를 대폭 올려주었다. 그 바람에 건강보험재정이 바닥나는 비상 상황이 생겼다. 기업으로 치면 부도가 난 것이다. 결국 은행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꾸어 이를 메꾸었다. 그 여파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물러나고 한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 임직원들은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대폭 깎인 월급 내지는 동결된 월급을 받아야만 했다.

당시 우리 사회는 의사파업을 지지하는 쪽과 비판하는 쪽으로 각각 갈려 격렬한 대립을 했다. 의사 사회 내부에서도 진보적 성향의 의사들이 의약분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이유로 의사협회한테서 제명당하는 일도 벌어졌다.

파업을 푼 뒤에도 상당 기간 갈등과 대립, 반목의 상처가 아물지 못했다. 의사들에 대한 국민 신뢰는 추락했다. 의사집단은 그 뒤 오랫동안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리고 또 그때의 역사를 잊고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정치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의약분업 당시 의사파업을 그 뒤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성찰하지는 않았다. 의료계에서도, 정부도, 학계도, 시민단체도 일부 백서 내지는 보고서 성격의 책을 펴내거나 논문으로 정리한 것이 없지는 않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가운데 의사파업이 부당함을 정면으로 다루고 한국 의사들의 행태를 폭로한 책 <한국 의사들이 사는 법>이 2002년에 나와 잠시 의사파업을 성찰하는 계기가 됐다. 이 책의 서문에서 필자는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싸우는 의사'가 아니라 '치유하는 의사'가 되어야"

"(의약분업 때의 의사파업을 계기로) 이제는 '싸우는 의사'가 아니라 '치유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 '의사 먼저'가 아니라 '환자 먼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런 자세와 철학이야말로 '역지사지'의 자세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과 조화의 철학이다. 이런 자세와 철학만이 위기에 놓인 한국 의료를 살릴 수 있다. 이런 자세와 철학을 지닌 의사는 국민을 건강하게 하고 나라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의사야말로 인생에서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헛된 꿈이 되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코로나가 대유행을 할 때 달려간 의사들을 보고, 그리고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일부 의사들을 보고 그래도 한국 의사들에게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다. 지금은 그 희망을 잠시 접는다.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의사들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의사들도 많을 것이다. 선배들의 옛 시절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는 젊은 의사들이 있을 것이다.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의대 정원을 더 늘린다는 정책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의사들도 많을 터이다. 방향은 크게 반대하지 않지만 그 시기에 딴죽을 걸고 싶은 의사들도 있을 터이다. 건강보험 수가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적정 의사 수와 적정 건강보험 수가와 같은 것은 '고르디우스 매듭'처럼 풀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단칼에 끊어버릴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의약분업 시행 당시 많은 의사들은 우리나라에서 완전의약분업이 도입되면 우리 사회에 재앙이 오고 한국의 의료가 나락으로 빠질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 누구도 의약분업의 실패를 말하지 않고 있다. 의사들의 판단과 예측이 틀렸다는 증좌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정책이 우리 사회에 어떤 긍정적 내지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지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다. 아직 그 정책의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잉태조차 하지 못했다. 옥동자를 가져볼까 하는 말을 꺼낸 것이다. 여야가 논의하고 의료계와 시민사회에서 난상토론을 벌이고 해야 한다. 여론과 여건에 따라서 옥동자는 없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생명 앞에서 가운 벗는 것은 이기주의의 극치"

지금은 잠시 갈등과 분노를 멈추고 이성으로 돌아와야 할 때이다. 코로나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은가. 정부와 의사라는, 우리 사회에서 정말 힘 있는 두 집단이 화약을 가득 실은 화물차를 몰고 양쪽에서 마주 보며 같은 궤도 위를 달려서는 안 된다. 파업과 형사처벌이라는 화약을 모두 내려놓고 열차 엔진을 정지해야 한다. 그리고 기관사와 역무원이 되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은하철도에 가득 싣고 우주로 내달려야 한다.

'산 위의 마을' 신부로 유명한 박기호 신부는 2000년 의사파업 때 가톨릭교회가 운영하던 성모병원도 적극 참여하자 신랄한 쓴 소리를 마다지 않은 사람이다. 그는 그 당시 한 신문에 쓴 칼럼에서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단호하게 가운을 벗어놓고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이 시대가 이기주의의 극치에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중략) 그래도 절망하지 않는다. 의사들의 파업 중에도 인술을 베풀고 있던 의사들에게서 희망을 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박 신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톨스토이의 말을 빌려 의사 수를 한시적으로 늘리는 정책에 반대해 파업을 하는 지금의 의사들한테 충고하고 있다.

"인간이 높은 학력의 공부를 하는 목적은 배우지 못한 이웃도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돕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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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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