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 유충 인체 안전과 무관? '위험 소통' 기본조차 모르나

[안종주의 안전사회] 민심 요동치는 가운데 터져 나온 불길한 인천 먹는물 사태

지난해 붉은 수돗물 사태로 큰 홍역을 치른 인천시에서 이번에는 유충이 들어 있는 수돗물을 공급해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원인에 의한 먹는물 오염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번 먹는물 유충 사태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원시적인 것이다.

인천시는 아직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있다. 또 시민들이 먹는물에서 깔다구로 보이는 벌레의 유충이 들어 있다는 신고를 받고도 5일이 지나도록 인천시는 대책 회의조차 하지 않는 안이한 대응을 한 것으로 드러나 시민들의 분노를 돋우고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이런 먹는물을 먹어온 것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는 시민들을 향해 인천시 관계자가 ‘인체 유해성과는 관련이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해 불안을 누그러트리기는커녕 외려 비난을 더욱 키우고 있어 위기 대처 능력이 '빵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먹는물 유충 발생 사실을 숨겨오다 지난 13일 언론이 이 사태를 잇달아 지적하자 뒤늦게 14일 부랴부랴 상황과 대응 내용을 밝혔다. 박남춘 인천시장도 언론 취재가 본격화한 이후인 13일 오후 늦게 상수도사업본부로부터 유충 발생 사실을 처음으로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천시의 위기 대응 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있는 셈이다.

먹는물 안전은 시민들에게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공기와 더불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필수재인 먹는물은 그동안 낙동강 페놀 유출 오염 사건, 먹는물 트리할로메탄 및 중금속 검출 파동 등 1990년대부터 꾸준히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먹는물 수질 기준은 선진국, 현실은 후진국

그 이후에도 먹는물은 유해 바이러스 검출, 방사성 물질, 과불화화합물 등 유해화학물질 검출 등으로 대전, 대구 등 곳곳에서 안전 문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이런 논란을 겪을 때마다 먹는물 수질 검사 항목을 추가하거나 기준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왔다.

그 결과 먹는물 수질 검사 항목과 기준은 171개로 선진국 수준에 이르고 있다. 미생물의 경우 일반세균은 100cfu(콜로니 형성 단위)/mL, 즉 1 mL에 100마리까지는 허용하고 있고 대장균군의 경우는 100 mL에서 단 하나가 나와서도 안 된다. 이는 대장균 한 마리가 인체에 들어와 질병 등 큰 문제를 일으킬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그 물이 비위생적으로 처리돼 오염됐다는 지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구리, 철, 망간, 비소, 아연, 알루미늄, 수은, 6가 크롬, 카드뮴 등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중금속과 독성이 큰 금속 등을 망라해 수질 검사 항목에 넣어 엄격한 기준을 두어 먹는물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방사성물질의 경우도 대표적 방사성물질인 스트론튬(Sr)을 수질 검사 항목에 넣어 극미량 검출로 관리하고 있다.

최근 들어 종종 문제가 되고 있는 인체 유해 유기물질 가운데 대표적인 톨루엔, 벤젠, 트리클로로에탄, 사염화탄소 등과 파라티온, 말라티온과 같은 농약 성분들도 엄격하게 관리하는 수질 검사 항목이다. 이 가운데는 발암물질 등도 들어 있다.

이밖에 유기물질이 들어 있는 원수를 염소로 소독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소독 부산물인 잔류 염소나 총트리할로메탄(THM), THM의 일종인 클로로포름, 브로모디클로로메탄, 디트로모클로로메탄, 브로모포름 등에 대해서도 인체 유해성 때문에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유충은 인체 안전과 무관’, 듣기 거북한 정말 무책임한 발언

공기와 함께 물은 우리가 매일 일정량 이상 마시고 먹여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식품과 더불어 유해물질 관리를 엄격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일수록 더욱 꼼꼼하고 엄격하게 관리한다.

먹는물에서 깔다구 유충이 다량 나왔다는 사실은 수질 전문가 등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먹는물 수질 조사 항목과 기준에 벌레 유충이 없는 것은 기준 이전에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체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식의 인천시 공무원 발언은 위험 소통의 기본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한 것이다. 위험 소통의 원칙 가운데 하나는 실수나 잘못이 있으면 이를 곧 바로 인정하고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천명한 뒤 이를 실천하라는 것이다.

위기 대응과 위기 소통에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타이밍이다. 이를 놓치면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분노가 시민의 마음에 단단히 자리 잡고 난 뒤에는 아무리 훌륭한 대책을 제시하고 해명해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다. 한마디로 분노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인천시가 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분노를 일부러 유발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각제 만들다. 인천시는 한마디로 분노유발자이다. 인천시가 당장 할 것은 시민들에게 사죄하고 관련 정보를 투명하고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신속한 문제 해결과 함께 직무유기 등 엄정한 조사 필요

그리고 전문가, 시민단체, 환경부 등 정부 등과 머리를 맞대고 원인 등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깨끗하고 안전한 먹는물을 하루빨리 공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공무원 등 근무태만이나 직무유기, 은폐, 늑장 대응 등 관련 비위 내지는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부적절한 대응이 있었다면 그에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한다. 이에 앞서 인천시는 그런 엄정한 방침을 공표해야 한다.

감사원 등은 지난해 붉은 먹는물 사태가 벌어져 난리법석이 일어났는데도 다시 이와 유사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인천시에 벌어진 것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한 정밀 감사를 벌여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데서 다시 소를 잃었다는 것은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유행, 부동산 폭등, 권력층 성추문 사태 등으로 가뜩이나 민심이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먹는물 문제에 대해 정부와 인천시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투입해 최대한 신속하게 위기 대응을 통해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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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주 박사는 <한겨레> 보건복지 전문기자를 지냈으며,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프레시안>에 '안종주의 위험 사회' '안종주의 건강 사회' '안종주의 위험과 소통' 연재 칼럼을 써왔다. 석면,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등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각종 보건 및 환경 보건 위험에 관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며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석면, 침묵의 살인자> <위험 증폭 사회>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해 <코로나 전쟁, 인간과 인간의 싸움> <코로나19와 감염병 보도 비평>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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