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박원순 의혹 진상규명' 목소리는 하나...방법은 달라

통합, 특임검사·특수본 등 수사 촉구…민주, 非사법적 조사 주장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서실 직원 성추행 의혹에 대해 여야는 모두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다만 사실관계 조사의 방법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렸다.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고소 사실이 피고소인인 박 시장에게 전달된 경위와 서울시 고위간부들의 사건 은폐 의혹 등을 규명해야 한다며 특임검사·특별수사본부에 의한 수사 등을 주장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도부가 공식 언급을 하지는 않았으나, 당 소속 의원들로부터 '직장내 성폭력사건인 만큼 직장(서울시)에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이 나왔다.

김종인 "민주당 태도 상식 안 맞아"…주호영 "특임검사 임명"

통합당은 당 대표·원내대표 등 이른바 '투톱'이 모두 박 시장 관련 의혹을 거론하며 공세에 나섰다.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관훈클럽 토론에서 "박 시장 문제는 일반적 통념으로 생각하면 이것 저것 얘기할 게 없다. 박 시장이 대통령 후보까지 하겠다는 야심을 가진 사람인데, 그 사람이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 위원장은 "(박 시장) 본인이 변호사로 법률을 잘 아는 사람이라, 성추행 문제가 드러나니 본인의 명예나 여러 생각을 할 때 어떡하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나(고민했고), 그래서 죽음을 택하지 않았나"라며 "그것을 무슨 박 시장의 공(功)이라고 신성화하려는 노력을 민주당이 보였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장은 "피해자를 생각하면 그 상황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하는 게 정상적"이라며 "이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했는데 그 사실을 박 시장에게 누가 전달했느냐 하는 문제를 명확히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간에 돌아다니는 얘기대로 (경찰이) 청와대에 보고해 청와대가 (박 시장에게) 정보를 전달했다면 청와애도 박 시장 문제에 개입한 정황을 피할 수 없다"며 "그런 점을 당에서 명확히 규명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같은날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어제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가 폭로한 성추행 전모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서울지방경찰청은 수사기밀 누설 부분은 이미 수사 대상으로 전락했고, 스스로 공소권이 없다고 하고 있는 만큼 수사를 중단하고 조속히 검찰로 송치하기 바란다. 검찰은 (사건 송치를 받으면) 특임검사를 임명하거나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해 성추행 사건 진상뿐 아니라 비서실의 은폐 여부, 수사기밀 누설 등도 철저히 밝히고 책임 있는 사람을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원내대표 등 통합당 지도부는 박 시장은 사망했지만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의 수사는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주 원내대표는 "서울시청 내부자로부터 당에 들어온 제보에 의하면, 시장 비서실 차원에서 성추행 방조·무마가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며 "시장 개인의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 이뤄진 동시에 유관 부서에서 피해자 호소를 묵살하는 심각한 인권 침해가 동시에 있었다"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는 "피해 여성의 성추행 보고를 묵살한 상급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위반한 것"이라며 "지난 4년 서울시장 비서실장을 거쳐간 분들과 서울시 젠더특보 등은 직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피할 수 없고 수사 과정에서 (이것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곽상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은 장자연·버닝썬 등 사건에 대해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진상을 밝히라'고 지시했고 화성 연쇄살인사건 등 공소권이 없음에도 수사가 이뤄진 사건이 여럿 있다"며 "문 대통령이 나서서 피해자의 울부짖음에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곽 의원은 오거돈 부산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당시 구성된 통합당 내 '더불어민주당 성범죄 진상조사단' 단장을 맡고 있다.

통합당 김기현 의원도 이날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께서 지난번에 고 장자연 사건, 김학의 전 차관 사건 등에 대해 '공소시효가 끝나도 사실을 가려 달라. 경찰과 검찰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지고 수사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고, 그 말에 따라 수사가 됐다"며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에 지금 대통령께서는 입을 닫고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 사건이 이렇게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고 국민적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는데, 대통령께서 나서셔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건을 수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셔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같은 취지의 주장을 폈다.

김 의원은 또 "박 시장은 돌아가셨으니까 공소권이 없지만, 피해자의 호소에 의하면 여러 차례 시청 내부에 호소를 했는데도 다 묵살했다는 거니까 (묵살한 이들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직무를 명확하게 위반한 것이고 여차하면 직무유기가 되거나 증거인멸 공범이 될 수 있다"거나 "거기에 더해서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이것을 청와대에 보고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인지 (고소 사실이) 박 시장에게 전달됐다는 것이 피해자 주장이다. 그 과정은 공무상 기밀이 누설된 것이고, 수사 기밀을 누설해서 증거를 인멸하고 (사건을) 은폐·조작하는 데 참여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책임을 질 명확한 입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통합당은 이같은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경찰을 관할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성범죄 피해자 보호 대책 등을 담당하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등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요구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정조사·특검까지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도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야"…"당·서울시 차원 진상조사"

민주당도 이날 아침 원내대책회의를 열었지만 박 시장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공개 발언이 나오지 않았다. 김태년 원내대표와 조정식 정책위의장은 약 15분 간의 공개 발언에서 임시국회 일정과 부동산 정책, '한국판 뉴딜' 이야기만 했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 계획 발표도 없었다.

다만 당 법률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기헌 의원은 이날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천만 인구가 있는 서울시의 시장 공백이 생긴 점에 대해서 당 입장에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장례가 잘 (마무리)됐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특히 더 피해자의 목소리를 우리가 신중하게 들어야 될 것 같다"고 했다.

송 의원은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2차 가해가 가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저희 당으로서도 많이 신경써야겠다"면서 또한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송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법사위 민주당 간사를 맡았고, 당 지도부 및 주류와 긴밀하게 소통해온 인물이다.

소신파인 박용진 의원도 한국방송(KBS) 라디오에 나와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는 것이 맞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는 것)"라며 "고통받았다는 피해자 목소리에 지금은 귀기울여야 될 시간"이라고 했다.

박 의원은 "장례식 절차는 끝났지만 피해자의 고통과 피해 호소가 계속되는 한 이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라며 "집단적 합의에 근거해서 하나하나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찾아나가야 될 때가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대책 마련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당은 당대로, 서울시는 서울시대로 할 일이 있다"고 지적했다.

먼저 민주당의 책임에 대해 박 의원은 "일단 저는 당 차원의 진상 파악과 대책 마련이 있어야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안희정, 오거돈 사태에 이어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국민들이 지금 실망이 적지 않은데 당이 그동안 성 인지 감수성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선출직 공직자들에 대한 성평등 교육 등이 형식적 수준에 그쳤던 것은 아닌지 점검하고 여성 친화적 정당, 성평등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동시에 서울시도, 형사적인 것은 종결됐지만, 서울시라는 직장·기관에서의 진상조사와 직장 내 유사사례 재발 방지 노력이 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특히 피해자 측에서 호소한 내용과 관련해서 서울시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이번 일로 피해자에게 2차 피해 혹은 불이익이 없도록 조치하는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상 기관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 의원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은 가지만 정치 지도자, 사회적인 역할을 하시는 분이 극단적 선택을 하신 것에 대해서는 충격적이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무책임한 것 아니냐 하는 생각도 든다"며 비판적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